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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살청춘 지혜 Jun 12. 2022

버그 마을 창조 페스티벌 2

천천히 원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욜업 개베짱이 되기

'자신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창조성 회복의 역설이다.
우리는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창조성은 특별한 예술이라는 좁은 한계에서 벗어나
훨씬 광범위한 놀이로 인식되어야 한다.

-아티스트웨이 329P     

6월의 태양이 파란 하늘 한가운데 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한 개미 팀은 벌써 방 하나가 만들어져 가요. 놀기만 하던 베짱이 팀도 그제서야 장난치듯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네요. 하하, 호호 뭐가 이리도 즐거울까요? 베짱이들의 웃음소리에 개미들이 일손을 멈추고 쳐다 보아요. ”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 다잘해 개미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여전히 나무 그늘에 모여 있는 베짱이들을 바라보았어요. ” 가지고 놀 장난감이나 만드나 보지. “ 일만해 개미가 대꾸해요. ” 우리도 좀 쉬면서 천천히 하면 안 될까? “ 나중에 개미가 넌지시 물어요. ” 안돼! 내일 아침까지 완벽하게 만들려면 잠 잘 시간도 없어. 어서 서둘러 일하자. “ 다잘해 팀장의 말에 각자가 맡은 일을 다시 시작해요. 파고, 물고, 나르고...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나무 그림자가 동쪽으로 점점 길어져 갈 때쯤 드르륵. 쿵.쿵. 철컥.. 드르륵, 쿵,쿵.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페스티벌 무대 주변에 있던 버그들이 일제히 ‘와~’하는 함성을 내며 베짱이 팀 앞으로 모였어요. 드르륵. 쿵.쿵. 철컥. 세 마리의 베짱이들 손에는 스카이콩콩(외발 점프하듯 타는 놀이기구) 같기도 하고 손잡이가 달린 쓰레받기처럼 괴상하게 생긴 물건이 들려있어요. 땅에 대면 바닥이 파이고 파낸 흙을 자동으로 처리해요. 나무 아래 땅속으로 순식간에 방 세 개가 만들어졌어요. ”욜로! 욜로! 욜로! “ 구경하던 버그들이 구호와 함께 환호성을 보내네요. 온종일 쉬지 않고 일하고도 방 하나밖에 만들지 못했던 개미들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서 있어요.     


캄캄해진 숲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요. ” 흑흑흑... 우리가 졌어. 종일 물 마실 시간도 없이 죽어라 일했는데도 겨우 방 하나밖에 못 만들었어. 그런데 놀기만 했던 베짱이들이 어떻게 순식간에 집을 지을 수가 있지? 억울해. “ 일만해 개미가 눈물을 훔치며 흐느꼈어요. ” 괜히 더 고생하지 말고 여기까지만 하자! 하룻밤을 꼴딱 새워도 우린 집짓기를 마무리할까 말까야. 베짱이의 땅 파기 신기술과는 경쟁이 안 돼. “ 포기한 듯 나중에 개미가 말해요.     


”저런 저런... 어떤 한파에도 끄떡없는 집을 지어 보이겠다던 당당함은 어디 가고, 고개 숙인 패잔병들만 있을꼬? “ 이때 호롱불을 들고 거미 촌장 할머니가 어둠 속에서 다가왔어요.  우리 생긴 모습이 다르듯 자기만의 개성과 강점들이 있어. 그런데도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더 크고 좋아 보이곤 하지. 가냘픈 거미줄을 짓고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기다려야 하는 거미는 단칼에 상대를 제압할 만큼 힘이 센 사마귀가 왜 안 부럽겠나? 그런데도 지난 대회에서 사마귀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가진 유연함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네. 여유를 즐기는 베짱이는 베짱이대로, 꼼꼼하고 성실한 개미는 개미대로 말이야.“     


눈물을 닦고 개미들이 거미 할머니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어요. 달래듯 찬찬히 이어지는 거미 할머니의 말씀에 조용히 귀 기울였어요. ” 월동 집짓기는 개인적인 명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네. 생존과 관련된 우리 버그들의 미래. 그 가치를 위해 내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기꺼이 배워봐도 좋지않을까? 그대들은 베짱이의 무엇이 부러웠나?“      


”땅 파는 기계를 만드는 기술요. 어떻게 그런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나 베짱이의 창의성이 무척 부러웠어요.“   

다잘해 개미가 먼저 말했어요. ” 우리는 완전 긴장해서 일만 하는데 대회 자체를 느긋하게 즐기는 모습요. “ 일만해 개미도 한 마디해요. ”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는 거요. “ 마지막으로 기어가는 목소리로 부끄러운듯 나중에 개미가 답했어요. 거미 할머니는 개미들의 대답에 웃으며 말해요. ”호호호 그랬어? 그중에 지금 당장 해 볼 만 한 것은 우리 개미 팀도 그냥 한번 해보면 어떨까? 과정을 즐기면 결과에 상관없이 편안해진다네. “


호롱불을 들고 일어서며 거미 할머니가 말을 이었어요 ” 그리고 마지막까지 끝나야 끝나는 거지. 결과는 아무도 몰라. 업글 개미 팀답게 끝까지, 그러면서도 즐겁게 파이팅! “ 거미 촌장 할머니의 응원 후 개미들은 오랜만에 일을 놓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늦은 시간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웃으며 장난도 치네요.  밤하늘 높이 떠오른 보름달이 이런 개미들을 따스하게 비추어 주었어요.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수 놓인 상쾌한 아침이에요. 른 아침부터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 앞은 결승전 마감 카운트 다운을 하러 버그들로 북적북적해요.      

”존버의 성실성, 개미 팀이 이긴다에 내 신상 구두 100켤레 걸었어요. 파이팅~“ 신발 가게 지네 아가씨가 수백 개 다리를 동동 구르며 큰 소리로 응원해요. ” 무슨 소리. 손재주가 좋은 베짱이가 이긴다에 우리 검을 건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막가파 사마귀 아저씨들이 낫처럼 생긴 손을 흔들며 무대 아래서 칼춤 응원을 선보이네요.     


각 팀장이 하는 집 소개를 듣고, 직접 체험한 버그들의 투표로 우승자가 가려진대요. 드디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어요.  ”10,9,8........ 쓰리, 투, 원“ 개미 팀 쪽 무대 커튼이 먼저 열렸어요.      


”와~~~“ 왁자지껄한 함성과 박수 속에 다잘해 팀장이 마이크를 잡아요.     

”저희는 우선 나무 그늘이 없는 햇볕이 잘 드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침실 하나, 거실 하나, 음식 저장고 하나. 열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정말 필요한 공간외에 불필요한 것들은 없앴습니다. 게다가 내부 벽을 천연 단열재가 되도록 볏짚과 마른 나뭇잎을 흙과 송진에 개어 붙여 난방을 한 듯 따뜻합니다. 어떤 추위에도 끄떡없게 만든 이 내부 벽재가 저희 팀이 자랑하는 신기술입니다. 한 줌 한 줌 흙을 다져서 만든 집이라 무너질 염려 없이 튼튼하지요. 뜻하고 튼튼한 집을 원한다면 개미 팀에 투표하세요.“     


베짱이 팀 쪽 커튼이 열리자, ”우와~~~ 멋져부러요. “ 더 큰 함성과 휘파람 소리로 숲속이 떠나갈 듯해요. 막놀아 베짱이가 으스대며 말해요.     

”보시다시피 저희가 지은 집은 넓고 방이 여러 개 있습니다. 개인적인 공간뿐 아니라, 겨울철에도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고, 춥고 위험한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나무의 잔뿌리 사이에 버섯 균주를 심어 열매를 따 먹을 수도, 먹이를 사육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뚫어땅 기계’를 이용하면 누구나 손쉽고 빠르게 멋진 집을 지울 수있어요. 이젠 이런 집에서 살아보실까요?“     


초호화판 리조트 같은 베짱이 팀 집에 다들 환호했어요. 외마디 비명이 들려오기 전까지 말이죠. 베짱이 팀이 지은 집을 구경하려고 많은 버그가 한꺼번에 언덕 위와 집 앞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나무뿌리 빈 공간으로 땅이 푹하고 꺼져 내렸어요. 순식간에 페스티벌이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무당벌레와 불개미 구조대원들이 긴급히 투입되어 흙더미에 깔린 버그들을 업고 내려와야 했어요. 뚫어진 공간이 다져질 새 없이 너무 넓게 공간을 만든 데다, 나무뿌리가 붙잡고 있는 흙기둥에 균주를 심어 받쳐주는 힘이 약해져 버린 거죠.     


버그 마을 창조 페스티벌 대참사가 될 뻔한 2022년 월동 집짓기 결승전은 다행히 큰 부상자 없이 마무리되었어요. 우승은 당연히 천연 단열재를 사용해 따뜻하고 튼튼한 집을 지은 개미 팀에게 돌아갔지요. 업글 개미 팀은 우승 후에도 이번 대회를 통해 배운 베짱이의 '창의성과 과정을 놀이로 즐기는 법'을 잊지 않았대요. 괴로운 노력이 아닌, 편안한 노력을 즐기며 지금 어딘가에서 욜로 베짱이와 함께 버그들이 쉬어갈 즐겁고 안전한 힐링 공간을 설계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욜업 개베짱이 힐링 공간'이 오픈하면 알려드릴게요. 어느 좋은 날, 함께 놀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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