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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Nov 28. 2021

/ 북한산 영봉靈峰

***

그날 하루재에서 영봉으로 방향을 잡은 건 좀 적당히 하자는 심산 때문이었다.

거기서부터 백운대까지는 한참이었고, 줄서서 올라가는 백운대 정상을 원래도 내켜하지 않았더랬다.

바로 전 주에 강원도를 다녀오고, 회사일로 야근까지 해서 쌓인 피로가 첩첩이었으나,

산 정상에 오르지 않고 중간에 되돌아오는 일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영봉은 그때까지 한 번도 안 가봤던 곳이니,

그럭저럭 한 나절 홀로 산행으로 모양새가 괜찮지 싶었다.


당시 나는 회사일이라던가, 여러 개인적인 이유로 얼마간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당연히 안내산악회의 지방 산행도 이전만큼은 아니었고,

주말이면 종종 혼자서 북한산을 찾게 되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는데,

머리 식히러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만만한(?) 산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ㅎㅎ

 

사실 지리산이나 소백산, 영남 알프스 같은 육산을 선호하는 육산파(?)였던 내게

북한산은 애시당초 가깝다는 것 외에 그리 매력적인 산이 아니었다.

여러번 가 봤고, 즐거웠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겉으로 멋지다, 근사하다고 외치면서도 (그건 사실이다), 속으론 사방 천지로 내려다 보이는 빽빽한 도시 풍경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어언 6년 차.

나는 서울물이 바짝 들어 있었고, 그래서 서울이라는 도시와는 명백한 애증관계였으며,

과장된 일면이 있겠으나, 기껏 고생고생해서 서울 시민이 되어 놓고선 주말이면 서울 아닌 곳으로

내빼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을 했던 것이다. 산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산 또한 그랬다.

산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도 있었고, 가끔은 친구나 지인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산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직장분들과도 기억에 남을 만한 산행을 수없이 했었지만,

그 무렵은 산이라는 공간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방황을 자처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내게 친절했고, 산에 대한 나의 성심을 기특하게 여겼으며,

산에서의 경험이 더욱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경험을 정성껏 공유해주었지만,

유독 어디에도 적을 두지 못하고, 여기 저기 떠도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가보고 싶은 산을 골라 데려다주고 데리고오는 안내산악회는 나 같은 이에게 최적의 시스템이었지만,

몇 번의 안내 산행에서 눈물나게 청승맞은 경험을 한 후로는 나도 얼마간 변해 있었다.

아니,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산에서 겪었던 좋았던 것들이 한데로 이어지지 못한 채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쉽고 서글펐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문제였고, 무엇보다 그런 변변치 못한 신세와 상관 없이

당시의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너무나도 강렬하게 사로 잡혀 있었다.


더욱, 산에 가고 싶다.


그날 영봉 산행이 정말 우연이었는지, 아님, 우연을 가장한 어떤 의도였는지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2006년 5월, 봄의 일이다.



***

숲으로 가려진 가파른 길을 오르니 금세 영봉 정상이다.

하늘이 열리고 뚝 떨어질 듯 갑작스레 맛보는 개방감에 잠시 어리둥절 하는 사이,

예사롭지 않는 영봉의 분위기와 마주친다.


북한산에 여러 번 왔었어도, 영봉은 처음이다.

마치 비봉 정상에 커다란 비碑가 있듯, 영봉 정상에도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상상만 했을 뿐,

바위벽에 각인된 작은 동판을 볼 때도, 숲 사이로 마주친 서너 기의 추모비를 볼 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눈앞에 보이는 인수봉 그 엄청난 바위의 형태에 압도되어

그저 이 산에서 저 백색의 바위가 가장 온전하게 보이는 봉우리였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 많은 추모비들이 무엇을 향해, 왜 그렇게 놓여있는지 전혀 모른 채...


북한산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인수봉의 자태에 홀려 영봉바위를 떠날 줄을 모르다가

그만 가자며 내려서던 길, 수풀에 가려진 어느 추모비의 각진 모서리로 쏟아지던 햇살에 끌려

그곳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산허리로 움푹 들어가 수풀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백색의 암릉이 저 아래로 이어지고,

드문드문 놓인 추모석 몇 기와 절벽 위에 걸쳐진 작은 소나무,  

그 위로 부는 바람과 고요한 햇살만이 사람 숨소리조차 멈춘 듯 인적 없는 그곳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5월의 바람과 햇살 속에서 무심히 올려다보던 그것이

그들이 한때는 영문도 모른 채 올랐을, 바라만 봐도 좋아 베시시 웃음만 지었을,

오로지 한 점 군더더기 없는 온전한 형태로 우뚝 선 바위, 인수봉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람이 날아갈 듯 분다.

눈앞에 멈춘 거대한 바위가 두렵고 엄숙하다.

고요한 데서 들려오는 매달린 자들의 소리들... 야야호호~ 우우우~~호오~

형체를 짐작 못할 모든 소리들이 바람의 끝을 따라 모아졌다 흩어지면

여기 영봉에서 보이는 자, 보이지 않는 자들이 하나 되어 바라본다. 저 바위.


몸조차 가누기 힘든 바람 사이로 백색의 바위는 미동조차 없고,

까마득한 암릉 아래 눈부신 초록들만이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산보다 낮은 원으로 녹색의 포말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山 친구

고 박○○을 기리며...


1986.6.29 한양대학교 산악부





 



악우여!

너의 하얀 꿈은

꽃잎 되어 피어오르고

너의 정열은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

우리들 가슴속에 언제나 기억되리라.


1995.7.27 트리츠마르에 잠이든 악우 조○○

신흥전문대학 외솔산악회












우리가 가장 사랑한 岳友

여기 잠들다.


이○○ 1969.12.7 HAC

















나 여기 잠드나 산에

항상 매어 있으리


故 권○○





영봉靈峯


산을 어디라 손대려 하느뇨

산에 들면 가득한 靈氣에 감사할지니

산의 精氣 있으매 푸른 起運 솟고

산의 自然 있으매 맑은 물도 흘러

우리 生命 더불어 모든 生命 사노리

山이여 靈峯이여 萬古不變하여라


1987.4.5 詩 鄭充來








   



비록 우리 언제나 함께    

있지는 못할지라도

우리 여기 있어

그대를 사랑하니

부디 알아주오


1961.7.18-1986.4.27 故 李○○之基

이화여대 문리대 산악부  




산의 웅장함과 몇 백년 변함없는 기백에

젊은 숨결을 받친 우리 악우의 영혼이

북한의 줄기에 영원하리


1963.12.31-1988.11.6 故 韓○○

두레산악회 회원 일동    









우리는 지금 너의 모습을 보고 있네
그리고 너의 목소리도 듣고 있네


1980.12.22 故 박○○ 추모비

크로니 산악회 일동 인수봉에서

유명을 달리한 山友들 기리며







여기

山에 올라

구름이 됬네

백마의 넋이 되어

오르고 또 오르리


故 이○○ 산을 꿈꾸던 악우 이제 산에 드노라









    



우리 사랑하는

설악의 하늘과 물

그리고 바위에

그대 영원하니

우리 악우들

그대

못다 이룬 꿈

더 높은

산을 향해

그대와 더불어

항상 오르리라.


1964.10.26-1987.8.13 故 安○○之墓



          





백운의 푸른 하늘에

그대들 산새 되어 날고

인수봉 바위 틈에

그대들 산꽃으로 피고

우리는 여기 올적마다

그대들 이름 부르마


詩 이은상





山이 좋아 山에 살자던 너

거친세상 온몸으로 살다 그리움만

남기고

푸른 수평선 너머로 스러진 넋이여

다시 만날 그날까지 평안히 잠들라

그 나라에서


1962.3.21-1987.7.31 박○○의 碑

네가 사랑한 山 가족 그리고 벗들












어느날 내가 산에서 죽을때

오랜 산 친구인 네게 이 유서를 남기마

그리고 집어다오 친구여 내 피켈을

피켈이 치욕으로 죽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어딘가 아름다운 페이스에 가져가다오

그리고 피켈만을 위한 작은 케륜을

만들어다오

그리고 그 위에 나의 피켈을 꽂아다오


1990.10.15 故 윤재철

경기대학교 산악부









애타게 산이고저 했던 목마른 젊음이여

그대 이제 메아리되어 남으니

우리 놀란 가슴 쓸어안으며

그대 이름 부르노라


故 박○○ 경승산악회 일동
















***

그날 영봉에서의 하루는 너무도 생생해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을 수가 없다.

길게 뻗은 암릉 위로 촘촘히 박혀 있던 추모비들은 하나같이 우뚝 선 인수봉을 향해 있었다.

영봉 정상에서 마주본 인수봉이 수려한 파노라마였다면,

추모비들이 놓여있던 암릉에서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던 인수봉은

보는 사람의 정서를 완벽하게 압도하는 절대미였다.


산을 오르며 세상사의 고단함을 잊고, 멋진 풍광에 감탄하고, 멋진 사진을 남기고,

그것을 블로그에 올려 칭찬 받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았던 내게 그것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경한 풍경이었고,

이미 추모동판과 추모비에 적혀있던 시詩를 읽으며 뭉클해져 있던 내게

5월의 꽃향기보다 절절한 흔적을 새겨놓고 말았다.


하루재 고개를 터벅터벅 내려오면서 나도 인수봉 저 바위에 오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의 바람을 기꺼이 봐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인수봉 정상에 머리를 올렸으나,

단순한 열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청이 마감된 모 등산학교 암벽반에 대기자로 걸어두고 일 하는 틈틈이 연락을 기다렸다.

9일간의 여름휴가는 그때쯤 몰아 쓰면 될 테니까. 운 좋게 앞선 누군가의 취소로 연락이 왔고,

그해 8월, 커다란 배낭을 진 탓에 기우뚱한 채로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에 올랐다.


그곳에 두번째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로,

2008년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에 흩어져 있던 추모동판과 추모비들은 한데 모아져

북한산 무당골 인근에 합동위령탑으로 세워졌다. 영봉에서 보았던 동판과 추모비들도

함께 옮겨졌을까? 잘 모르겠다. 그 이후로 영봉에 다시 한번 올랐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여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가끔 영봉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산에 가도록 한 열정과 꿈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 무엇이었을까. 영면에 드신 산우들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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