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를 입고 있네
어느덧 그는 대학생이 되었다. 약간 가라앉긴 했지만, 아토피는 아직도 그와 함께다.
대학교 체육대회가 열렸다. 학과 인원끼리 팀을 이뤄, 종목별로 우위를 가린다. 이어달리기, 줄다리기, 박 터뜨리기. 모두가 참가하는 단체 종목 외에도, 인원을 선별하여 참가하는 개별 종목들이 있다. 주로 축구, 족구 등이다. 그가 선수로 참가할 만한 종목이 무엇일까. 고등학생 때부터 해온, 나름 구력이 있는 '공놀이'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운동을 제대로 못했던 한이 맺혔던지, 고등학교 1학년부터 그는 공놀이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재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양으로 질을 상대할 수 있는 구간이 있다. 그는 일반인 대학생치고는, 공놀이에 쏟아부은 절대적인 시간이 많은 축에 속한다. 체대나 선수부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지금의 대학교 운동회에는 꽤 비빌 만하다.
마침 그의 학과에는, 공놀이를 취미로 해온 몇몇이 있다. 그는 이들과 함께, 체육대회 2등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공놀이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 대기 시간. 경기를 뛴 인원들은 옷을 갈아입는다. 그는 아래는 그대로 두고, 윗도리만 갈아입을 심산이다. 탈의실까지 갈 필요는 없고, 운동장 옆 콘크리트 계단 위에서 갈아입는다. 여성 학우들도 많고 하니, 사람이 없는 쪽으로 5m 정도 이동한 뒤 갈아입는다.
윗옷을 벗고, 챙겨온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저쪽에서는 학우들의 웃음소리가 난다.
- 하하호호깔깔
같이 경기를 뛴 학우 한 명이 달려온다.
- 형, 빨리 와. 시상식 시작한대!
대학교 체육대회 2등. 지금껏 시간을 쏟아부어온 공놀이 분야에서 작게나마 인정받은 듯하여, 그는 기분이 좋다. 시상식이 열리는 쪽으로 이동하던 중, 옆에 있던 학우가 웃으며 해맑게 말한다.
- 형 근데 아까, 옷 갈아입을 때 있잖아.
- 응?
- 아니 형이, 위에 옷을 벗었는데. 무슨 걸레를 입고 있는 거야!
- 어...어?
- 그래서 다들 웃었잖아ㅋㅋㅋㅋㅋㅋ
- 아, 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무의식 중에나마 그는 자신의 애착 반팔을 의식했나보다. 그래서 학우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았을까. 꼭 애착 반팔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여기저기 손톱자국과 피딱지가 엉겨붙은 피부를 굳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는 없으니.
알록달록, 피와 진물이 어우러진 단풍무늬 애착 반팔. 객관적으로 썩 보기에 안 좋다 하더라도, 그는 이 반팔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5년, 아니 10년 넘게 입었을 반팔이다. 늘어날대로 늘어나고 보기 흉할지라도, 그 끔찍했던 시간을 악착같이 함께 버텨준 녀석이다.
걸레라니.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시상식이 열리고, 그와 학우들은 준우승 상품을 받는다.
그는 학우들과 함께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기분은 뭔가 이상하다. 이때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표출하지도 못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준우승을 했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감정에 둔한 그였지만, 왠지 씁쓸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