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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

by 하얀 얼굴 학생 Jan 30. 2025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토피는 그의 군 생활 초창기에 사라졌다. 


훈련병 (첫 5주) : 상처와 흉터가 추가되지 않음. 아물기 시작

이등병 (~3개월) : 가려움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

일병 이후 (4개월~) : 완치


 그가 본격적으로 아토피를 인식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13살 경이다. 군에 입대하여 완치되기까지 햇수로 딱 10년이다. 증상이 심해진 이후로만 10년이니, 정확히는 10년보다 더 오래됐다.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붙어다니던 아토피가, 불과 몇 달 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의 아토피가 나은 이유가 무엇인가. 아토피가 발병했던 이유처럼, 치유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몇몇 가능성을 꼽아보자면

  1) 군대라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인한 정신적 긴장 

  2)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

  3) 성인이 되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90%에 속했을 가능성


 1,2번의 경우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아토피를 앓는 자식을 위해, 일가족 전체가 외국이나 시골로 갔다는 사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이나 시골에 가서 아토피가 호전되곤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이 깨끗해서라고 추측한다. 미세먼지, 집먼지 진드기가 덜한 환경이어서 나았으리라는 거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환경에 더해 정신적인 부분이 작용했을 수 있다. 그의 훈련병 기간 5주가 그랬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공간에서, 생전 처음 통제를 받으며 지낸다. 그는 5주 동안 배부르게 먹지도, 늘어지게 잠을 자지도, 맘 편히 쉬지도 못했다. 낯선 환경에서, 그의 정신과 신체가 일종의 긴급사태에 돌입했던 모양이다. 훈련병 5주 동안, 그는 대변을 본 기억도 상당히 적다.


 3번, 성인이 되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되었을 수도 있다. 풍문에 의하면, 어린 시절 아토피를 앓던 이들의 90%는 성인이 되면서 낫는다고 한다. 나머지 10%는, 평생 아토피를 달고 살아야 된다 한다. 그가 축복받은 90%에 속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맑고 깨끗하긴 했으나, 그의 군 생활 스트레스가 없진 않았다. 구타 같은 것은 없었지만 자잘한 갈굼은 남아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보직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훈련병 때는 나름 군인이 되는 훈련들이라며 의미부여라도 가능했지만, 정작 그가 받은 주특기는 '행정병'이었다.(그는 이때부터도 행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아토피는 다시 도지지 않고 완치되었다. 누가 보면 피부가 좋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참으로 다행이면서도, 허무하다.




 박살난 피부로 10년 가까이 살았으니, 그 기간 동안 여러 습관/트라우마/징크스가 쌓였다. 아토피 증상은 완치되었지만, 그에게는 흉터인지 훈장인지 헷갈리는 것들이 남아 있다. 

 

 피부가 조금 건조해져 긁적거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혹여나 피부가 상할까 그토록 싫어하는 로션을 몸에 펴바른다. 아토피 전성기 때처럼 따가울 리는 없다. 그래도 그는 욕을 하며 로션을 바른다. 로션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 듯하다.


  피부는 매끈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면티를 입는다. 털옷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니, 옷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전에는 피부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피부가 나아진 후에도 옷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패션 센스가 없다. 


 머리는 주기적으로 이발한다. 특히 옆머리와 뒷머리를 짧게 친다. 머리가 너무 길면, 머리카락이 목을 자극해서 가려울 수 있다. 아니 그것보다, 그의 머리 길이와 아토피 활성도가 정비례 관계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창 반항기 많고 아토피가 절정이던 중고등학교 시절은 머리가 길었고, 아토피가 완치된 군대 때는 머리를 빡빡 민 상태였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그는 짧은 머리를 지독하게 고집한다. 언젠가 한 번쯤은 머리를 길러 포니테일로 묶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아니다. 아토피에 대한 기억을 극복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따갑고 쓰라린 피부를 부여잡고, 왜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냐며 분노하고 저주했다. 길게 보면 10대 전체를 그렇게 보냈다. 이는 정신적으로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다른 이들은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까지 내렸을 수 있는 시기에, 그는 아토피라는 방해에 굴복하고 도피해버린 것은 아닐런지. 물론 아토피가 크나큰 방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핑계 삼아, 철들지 않고 그냥 주저앉아버렸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른 또래들에 비해,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상태에서 성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그의 상황은 훨씬 나아졌다.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고, 따가움 없이 샤워를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따금씩 아토피를 앓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이고 붉게 되어있는 사람, 목주름 주변이 뻘겋게 부어오른 사람 등. 그들의 피부만 보아도, 그는 옛 시절이 떠오르는 듯 목을 움츠리고 부르르 떤다. 얼마나 따갑고 얼마나 아플까.


 어느덧 그가 아토피를 앓았던 시간보다 앓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려 하고 있다.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완치돼버린 피부를 부여잡고, 과거의 동료들을 바라보며 안심하고 있는 꼴인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들을 치료해 줄 능력도 없다. 외부자가 되어버린 주제에 섣부른 동정의 눈길은 모욕적일 수 있다. 그저 못 본 척, 마음속으로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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