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카르마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얼굴 학생 Apr 16. 2024

41 - 전염병 검사전표 (3)

자가격리 숙박비 지원

 주요 업무(전염병 검사비 전표 처리)를 수행하던 어느 날, 그에게 새로운 문의가 날아든다.


  확진자 : 안녕하세요, 제가 전염병 확진이 돼서요. 집에 아이도 있고 해서 따로 격리를 해야하는데,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나요?

  그 : (??) 아 안녕하십니까! 확인해보겠습니다!

  확진자 : 네 감사합니다.


 그는 팀에서 인사총무를 담당하고 있는 V 차장에게 다시 묻는다.


  그 : 차장님, 확진자가 자가 격리 비용 지원이 되냐고 문의했는데, 지원이 되나요?

  V 차장 : 아마 될 거야. 저번에 이야기할 때 숙박 비용 지원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네. 인사팀에 물어봐.

  그 : 알겠습니다.


  그 : 안녕하세요, IT사업지원팀 하얀 얼굴 사원입니다.

  인사팀 : 네 안녕하세요

  그 : IT 인원 중에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가족들이 있어서 따로 격리가 필요한데, 숙박 비용 지원을 해주시나요?

  인사팀 : 네 가능합니다.

  그 : (이게 되네)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나요?

  인사팀 : *협조전 작성해서 전달주시고, 격리 기간 나와있는 양성 증빙, 숙박 확인증 주셔야 돼요.

  그 : (협조전?) 아, 네...

  인사팀 : (못 알아듣는 낌새를 눈치챈 듯) 협조전은 담당 팀장님 결재로 받아주시면 돼요.

  그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협조전 : 상대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



 문의 및 통화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이 회사는 전염병 확진자의 격리 비용을 지원한다. 즉, 격리 기간 동안의 숙박비를 지원해준다. IT사업부에서는 일주일에도 두세 명씩 꾸준히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그중에서 한 달에 한 명 꼴로 숙박시설에서 격리를 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숙박 시설에서 격리하던 이가 음성을 받고 해제된다 싶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숙박 시설 격리 비용 문의가 날아들었다.


 초창기의 그는 행정 처리, '협조전'이라는 용어나 프로세스 자체의 생소함으로 인해 별다른 의견을 갖지 못한 상태로 일했다. 하지만 몇 차례 일을 진행하면서, 직원마다 청구하는 숙박 비용에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통 금액

  ㄱㄱ : (음성 판정 뒤 출근 첫날) 얼굴 씨, 자가격리 숙박비 처리 부탁해요. 총 5일 동안 20만 원이에요.

  그 : (증빙을 전달받으며)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큰 금액

  ㄴㄴ : (확진 당일) 얼굴 씨, 우리 자가격리 숙박비 청구 되나요?

  그 : 네, 인사팀으로부터 가능하다고 답변 받았습니다!

  ㄴㄴ : 혹시, 금액 한도가 있나요?

  그 : 금액 한도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이 있진 않습니다.

  ㄴㄴ : 알겠어요.


  ㄴㄴ : (음성 판정 뒤 첫 출근) 얼굴 씨, 오랜만이에요. 숙박비 처리 부탁해요.

  그 : (금액이 100만 원) 아 네, 알겠습니다.

  ㄴㄴ : 아 그, 자가격리 때 식사 비용도 청구가 되나요?

  그 : (..?) 확인해보겠습니다.


  인사팀 : 법인카드로 결제한 거면, 이전처럼 비용처리 진행하라고 하세요.

  그 : 알겠습니다!


  그 : ㄴㄴ님, 혹시 법인카드로 결제하셨나요?

  ㄴㄴ : 네, 전부 법인카드로 결제했어요.

  그 : 그러면, 이전에 처리하시던 대로 비용 청구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ㄴㄴ : 알겠습니다.



 그에게 격리 기간 동안의 숙박 경비 처리를 요청한 확진자는 대략 7명이며, 청구되는 비용의 편차가 크다. 전형적인 빈익빈 부익부, 중간층은 없다. 적게 청구하는 인원들은 아예 적은 금액을 제출하고, 몇몇 소수는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의 증빙을 가져온다. 모텔과 호텔의 차이였으리라. 어떻게 알았는지, 격리 기간 동안의 식사로 배달 주문한 경비까지 모조리 청구하기도 한다. 호텔 자가격리에, 조식으로 호텔 식사를 주문했다는 이도 있었다.


 누구는 비싼 데서 자가격리를 해서 비용을 많이 청구하고, 누구는 싼 데서 자가격리를 해서 비용을 적게 청구한다. 이 부분은 그가 개인적인 감정을 가질 부분이 아니다. 그의 돈으로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회돈이니 말이다. 다만 짜증이 나는 부분은, '전염병 전표 담당자' 라는 미명 하에 자가격리 숙박비 증빙과 전표 처리까지 그가 모두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중에 더 잘 알게 되는 부분이지만, 회사원이라고 하여 모두가 행정적인 프로세스나 서류 작업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본사 내부 행정 근무의 비중이 적은 직무(영업/기술)의 경우 더욱 그렇다. 영업/기술 직무에 종사하는 인원들의 경우, 회사를 아무리 오래 다녔을지라도 내부 프로세스나 행정 처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직원이 상당수다. 적어도 그가 다니는 회사는 그랬다. 그가 속한 사업부가 IT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전염병에 확진되는 직원들은 90% 영업이나 기술 직무 종사자였다. 이들은 확진되는 시점부터 사업지원팀에 전화를 걸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프로세스를 안내해달라고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이지만, 전염병 관련 업무 담당자로써 확진자들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안내해야 했다.

 

안내 업무

  1) 당장 해야 할 조치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 안내 / 가족이 있을 경우 격리 여부 등)

  2) 향후 검사 시행 안내, 검사에서 다시 양성이 나올 시의 안내

  3) 다시 출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증빙이 필요한지 안내 (주로 PCR  음성 증빙)


추가 비용처리 업무

  4) 코로나 검사 비용 전표 처리

  5) 자가격리 숙박비 지원 업무

       - 협조전 작성 및 해당 팀 결재 필요 (확진 당사자)

            ㄴ 사전에 협조전 양식을 확진자에게 공유 및 작성법 안내 (하얀 얼굴 사원)

       - 전달받은 협조전을 인사팀에 전달 (하얀 얼굴 사원)

       - 미흡 증빙 반려 등 인사팀 요청사항 대응 (하얀 얼굴 사원)

       - 증빙 완료 후 숙박비 전표 처리 (하얀 얼굴 사원)



 전염병 관련 업무, 특히 숙박비 청구 지원 업무를 하면서 그의 혼란이 가중된다. 원래 회사라는 곳이 이런 건가. 그를 제외한 모두행복해 보인다. 행복해 보이는 것이 더 이상하다. 확진자들은 격리 기간 동안의 숙박비를 환급받아 좋고, 인사팀에서도 비용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다. 확진자들로 하여금 충성심마저 일게 만들 복지다. 그럼에도, 회사 경험 없는 그의 눈으로 보아도 뭔가 이상하다. '비용 관리'라는 이름의 벽에 구멍이 뻥 뚫린 느낌. 나쁜 마음이 없던 사람조차도 슬며시 딴마음이 생기도록 조장한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의 판단이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당시에는 전염병이 사회적으로 가장 무거운 주제였기 때문에, 확진자를 받아주는 숙박 시설 자체가 별로 없었다 한다. 확진자들이 헤매고 헤맨 끝에 찾은 시설이 우연히도 모텔과 호텔로 나뉜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확진자가 전해준 파일을 출력한 뒤 인사팀으로 달려가 제출하고, 전표를 치고, 전표가 승인되어 돈이 지급되면 확진자에게 알린다. 혹시라도 인사팀에서 증빙에 대해 문의하면, 그는 확진자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전달한다.


  인사팀 : 근데, 이거는 숙박비 확인증이 없나요?

  그 : 아...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 여보세요, 아 ㄷㄷ님, 혹시 숙박 확인증 전달주실 수 있나요?

  ㄷㄷ : 아 그게, 얘네가 숙박확인증을 안 줬는데요... 잠시만요


  그 : 그래서, 숙박확인증을 이걸로 대신 받았습니다.

  인사팀 : 아니, 이걸로 증빙이 되나? 다른 건 없대요?

  그 :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 여보세요, 아 ㄷㄷ님 안녕하세요! ... ...



 인사팀과 확진자 사이에서, 확진자의 자가격리 숙박비 처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다. 어쩌다가 인사팀에서 숙박비 처리가 불가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스트레스 비스무리한 것이 느껴졌다. 왠지 자신의 돈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에서 였을까. 아니,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느낌에서였을까.


 전염병 검사비 전표도 그랬지만, 숙박비 처리를 하면서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40 - 이런 일 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지 않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