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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Sep 17. 2024

"촉촉해요"

보습 / 스킨케어 광고

 시도때도 없이 가려운 몸을 벅벅 긁어대는 그,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밖에 나가면 건조하거나 습한 공기를 마주할 것이고, 이는 그의 피부를 자극할 터다. 혹여나 여름처럼 덥기라도 하면, 땀이 나면서 가려움이 극에 달한다. 이미 충분히 예민한 피부를 또 신나게 긁어대서, 그나마 남아있는 버석한 보호막을 한 층 더 걷어내리라. 열을 내면서 긁으면, 물론 가려움이 해소되면서 시원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하다. 후폭풍은 시원함이 가시는 즉시 밀려온다.


 아토피는 죽을병이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죽을병에 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육이나 뼈는 정상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며 내부 장기도 멀쩡하다. 하지만 그의 바깥 활동은 거의 전무하다. 학교 등 강제된 시간을 제외하면,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집 안에 틀어박혀서 몸만 득득 긁는다. 긁다가 자거나, 자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긁은 상처의 회복을 위해 또 웅크리고 있거나. 

 아토피는 신체보다는, 정신에 더 큰 타격을 주는 질병이라고 볼 수 있다. 



 앉아있어도, 누워있어도, 무슨 자세를 해도 어딘가는 반드시 가렵다. 그의 주의를 돌릴 만한 것이 필요하다. 가려움을 잊을 만큼 몰입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좋겠으나, 이때의 그는 성숙하지 못하다. 편한 방법이 눈앞에 있다. 그저 멍하니 보고 있을 만한 것. 보고 있으면 가려움이 그나마 덜 느껴지는 것. 바로 TV다.


 그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본다. TV는 그가 가만히 있어도 화면이 빠르게 바뀌고, 채널의 수도 다양하다. TV를 보고 있노라면, 또 볼 것을 찾아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시간도 빠르게 가버린다. 리모컨을 눌러야 하니, 자연스레 한 손은 긁는 행위에서 멀어진다. TV를 보는 동안에는, 그가 평소 긁던 수준의 약 80% 정도로 줄어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주 미미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큰 효과는 아니다)



 TV를 보다 보면, 필연적으로 TV 광고와 직면하게 된다. 방송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껴서, 30초든 1분이든 광고를 시청할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다. 주구장창 TV를 보니, 그도 이 TV 광고에 노출된다. 대부분의 경우 정신을 놓고 TV를 시청하는 그이지만, 신경을 거스르는 광고가 하나 있었다. 바로 화장품 광고다.


 스킨케어, 화장품, 피부 미용 따위의 광고다. 그가 기억하는 광고의 이미지는 아래와 같다.


  - 배경색 :  하얀색 혹은 옅은 초록색 (대자연과 비슷한 색깔, 건강에 좋은 느낌)

  - 등장인물 : 피부가 좋은 여자 모델, 피부가 좋은 아기 혹은 둘 다

  - 기타 효과

        ㄴ깨끗한 물이 한 방울 떨어지는 컷 확대

        ㄴ깨끗한 물로 세안 혹은 샤워를 하며 상쾌해하는 모델이나 아기

        ㄴ불어오는 산들바람, 보드라운 이불을 끌어안으며 행복해하는 표정

        ㄴ물이 뚝뚝 떨어지는 피부에 바르는 미끈한 제품 (크림이나 기름)

        ㄴ제품을 바르고 난 뒤 피부에서 광택이 나는 모델 / 아기

  - 클라이막스, 마지막 한 마디

         ㄴ"촉해요"



 죽을병에라도 걸린 마냥 집 안에서 은거하며, 종일 TV만 보고 있는 어린 그. 그는 위와 같은 광고를 볼 때마다,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다. 그의 피해의식과 비뚤어진 심성이, 분풀이할 새로운 대상을 찾았다. 그는 광고를 보며 속으로 계속 욕을 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라고 표현해도 적절하다. 그는 샤워하는 시간이 가장 싫었으며, 피부에 무언가를 바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샤워하고 나서 물기도 제대로 닦지 않은 상태로 그 위에다가 미끌미끌한 무언가를 바른다? 환상적인 조합이다.



 그도 귀로는 익히 들었다. 펄떡거리는 그를 진정시키며 로션을 바르던 어머니도, 피부에는 보습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피부에 미끈한 무언가가 닿는 순간부터 열불이 뻗쳤으며, 이를 박멸하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문지르다가 온몸에 열이 올라 무아지경으로 전신을 긁어대곤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짜증 / 신경질 / 열불 등은 아토피가 좋아하는 먹이였다. 

 아토피가 계속해서 기승을 부릴 수 있도록 먹이를 주었던 것은 그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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