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우리나라와 너무나 다른 나라였다. 겉모습이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옛것을 보존하는 데는 도가 트인 사람들 같았다. 오죽하면 가이드님은 중고물품 가게를 가끔 산책하듯 들른다고 했다. 워낙 버리지 않아서 혹시나 나온 옛것은 어마어마할지도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는다고 했다. 실제로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님의 첫 번째 앨범 LP 판을 찾았단다. 또 인상적이었던 다른 점이라면 고속도로에도 통행료가 없고, 가장 놀랍던 광경은 박물관 옆에 박물관, 시내 전체를 전시관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던 런던 1지역에서 박물관, 전시관이 무료였다.
한국에서 유명인의 미술 전시가 열리면 한숨부터 나왔다. 또 얼마나 기다리고, 서있어야 할까... 피카소, 모네전등 다들 이름을 아는 사람의 전시가 열리기만 하면 짧은 기간의 전시에 꼭 보려고 예매에서부터 장난이 아니다. 또 막상 전시를 가서도 전시장 밖에서 줄 서 2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 전시를 보기 전에 이미 기운이 하나도 없어질 지경이다. 전시를 관람하는 건 더 난리다. 줄을 서서 한 발도 물러설 수 없이 벽을 따라 발자국을 찍었던 전시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참 그런 전시들을 좋아했다. 애가 좋아하니 그렇게라도 보러 다니던 전시였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영국에서 관광객으로 전시 관람은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많이 봐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제대로 즐길 수 없었지만 영국 아이들은 늘 도서관처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미술 교과서가 필요 없었다. 무료로 유리도 없는 액자에 맨눈으로 고흐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여기였다. 인기가 적은 전시장 구석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바닥에 앉아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개의 그림만 보면서 즐겨도 되는 곳이다.
보통 전시가 있으면 200개의 사진에 눈도장을 찍느라 한 장의 인상적인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문화생활이 비단 내 개인적인 부족함만이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 인기가 많아 줄 서보는 미술 전시에 다녀왔다. 늘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니라 난리 법석이었다. 줄 서는 스트레스 두 배에 사람들의 매너는 아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전시관 안에 관리가 살벌했다.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소리까지 들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액자 유리를 찍는 사람까지 있었구나.. 생각해야 했다.
금전적인 부담이 없고, 다 봐야 한다는 욕심 없이, 늘 곁에 있는 붓끝의 감동을 다른 그림의 방해 없이 느낄 수 있음이 부럽다. 그런 삶을 어릴 적부터 살았던 아이들은 적어도 예술의 감동이 뭔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지... 누군가에게는 일평생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감정을. 어느 한쪽에서는 넘치도록 느끼는 걸작을 다른 한쪽에서는 흉내만 내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먹고사는 게 문제이기도 하니 비교적 괜찮은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 내 아이는 그래도 좀 더 나은 생활을 했으면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