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부족함이란 배움으로 나아가는 수단이 되었다. 부족함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깨닫는다. 사람들은 계속 부족함을 채우려고만 한다. 이미 가득 찼음에도 더욱 구겨 넣어 포화상태가 된다.
복통이 있어서 먹는 것을 줄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나는 평소 항상 과잉의 에너지를 섭취했었다. 하루동안 몸속을 비워보니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인 흰 죽이 너무도 맛있었다. 몸에도 미니멀이 필요하다. 과식을 하면 독소가 몸에 쌓인다. 물건을 필요할 때 사듯이 배가 고파지면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입이 심심하다면서 음식을 먹으면 쓰지도 않는 물건을 가득 쟁여 놓는 것과 같이 몸속에 불필요한 것들이 자꾸 쌓이게 된다.
욕실 용품을 줄였다. 좋은 향이 나는 바디클렌저가 시중에 많이 있다. 몸을 씻고 바르는 오일과 로션의 종류도 많다. 샴푸, 린스, 헤어 에센스, 헤어오일도 취향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과거에는 욕실 선반이 모자라 욕조를 빙 둘러 많은 제품들을 나열해 두고 여러 가지 제품들을 사용한 적도 있다.
하지만 과잉은 좋지 않다. 아껴 쓰지 않게 되고 소중함을 간과하기 쉽다. 내가 사용하는 욕실 제품들은 가짓수를 많이 줄였다. 몸은 비누를 이용해 씻는다. 하루에 여러 차례 씻는 경우에는 물로만 씻기도 한다. 비누로 머리감기를 시도했다가 나와 맞지 않아 샴푸를 이용한다. 선반에 샴푸는 몇 가지 종류가 있기에 사용하고 싶은 대로 골라 사용하고 컨디셔너도 가끔 쓴다.
가족들은 각자의 필요와 취향에 맞게 사용한다. 지루성 피부염, 탈모, 혹은 쓰고 싶은 제품이 따로 있기도 하다. 가족들에게는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용하는 제품이 여러 개이지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욕실에 여러 가지 제품을 늘여 놓고 쓰지 않으니 더 아껴 쓰게 되는 것 같다. 당장 눈앞에 많은 양이 보이면 아끼기보다는 헤프게 쓰게 된다.
옷도 많이 줄였다. 나는 평소 입는 옷이 정해져 있다. 항상 입는 옷만 입는 편이다. 사실 옷장에 옷이 많은 사람들도 자주 입는 옷은 몇 벌 되지 않을 것이다. 불편하거나 장식이 과한 옷, 색이 튀는 옷, 몸에 맞지 않는 옷들은 진작에 비웠다. 가지고 있어 봐야 옷장을 가득 채우고 불필요한 공간만 차지하기 때문이다.
옷이 적다고 가난해 보이거나 옷을 못 입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남들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는지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 나 역시 옷을 줄여 시간과 돈의 낭비를 막았다. 옷의 가짓수를 줄여보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만 남게 된다. 편하고 질 좋은 옷을 오래도록 입는 것이 좋다.
“입지 않는 옷을 가려내는 유용한 전략 가운데 하나는 ‘옷걸이 뒤집기’다. 열흘에서 보름 정도 시간을 두고 입은 옷은 옷걸이를 반대로 뒤집어 보관해 보자. 한 주가량 시간이 지나 옷장을 열어보면, 주로 손이 갔던 옷들이 어떤 것인지 얼추 가늠이 된다.” <진민영,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옷의 가짓수가 많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옷을 깔끔하게 잘 관리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안목을 늘리면 된다. 옷이 많지 않으니 내 취향에 맞는 옷은 나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다. 공기가 잘 통하는 공간에 반듯하게 걸린 옷을 보면 기분도 좋아진다.
“새 옷을 사지 말자는 것은 멋을 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옷을 단순한 물건 이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친밀하고 직관적인 수단으로 여기고 존중하자는 말이다.”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족하다는 것은 남겨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고 아껴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억지로 채우지 않기 때문에 돈도 절약된다. 넓은 공간과 심미적인 안정감을 줄 수도 있고 불필요한 것에 쏟았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시간, 돈, 공간, 에너지를 줄여 나에게 자유로움을 줄 수 있다.
구속됨이 없이 간편하고 편리해졌다. 부족해도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남들 눈에는 많이 부족해 보여도 사실 나에게는 풍족한 삶이다. 결핍이 가져오는 결과는 생각보다 긍정적이다. 부족하기 때문에 낭비가 없다. 결핍에 의해 좀 더 창의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음식을 할 때도 옷차림에서도 다 갖추지 않더라도 기꺼이 완성할 수 있다. 사람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 때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부족해서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많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상황에 맞지 않기 때문에 다 갖추고 살지 못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심지어 부족하더라도 그만큼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사고를 전환하면 일상생활에서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사람은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욕심은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욕심을 비우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부족함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 다소 역설적이지만 부족하기에 더 나은 곳으로 나를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