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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Dec 11. 2024

채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비어 있는 공간이 있으면 빨리 채우고 싶을 때가 있다. 허한 마음을 물질로 달래 보려는 것이다. 적게 소유한다는 것은 뭔가 부족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부족함을 굳이 채워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빈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좋다. 잠시 청소를 하느라 물건을 치운 빈자리가 좋았다. 빈 벽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비워둔다. 자주 쓰는 물건도 아닌데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하지 않는다. 꽉 막힌 공간은 오히려 주기적으로 물건을 비워내어 틈을 만든다.




 예전에는 냉장고 속에 먹을거리를 가득 채우고, 수납장에는 생필품을 수도 없이 쌓아 두고 살았다. ‘문구덕후’였던 나는 쓰지도 않는 스티커를 가득 모았고, 각종 형광펜을 큰 통에 전시하듯 채워두었다. 화장품은 종류별로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해서 기한까지 다 못쓸까 봐 전전긍긍했다. 옷장에는 혹시나 살이 빠지면 입거나 혹은 다시 살이 찌면 입을 옷들을 한데 모아 걸어 놓았다.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정말 많은 물건들을 비웠다. 그리고 다시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 물건을 도로 채운다는 것은 오히려 숨 막히는 일이다. 물건이 많으면 얼마나 불편할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물건이 많아서 든든한 것이 아니라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건이 많으면 생활공간이 좁아진다. 다행히 이사를 자주 다녀서 큰 짐을 정리할 기회가 많았다. 게다가 미니멀하게 짐을 줄이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차례 집안을 뒤엎어 온갖 종류의 물건들을 비웠다. 당장 청소를 해 봐도 알 수 있다. 선반 위에 늘어놓았던 물건들을 서랍 안으로, 수납장 속으로 넣으면 집안을 넓게 쓸 수 있다. 물론 아예 없애버리면 더욱 좋다.




 가득 채워진 물건은 절약이 되지 않는다. 먹는 것과 생필품이 특히 그랬다. 많이 쟁여놓은 것들은 헤프게 쓰게 되고 지겨워진다. 마구 써도 또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전혀 절약해서 쓸 생각을 못한다. 심지어 쓰면서 고마움 같은 건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빨리 다 써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절약은커녕 낭비를 하게 된다. 




 빼곡히 쌓인 물건들과 상반되게 내 통장은 텅 비게 된다. 할인해서 구입하든 정가에 사든 아무튼 물건을 사는 순간 돈이 빠져나간다. 각종 물건을 채우다 보면 카드값이 쌓이고 빚이 늘어난다. 요즘은 소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 페이나 카드를 등록해 놓았다면 몇 초 만에 다양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그렇게 택배 상자가 쌓이고 물건을 뜯는 순간 흥미는 사라진다. 




 채우지 않고 비워두면 좋은 점이 많다. 먼저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엉망으로 뒤엉킨 서랍이나 장롱에서 물건을 찾지 못해서 화가 났던 경험이 있다. 물건을 제자리에 둔다면 더더욱 찾기 쉽다. 빈 공간이 많아 물건에게 자기 자리가 생기고 빈틈이 많이 있으니 섞이지 않는다.









 또한 빈 공간이 많으면 물건끼리 떨어져 공기순환이 잘 되고 상하지 않는다. 옷이나 책 등 물건들이 너무 겹쳐져 있으면 숨 쉴 틈이 없다. 빼곡히 먼지만 쌓이고 곰팡이까지 생기기 쉽다. 빈틈사이로 순환이 잘 되면 물건을 보관하는데 편리하다. 찌그러지거나 겹치는 부분이 없어져서 물건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재고파악이 쉽기 때문에 상당히 경제적이다. 다 써갈 때쯤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면 되기 때문에 소비를 들쭉날쭉하게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아껴 쓰고 끝까지 쓴다. 치약을 끝까지 짜고, 선크림을 가위로 잘라 쓸 때 생각지도 못한 쾌감이 일어난다. 물건의 쓰임을 다 할 때까지 잘 썼다는 뿌듯함과 대견함이 들고, 그만큼 애착도 간다. 




 빈 공간이 주는 매력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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