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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하 Mar 05. 2024

저는 '조건'을 좀 봅니다?

의외로 '사랑'은 흔한 감정이 아니라서.......

이런 글을 쓰는 게 나한테 득이 될 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 손가락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내일 당장 어떤 핫 앤 핸썸가이를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그 사람도 글쓰기를 좋아한다며 (요즘 글 읽고 쓰는 게 좋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하면 마음속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며 이런 글을 썼던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가서 몰래 지우고 온 뒤 브런치 작가명을 알려줄 수도 있다.


이틀 연속으로 글을 써서 업로드를 한 후 통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나는 내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글을 써낼 때 만족감이 큰데 최근엔 글로 써서 '박제'할만한 진한 감정이나 생각이 없었달까.

https://youtu.be/6 mhk7 axqZuE? si=cC88 qSr6 Lo7 C6 t3 N


그러다 어젯밤에 이 영상을 보았다. 이은해 사건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분석한 영상. 이은해의 가스라이팅 수법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윤상엽 씨의 '감정'에 주목한 것이다. 이은해가 피해자를 심리적 지배했고 부당하게 착취했지만 사실 피해자는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인지했으며 (잘은 모르지만, 본래의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 상황을 자의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일생에 한두 번쯤은 그런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는데 나 같은 경우엔 다행스럽게도/불행하게도 이미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내 브런치 글 목록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또 쓰기엔 너무나 쑥스럽고 감정폭탄을 터트리는 것 같아서......) 많은 심리상담사, 정신과의사들은 연애상담을 할 때  '(그 사람보다)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요. 진정한 사랑 할 수 있어요. 언젠간 나타나요.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하거나 이미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놓친 경우라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준 사람이 있었으니 또 있을 수도 있지요?'라고 다소 뻔한 멘트를 던지곤 한다.


그런데 다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던,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면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을 못 잇는달까. 전문가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 그 누구도 '그런 사람 또 나타나겠지! 힘내!' 한 적이 없다.

이유는 세 가지라고 본다.

1. 어릴 적부터 좋아해 줬던 사람이라, 이제 다들 나이를 먹어 순수함이 사라져서.

2. 그 사람 자체가 유난히 보기 드문, 순수한 사람이라서

3. 요즘 세상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갈망하고 드높이는 세상이 아니라서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지옥을 경험하는 것처럼 불안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더 사랑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더 사랑하면 지는 거고 '을'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위의 영상을 보면 도피디가 '실제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김태경 교수가 '아니요, 그럴 리가요. 더 많이 사랑해서 행복할 수도 있죠.'라고 대답한다. 이걸 보고 나는 내 마음의 지옥이 사랑이 넘쳐서가 아니라 부족해서였음을 깨달았다. 사실 나는 연애할 때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던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요즘 그 사람 생각을 많이 했다. 아니 늘 연애에 있어서 쓴 맛을 보고나면 그 사람을 반추한다. '걔라면 나에게 안 이랬을 텐데'하며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그 사람과 비교되기도 하고 생각만 해도 아픈 게 낫는 느낌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그래,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렇게 반추하기만 해도 아픈 게 낫는다. 그렇게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나를 사랑했었다니! 


나는 연애하고 싶은 대상이 나타나면 '이 사람도 그 사람처럼 날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며 다가갔다가 아닌 걸 알고 실망한다. 그러고 나서 매번 같은 생각을 한다. '나를 사랑한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는 것 같아.'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나 연애하자고 하는 사람은 많았어도 나를 사랑한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것 같다. 애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희생하고 포기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걸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날 떠나 시간이 흐르고 거기다 새 애인이 생겨 행복해한다면 바로 사라지며 분노로 변할 그런 가변적인 마음.


오늘도 나는 아침에 친구와 연애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좀 조건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니 사실 하나도 안 중요하고 날 진심으로 사랑하는지가 훨씬 중요한데 그런 일은 일어나기가 너무 어려워서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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