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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5. 패서디나의 행복

방 한 칸 따로 없는 그 작은 에어비엔비에서 우리 둘은 행복했다.

by 줄리아

패서디나는 엘에이 근교 중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격리기간이 끝난 후 우리는 도시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패서디나는 헝거게임의 판엠이 연상되는 도시 같았다.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웠으며, 시내의 가게들은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심지어 약국에서 나오는 아주머니까지도 굉장히 부유해 보였다.


우선 처음으로 간 곳은 “빅뱅 이론” 시트콤의 배경인 칼텍 대학교였다. 워낙 유명한 대학교이고, 천재들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해서 건물도 엄청 크고, 세련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크게 독특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빅뱅 이론” 드라마의 실제배경이 된 곳에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IMG_8817.HEIC 칼텍 내부

심지어 칼텍 근처에서 마리화나 냄새도 아니고, 약간 썩은내? 같은 하수구 냄새가 많이 났는데, 세계적인 학자들이 있는 곳이라고 하니 썩은내도 분명 과학 실험을 하면서 나는 냄새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ㅎㅎㅎ 뭐 똥도 금똥이라고 믿을 수준이었다.


다음 여행지는 헌팅턴 라이브러리였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에서 작품을 보는 도중에 내 근처에 있던 어린아이가 울며 보챘다. 어린이들은 원래 울고 보채는 일이 그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구만..’ 하고 지나갔다. 약1분? 2분 정도가 되었을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에게 근엄한목소리로 따라 나오라고 했다. 짜증이 있는 목소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흥분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차분한 목소리이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따라 나오라고했다.


아이는 이제 자신의 앞날이 눈에 보이는지 칭얼거림을 넘어서서 악을 쓰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끌려나갔다.


그 부자는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고, 건물을 나올 때까지 그 건물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떼를 써도 소용이없었다. 그 근엄한 목소리의 아빠는 아이에게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구두로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 부모의 인내심이 정말 대단했다.


어릴적 거의 망아지 수준으로 뛰고, 소리지르고, 미친 사람처럼 날뛰던 나를 잠재웠던 것은 아버지의 훈육이었다. 우리 집의 회초리로 다스려진 나는 저렇게 말과 눈빛만으로 아이를 통제하고 훈육하고 있는 그 부모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저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정원. 작품보다 정원이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다.


그 이후로도 패서디나 시청에 가서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신혼부부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시내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으며 구석구석 살폈다. 정말 가게들이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우아해서, 이 도시 자체가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IMG_8842 4.HEIC 맛있던 아이스크림

우리 부부는 하루에 한개의 관광지를 보고 우리의 숙소로 들어와서 고기를 구워먹고 심슨을 보았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밖에 있으면 타죽을것 같지만,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둘이 숙소에 앉아 심슨을 보면서 낄낄대며, 내일은 무엇을 해먹을지, 어떤 과일을 사먹을지, 그리고 어느 관광지를 새롭게 가볼지를 결정했다. 정말 소소한 행복이었다. 심슨에 나오는 장면을 남편이 따라하면 그 것이 너무 웃겨서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비록 숙소는 튼튼하지 않고, 새벽에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나를 미치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기대하면서 사소한 것들을 같이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정확히 약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패서디나에서 어디어디 갔던 것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그 작은 에어비엔비에서 고기를구어먹고, 심슨을 보면서 함께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자동차 빨리 사야 하는데, 남편이 한국 예능 보고 있어서 싸운 기억까지.. 방한칸도 따로 없던 그 곳에서의 소소한 생활이 참 행복했다.


IMG_8965 4.HEIC 개미떼가 출몰하고, 새벽에는 동물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로 잠도 못자게 하였지만, 이 곳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망고도 매일 사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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