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이런 질문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왜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을까?" 2026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Strategic Norm Selectivism, SNR)'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패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국제 규범은 모든 국가가 함께 지켜야 할 보편적 질서였습니다. UN 헌장, WTO 체제, 인권 규범 등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2025년을 거치며 이러한 보편적 규범 체계는 급격히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필요한 규범만 골라 쓰는' 전략적 선별의 시대입니다.
이 글에서는 2025년 수집된 방대한 국제 질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6년 국제 사회를 지배할 가장 중요한 패턴인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SNR)는 한마디로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충하는 국제 규범들 중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 따르는 외교 전략"을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오늘날 국제 사회는 크게 두 개의 규범 블록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 중심의 기술·안보 규범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중심의 경제·개발 규범입니다. 각 국가, 특히 한국 같은 중견국들은 이 두 규범 체계 사이에서 자국에 유리한 규범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한국은 반도체 기술 보호를 위해 미국의 수출 통제 규범은 따르지만, 동시에 중국 시장 접근을 위해 경제 협력 규범도 유지하려 합니다. 이처럼 상충하는 두 규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SNR의 핵심입니다.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는 다음 세 가지 핵심 특징으로 정의됩니다.
첫째, 이중의 잣대(Dual Metric)입니다. 과거에는 "이 규범을 지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이 규범이 우리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가", "이 규범이 우리의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종종 이 두 질문의 답은 서로 충돌합니다.
둘째, 규범의 도구화(Instrumentalization)입니다. 국제 규범은 더 이상 인류 보편의 가치나 공동의 질서가 아닙니다. 각 국가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유리하면 따르고, 불리하면 무시하거나 재해석하는 것이죠.
셋째, 규범적 중립 지대의 소멸(No Normative Neutrality)입니다. 과거에는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살아갈 공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SNR 시대에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는 선택지가 사라졌습니다. 모든 국가는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SNR이 등장한 가장 큰 배경은 지정경제적 분열(Geo-Economic Fragmentation)의 심화입니다. 2024년 말부터 본격화된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전통적인 국제 통상 규범의 기반이었던 WTO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습니다.
2025년 뉴스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트럼프'라는 키워드가 599회, '관세'라는 키워드가 504회 등장했습니다. 이는 보편관세, 상호대응세율 같은 일방주의적 통상 정책이 얼마나 큰 관심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지난 80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자유무역 규범이 하루아침에 '무역 전쟁'이라는 뉴 노멀로 바뀐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안보의 경제화'입니다. 과거에는 안보와 경제가 분리된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 정책이 곧 안보 정책이고, 기업의 생존 전략이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됩니다. 반도체 공급망, AI 기술, 데이터 주권 같은 이슈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경제와 안보가 융합된 '지정경제학(Geo-Economics)'의 시대가 열렸고, 이는 규범 선별의 필요성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두 번째 배경은 미·중 패권 경쟁이 군사적 대치보다 '기술 패권'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고 부릅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기술 같은 첨단 분야에서 '기술 주권(Technology Sovereignty)'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기술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 생존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른바 '봉쇄전(Containment Strategy)'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차단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들과 기술동맹을 구축하는 전략입니다. 이 과정에서 UN이나 WTO 같은 보편적 다자기구는 무력화되고, 대신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 또는 '유사입장국 연대(Like-minded Coalition)' 같은 새로운 형태의 규범 체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압력 속에서 각 국가는 생존을 위해 특정 규범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가 탄생한 토양입니다.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는 단순한 외교 전략을 넘어,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각 국가는 제한된 자원과 능력 안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 하는데, SNR은 바로 이 최적화 문제의 결과물입니다.
국가가 얻을 수 있는 총 전략적 효용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안보적 동맹 규범을 따름으로써 얻는 효용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실리 규범을 따름으로써 얻는 효용입니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U_SNR = α × f(X_A) + (1-α) × g(X_E)
여기서 X_A는 안보 규범 수용의 정도, X_E는 경제 규범 수용의 정도입니다. α는 안보에 부여하는 가중치인데, 2026년 현재 기술 주권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α 값은 1에 가깝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즉, 안보가 경제보다 우선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국가가 두 가지 상충하는 제약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약 조건 1: 동맹 가치 유지
안보적 동맹 규범을 최소한의 수준(X_A,min) 이상으로 따라야 합니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동맹으로부터 배제되고 고립되는 **'멜로스의 비극'이라는 막대한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제약 조건 2: 경제적 비용 관리
하지만 안보 규범을 과도하게 따르면 중국 시장 접근성 상실, 공급망 이중화 비용 증가, 관세 부담 등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결국 각 국가는 안보적 최소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선별점을 찾아야 합니다. 2026년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기술-안보 규범의 최소 기준이 계속 높아지면서 중견국들의 경제적 부담이 불가피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멜로스의 비극 : 국제적 정치 현실은 군사력등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개념
축 1: 테크노-실존 규범(Techno-Existential Norms, T-EN)
테크노-실존 규범은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규범을 말합니다. 미국과 가치 공유국들이 주도하는 이 규범은 SNR의 최소 수용 기준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T-EN의 가장 큰 특징은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기술을 통한 국가적 재앙을 막을 것인가"를 다룹니다.
구체적인 예로는 AI 거버넌스, 핵심 기술 공급망 표준,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제재 규정, 디지털 무역 표준 등이 있습니다. 이 규범들은 보편적 합의보다는 '봉쇄와 차단'의 성격을 강하게 띱니다.
T-EN을 수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첨단 기술 접근성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국가의 미래 생존 자체가 위협받습니다. 따라서 T-EN은 생존을 위한 필수 규범으로 인식됩니다.
반면 리얼-경제 규범은 중국과 개발도상국들이 주도하는 경제적 실리와 개발 협력 중심의 규범입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일대일로), 무역 편의 제공, 원자재 접근성 보장 등이 핵심입니다.
이 규범의 특징은 안보적 가치나 인권, 민주주의보다 즉각적인 경제적 이익과 시장 접근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국과 경제적 관계가 깊은 중견국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선택지입니다.
흥미로운 변화는 '反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흐름입니다. 국제 규범의 한 축이었던 DEI 정책이 경제적 실리와 안보 중심으로 축이 옮겨가면서 기업과 투자 부문에서 축소되거나 폐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보편적 가치 기반의 사회 규범이 실리 앞에서 후퇴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는 특히 한국 같은 중견국들에게 가혹한 도전을 안겨줍니다.
SNR이 확산되면서 중견국이 '규범적 중립'을 유지할 공간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를 '규범적 멜로스(Normative Melos)'라고 부릅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멜로스 섬의 비극을 기억하시나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려던 작은 섬나라 멜로스는 결국 강대국 아테네에게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논리로 파괴당했습니다.
오늘날 규범 영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술 동맹 블록에 편입되지 않으면 고립되는 위험에 직면합니다. 강대국들은 중립국에게 "우리의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적대 행위"라는 구조적 압력을 행사합니다.
한국은 기술 동맹을 통해 '멜로스의 비극'을 회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는 자율적인 외교 전략 수립에 근본적인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SNR은 국가와 기업, 심지어 개인에게까지 안보 비용을 필수적으로 지출하도록 요구합니다.
전방위적 안보 개념의 정착: 전통적 군사 안보를 넘어 경제 안보, 기술 안보, 사이버 안보가 모두 국가 안보의 핵심 영역이 되었습니다.
공급망 이중화 비용: 미국 중심 공급망으로의 편입 압력은 한국 기업들에게 중국과의 공급망 단절 또는 이중화를 강요합니다. 초기에는 투자 비용 상승과 효율성 저하라는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는 '안전 프리미엄'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술 규제 리스크의 일상화: 예측 불가능한 수출 통제, 투자 심의, 기술 이전 제한 등 규제 리스크가 상시화되면서 기업의 기술 혁신 속도와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이중의 짐(Double Burden)이 됩니다. 외부의 지정경제적 충격은 국내적으로 경제 위축과 사회 분열이라는 이중의 부담으로 전환됩니다.
국제 규범 환경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극명하게 갈립니다. 이를 '양극 감성 증후군(Bipolar Sentiment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2025년 뉴스 빅데이터 분석 결과, 긍정 정서를 나타내는 키워드(혁신, 안정, 안전, 협력)와 부정 정서를 나타내는 키워드(갈등, 위기, 불안, 피해)가 동시에 높은 빈도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정책 당국이 규범 재편을 통해 달성하려는 '안정'이라는 이상적 목표와, 실제로 국민이 체감하는 '불안'이라는 현실적 우려가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제 규범 논의는 목표와 현실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이중적 담론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현 체계가 표방하는 것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2026년 대한민국은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가 요구하는 이중적 적응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미국의 테크노-실존 규범은 생존을 위한 필수로 수용하고, 중국과는 상호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선별적 통상 규범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존형 규범 적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능동적 규범 주도국(Proactive Norm-Setting State)'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국제 규범의 해체를 단순히 위기가 아닌 '규범 재창조의 기회'로 인식해야 합니다.
다자 규범의 '틈새 주도': UN이나 WTO 같은 전통 다자기구의 기능 약화를 인정하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나 AI 거버넌스 같은 새로운 소다자주의적 규범 설정의 초기 단계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여기서 '규범적 이니셔티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견국 간 규범적 연대: 특히 디지털 통상과 데이터 주권 영역에서 중견국 간 연대를 주도함으로써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의 부정적 영향을 완충할 수 있습니다.
'규범 개선' 외교 강화: 기후 변화, 디지털 격차, 팬데믹 대응 등 인류 보편적 의제에서 규범을 선도적으로 제안해야 합니다. 이는 기술-안보 규범에 속한 국가들이 지정학적 이익이 걸리지 않은 영역에서 보이는 '실용적 다자주의'의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입니다.
기술 주권의 제도적 보장: 테크노-실존 규범 시대에 대응하여, 국가 AI 전략을 군사·안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AI 선도국가(AI G3) 도약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합니다. 핵심 기술의 '기술 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전담 조직과 법적 체계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리스크 거버넌스' 구축: AI의 오남용(딥페이크, 자율살상무기) 같은 기술 리스크에 대비하여, 윤리적 규범과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선제적 국내 규범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국제 규범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넘어, 건전한 리스크 거버넌스를 통해 국제 사회에 모범을 제시할 기회입니다.
2026년은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가 국제 질서를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국가들은 안보적 동맹 가치와 경제적 실리 사이의 영원한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규범은 더 이상 상호 호혜적 질서가 아니라,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모든 중견국은 이러한 이중적 압박 속에서 '안보=생존'이라는 실존적 명제를 내재화해야 합니다. 테크노-안보적 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능동적으로 테크노-실존 규범 분야에서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실용적 다자주의의 틈새를 공략하는 '능동적 규범 주도국'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2026년 국제 질서의 파고는 거셉니다. 하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때,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국가적 생존 전략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