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라쉬, 시기쇼아라를 방문하다.
이렇게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는 드넓은 평원을 내가 언제 봤더라? 본 적이 있긴 한가?
도저히 눈으로 보고만 지나칠 수 없는 풍경에 결국 우리는 차를 세웠고 안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을 향해 올랐다.
아마 내가 올라가는 이 언덕은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이 아닌 트랙터와 가축만이 다니는 길임에 분명하다. 그런 길을 우리는 이 아침에 올라가고 있다.
약 십여분 올랐을까?
끙끙거리며 오른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안개 자욱한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치 물감에 물을 많이 섞은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한 아스라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실, 어젯밤 우리는 갑자기 예정에 없었던 퍼거라쉬(Făgăraş) 마을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이 마을에 멋진 요새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 이미 이곳을 다녀온 관광객들의 후기가 우리의 마음을 더 유혹했는지도 모르겠다.
퍼거라쉬 요새는 몽골군과 오스만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성인데 성 주변에는 해자를 만들어 그로 인해 발굴된 흙들을 이용해 성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성에 비해 두 배이상 두껍게 만들어 어떤 공격도 방어를 할 수 있게끔 만든 성이었지만 이 성을 더 두껍게 만든 마할라트는 결국 이슬람 군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이후 미하일 왕은 다시 이 성을 점령해 그의 가족을 이곳에 머무르도록 하고 보물도 이 성에 보관했다고 한다.
이 성은 군사적으로 이용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주로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주로 정치범과 반항세력들이 수감되었다고 하는데 성 주변을 해자가 둘러싸고 벽도 이중으로 만들어져 도저히 탈출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요새가 이렇게 아름답게 관리되고 있나 싶을 정도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많은 요새들을 방문했지만 퍼거라쉬 요새는 지금까지 본 요새들과는 달리 무척 웅장하고 견고하며 분위기와 품격이 느껴지는 한마디로 우아하고 고급진 기품이 느껴지는 요새였다.
오래전에 지어진 요새가 뭐 그리 특별할 게 있나 싶었지만 정작 들어와 보니 나의 생각과는 달리 요새의 규모가 더 대단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 떠올려져 몸서리난다.
요새 내의 박물관 복도를 따라 다양한 전시물들이 놓여있는 방들을 돌아보았다.
길고 긴 복도 양옆엔 약 26개의 방에서는 제각기 특징적인 전시물들이 되고 있었는데 왕들의 회의실을 비롯해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전통문화들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약 두어 시간 머물며 멋진 요새와 박물관 관람을 마친 우리는 요새 옆에 있는 멋진 교회( Sfântul Ioan Botezătorul)를 방문했다.
거대한 황금돔 지붕이 번쩍번쩍 빛나는 교회의 내부에 들어가 보니 역시 내부도 번쩍번쩍 화려하다.
대리석 바닥으로 채광이 좋아 더 화려한 듯하다.
광장에 있는 벤치가 눈에 들어와 자세히 보는데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아주 고급진 벤치들이다.
디자인도 색다르고 왠지 고급져 보인다.
퍼거라쉬 교회가 인상적인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퍼거라쉬 마을의 보석은 단연코 요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눈앞에 보이는 교회가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왠지 외장에 치중했다는 느낌이 강해 교회가 주는 신성한 기운을 느끼기엔 조금 부족한 듯했다.
자그마한 마을인데 오래 돌아다니니 서서히 허기가 진다.
퍼거라쉬 중심가를 둘러보다 줄을 서서 기다려 빵을 사가는 주민들이 보여 그곳으로 가 우리도 줄을 선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빵들을 몇 개 주문하는데 주인이 우리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대답하니 곧 루마니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도 묻는다.
우리는 여행 내내 루마니아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하자 무척 좋아하시며 본인 자신도 루마니아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며 루마니아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라고 말한다.
유쾌하고 친절한 주인과 대화 못지않게 다른 주민들도 무척 친절하다.
빵과 커피를 사들고 경치 좋은 장소에 앉아 먹으니 빵 맛도 꿀맛이다.
잠시 마을을 잠시 산책하는데 마을 곳곳에서 공사 중이다.
골목이 좁은 데다가 커다란 포클레인이 들어와 흙을 걷어내고 길을 차지하고 있어 먼지도 많고 다니기도 불편하다.
아마 다가올 성수기 관람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공사를 하나보다.
공사도 재건축도 필요하지만 마을의 고풍스러움을 오래도록 간직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퍼거라쉬에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 시기쇼아라(Sighişoara)로 출발했다.
퍼거라쉬(Făgăraş)를 벗어나 시기쇼아라로 가는 길,
우리는 큰 도로대신 좁은 시골길을 운전해 가기로 했다.
마을에서 약간 벗어나자 길 옆 언덕으로 가는 좁은 길이 나있어 올라가 본다.
아!! 딴 세상이 나타난다.
마치 오래전에 본 영화 '사운드오브 뮤직'의 인트로에서 본 마리아와 아이들이 놀고 있던 그 동산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주위가 온통 초원으로 마음까지 풍성해지는데 멀리 보이는 파란 하늘아래 붉은 지붕들은 우리에게 색다른 풍경을 제공하고 있어 우리 앞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 듯했다.
이런 곳에서 하루종일 앉아 쉴 수 있다면 그것도 꽤나 멋진 순간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장소들이 군데군데 숨어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행복한 눈요기를 한 후 우리는 그곳을 떠났지만 자꾸 되돌아보게 하는 장소였다.
근데 항상 좋으리라는 법은 없나 보다
울퉁불퉁한 돌길, 많은 먼지, 그리고 깊게 파여 있는 예고 없는 웅덩이들이 운전하는 내내 우리를 긴장시켰다.
운전을 하며 긴장을 한 탓일까? 어깨도 아프다.
약 1시간가량 비포장도로 운전이 우리를 무척 힘들게 했다.
그렇게 어려운 운전 끝에 유네스코로 지정된 마을 '시기쇼아라'에 도착했다.
유네스코로 지정된 이름난 마을이지만 성수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붐비지 않아 편안하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의 그룹도 보인다.
예전에 헝가리에 속했던 시기쇼아라는 드라큘라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블라드 체페슈 3세(Vlad 3 Tepes)가 태어난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
블라드 백작은 이 지역의 통치자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용의 기사단자격으로 'Vlad Dracul' 이름을 사용했고 블라드 자신도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Vlad Draculea'라고 칭했다고 한다.
블라드는 강대국 헝가리와 오스만 사이에서 왈라키아라는 조그마한 공국을 지켜낸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잔인성이 드러나면서 후일 아일랜드의 작가가 이 블라드 백작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가공인물 '드라큘라' 백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실제로 이 블라드 백작은 훌륭한 위인이었다고 한다. 시기쇼아라 주민들은 그렇게 말한다.
시기쇼아라는 마을 곳곳이 한 폭의 그림이다.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가옥 담장과 낡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보여주는 골목길에서 풍기는 소박함은 무엇보다 시기쇼아라의 백미인 것 같다.
예쁜 전통가옥들과 돌길 그리고 파스텔로 칠해진 담벼락 등이 어울려 어느 골목길을 거닐어도 아늑하고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이래서 이 마을이 유명한가 보다.
마을 골목 대부분은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숙소로 운영되는 주택들이었다.
마을 입구의 성문을 지나니 언덕 위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가 보인다.
그리고 곳곳에 서있는 고풍스러운 타워들과 시계탑...
도시의 방어 기능을 담당했던 성벽과 탑들, 그리고 광장과 교회들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요새 안에 있는 타워들은 이름도 특이하다.
정육점 타워, 대장장이 타워, 양복점 타워... 등 무려 9개의 타워가 있는데 그 당시에는 장인 길드들이 이 탑들을 쌓고 관리했다고 한다.
각 분야의 장인들은 이 타워 안에서 물건을 만들어 그 마을을 위해 제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9개의 타워 중 한 곳을 들어가 보니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이 타워는 대장장이 타워(Turnul, The Ironsmiths' Tower)였는데 지금은 마을 화가의 작업공간이 되고 있다.
한 참을 돌아다녀도 지루함은 없지만 다만 마을 전체가 돌길이라 발바닥이 조금씩 아파오기도 했다.
하늘이 맑아 시기쇼아라의 멋진 노을이 보고 싶어 졌다. 그런데 시기쇼아라의 해 지는 시간은 8시 30분이라고 한다.
우리는 마을 레스토랑에서 전통음식 미치테이와 맥주를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미치테이는 소고기를 갈아 손가락 모양으로 만든 음식인데 맛이 아주 좋아 맥주와 딱이다.
가격도 저렴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노을을 보러 다시 선상교회가 있는 마을 언덕 위로 향했다.
지붕들 너머 먼 산으로 해가 지는데 노을이 마을의 붉은 지붕을 뒤덮고 있다.
마을의 붉은 지붕이 점점 검게 보이더니 주변이 금세 어두워진다.
해가 지니 바람도 차다.
서서히 주변이 어두워지면 마을 골목들의 집들도 하나둘씩 불을 밝힌다.
관광객이 적은 이 시기에는 불이 꺼져있는 집이 많다 보니 가뜩이나 좁고 인적 없는 어두운 골목이 더 으스스해진다.
시골 마을의 불 켜진 멋진 야경을 보고 싶었는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오늘 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역행이라도 하듯 여전히 수백 년 전의 골목과 주택들이 어우러진 시기쇼아라는 충분히 낯선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시기쇼아라의 구불구불한 돌길과 고풍스러운 가옥들 그리고 조용한 광장과 잘 보존된 요새와 주택들 사이를 거닐며 낭만에 젖어드는 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숙소 바로 뒷마당에서 짖어대는 개소리도 오늘 밤 따라 더 크게 들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게감 느껴지는 마을 시기쇼아라,
잔잔하고 차분했던 시기쇼아라의 밤은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