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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Jun 18. 2021

남미 여행 일지 15. 우유니의 새벽 -1-

20대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새벽에 나를 일으키는 것은 돈이다


잠을 제대로 잘 새도 없었다. 살짝 눈만 감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아직은 어둑한 새벽. 잠을 잔 것 같지도 않다.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육체도, 정신도 더 자고 싶어 하는데 어제 지불한 돈이 우릴 일으켰다. 더 자고 싶었지만, 돈은 우릴 깨웠다.


 어제 구매했던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요기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잠이 좀 깨는 듯했다. 어제 하도 점프샷을 찍어댄 탓에 허벅지 아직도 아팠다. 대충 씻고 여행사 앞으로 갔다. 우유니의 새벽은 여느 도시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추위는 그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상위권일 것이다. 한국의 겨울보다 더 추운 사막의 공기였다. 각자 가져온 옷을 최대한 껴입고 나갔다. 나는 히트텍을 위아래로 입고, 경량 패딩도 걸쳐서 나갔다. 호텔에서 나서 여행사까지 가는 길. 고요하다. 작고 허름한 도시가 낮에는 관광객들의 활기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새벽 특유의 차가운 공기를 코끝으로 느끼며 여행사 앞에 도착했다.




어둠을 헤치고, 다시 소금사막으로


 여행사 앞에는 스타라이트와 선라이즈 즉, 별구경과 일출 구경 투어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이번에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이들은 젊은 부부였다. 가이드는 이번에도 조메르였다. 어색하게 서로 인사한 뒤 조메르가 준비해준 장화를 신었다. 밤 투어는 바로 촉촉한 사막으로 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장화를 신고 차에 올랐다. 어둠 속을 계속 달려 촉촉한 우유니 사막에 다시 도착했다. 떠난 지 10시간도 안돼서 다시 도착했다. 가는 내내 기절하듯 졸아서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아직 잠에 취해선지, 덜 깼는지 차 안은 적막으로 가득했다. 아직은 캄캄한 밤, 차문을 열고 다시 물기 가득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에서 이정표 하나 없이 사막의 길을 찾아내는 가이드가 새삼 신기하고 대단했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어둠이 짙게 깔린 사막은 고요하다. 생물이라곤 우리밖에 없다. 흔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풀벌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사람이 걸을 때마다 나는 참방 거리는 물소리뿐. 빛도 없다. 가로등도, 도시의 불빛도 그 어느 하나 사람의 손을 탄 빛도 없다. 오직 별빛과 달빛만이 은은하게 떠있을 뿐이다. 새벽의 사막을 감상하는데 커다란 빛은 필요하지 않았다. 달빛 조명만으로도 충분했다. 옅은 별빛과 밝은 달빛이 비추는 소금사막은 낮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어둠으로 사방에 커튼이 쳐지고, 빛나는 구슬처럼 달은 사막의 물가에 비쳤다. 오직 달빛만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듯 빛났다.







순간을 영원으로, 우유니 포토타임


 같이 동행 온 부부께서 카메라를 들고 오셔서 별 배경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직 일반 휴대폰으로는 담기지 않았다. 셔터를 계속 열어둔 채 고정해야 했다. 카메라를 가져오신 덕분에 우리도 더불어 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휴대폰에 형형색색의 화면을 띄운 뒤, 바닥에 비추면 호수의 수면에 그대로 색이 반사되어 사진에 담겼다. 다채로운 색감의 사진을 찍었다. 오직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그리고 밤에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이었다. 또, 허공에 글씨를 쓰면 그대로 사진에 담겼는데, 이를 이용해서 간단한 단어를 사진으로 남겼다. 남미, HOLA, KOREA 등 글자를 허공에 대고 열심히 만들었다. 서로 맡은 글자를 확인하고 가이드가 OK 표시를 할 때까지 연신 흔들었다. 가서 확인할 때의 그 쾌감이란. 형형색색의 글씨가 새겨진 사진. 나도 이런 걸 찍어보는구나.






 해는 어느샌가 어둠을 뚫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평선 위로 빛이 나타났다. 그래도 추운 날씨는 여전했는데, 꽁꽁 안 싸맸으면 얼어 죽을 뻔했다. 일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듯 지평선부터 빛나기 시작했다. 구름이 끼인 탓에 완벽하게 둥근 구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사막의 지평선에서 해 떠오르는 걸 본다는 게 새삼 새로웠다. 하늘은 이제 붉게 타오르는 도화지가 되었다. 우리는 역광을 이용해서 마치 그림자놀이하듯이 실루엣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실루엣만 나오다 보니 여러 가지 재밌는 포즈들을 더 재밌게 표현할 수 있어서 묘한 매력이 있었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네 명이서 인류의 진화를 표현한 사진이었다.





다시, 신의 거울


 은은한 달빛은 어느샌가 자그마한 구슬처럼 사그라들었다. 해가 다 뜨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CG처럼 지평선 부근의 빛이 점점 거세게 변해갔다. 밝아오는 하늘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온 사막을 깨우기 시작했다. 검은 하늘은 점차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붉은빛은 점점 더 밝아졌고, 마침내 소금사막이 눈을 떴다.

 

 해가 밝아와도, 꽁꽁 싸맸어도, 한기는 여전했다. 다행히도 해가 점점 뜨면서 기온은 좀 올라갔지만, 여전히 서늘한 공기가 가득했다. 해는 지평선에서 나와 완전한 구의 모습으로 떠올랐다. 눈 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온 세상을 깨우는 듯했다. 온 세상에게 어둠을 고했던 어제의 석양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소금사막의 지평선에서 태어난 해는 마치 바닷가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해는 점점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우유니 소금사막은 신의 거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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