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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교선 Jul 27. 2021

남미 여행 일지 19. 다시 찾은 쿠스코

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여행기

 새벽에 당도한 쿠스코, 그 풍경


 새벽에 이르러 쿠스코에 도착했다.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온통 밤이라 쿠스코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아직 해는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공기는 차가웠고, 버스에서 내려서도 여긴가 어딘지 한동안 몰랐다. 버스 가이드는 우리가 미리 적어서 제출해낸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었다. 택시는 우리를 아르마스 광장 근처 숙소쯤에 내려주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오히려 난감했다. 우리는 오전쯤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새벽에 도착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해가 뜨기 전의 새벽. 혹시 숙소를 일찍 체크인할 수 있을지 연락을 시도했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오갈 데가 없는 여행객이 이때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나 있을까. 우리는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주변에 문을 연 식당 아무 곳이나 무작정 들어갔다. 한국으로 치면 24시 국밥집이나 김밥천국쯤 되는 집처럼 보였다. 작고 허름했지만 잠시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아침메뉴로 닭고기 수프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역시 추울 땐 따뜻한 국이다. 닭고기 수프는 삼계탕의 열화판 같았다. 듬성듬성 보이는 닭고기 살과 특유의 담백한 닭 육수의 향이 났다. 국물 맛은 익숙했지만, 삼계탕과의 비교는 실례였다. 그렇게 한 그릇의 수프에 기대어 잠시 몸을 녹이고 있을 무렵, 해는 슬슬 떠올랐다.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새벽 특유의 햇살이 비칠 무렵, 식당 앞에는 클럽에서 방금 나온 듯한 외국인 무리들이 보였다. 서구권에서 놀러 온 듯한 이들은 눈이 살짝 풀려있는 것이 마약을 한 건지, 술을 거나하게 마신 건지, 아무튼 밤새 논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취객 집단은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식당 안으로 들어와 간단한 음식을 시켰다. 혹시나 우리에게 시비를 걸지 않을까 은근히 신경을 세우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와는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갔다. 다만, 일행끼리 싸우다가 경찰이 온 것 같긴 했지만. 


 경찰과의 실랑이를 더 보고 싶었지만, 숙소가 열릴 시간이라서 그대로 숙소로 쇄도했다. 숙소는 B&B 스타일로 조식과 숙박만 제공하는 곳이었다. 아늑한 목조 인테리어의 침대 네 개와 외부 샤워실이 전부였지만, 우리에겐 충분한 전부였다. 하루 종일 버스에서 신세를 진 데다가 새벽부터 깨어있던 터라 몸의 피로는 만땅이었다. 얼른 씻고 나서 바로 낮잠을 청했다.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깊이 잠들었다. 알람도 맞추지 않은 채 맘껏 자기로 했다. 자는 순간만큼 또 행복한 순간은 없다. 그것도 아무 걱정 없이 낮잠만 잘 수 있을 때라면 더더욱.


 낮잠을 자고 나서 보니 오후였다. 해는 슬슬 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관광은 그냥 스킵하고, 생필품이나 좀 사러 마트에 갔다. 샴푸와 물, 치약 등 오랜 여행길로 생필품을 보충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고생했던 치약과 칫솔을 뒤로 새 상품으로 교체했다. 



나를 위한 선물, 고오급 레스토랑


 저녁식사는 네이버 평점이 좋은 주변 식당으로 갔다. 쿠스코는 한국인 관광객도 꽤 많은 편이라 네이버 맛집도 물론 있었다. 까다로운 한국인들의 선택이니 믿을만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뭐 돈을 받고 쓰기도 한다지만, 페루 쿠스코에서까지 돈 받고 식당 리뷰를 하는 블로거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


 내부는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고, 음식들 역시 어느 정도 가격대가 높은 편이었다. 네이버 블로그 맛집 다뤘다.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가족단위로 와서 식사하는 곳처럼 보였다. 실제로 우리의 건너편 테이블에서는 대가족이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술집이었다면, 같이 축하해주었겠지만 낯선 곳이라서 들썩이는 몸을 자제했다. 대학생 배낭 여행객들에겐 다소 비싼 곳이었지만 장기 버스투어로 지친 우리를 위한 소소한 선물이라 생각했다. 버스투어로 아낀 만큼 먹을 것에 투자하자는 심산이었다. 전통 수프, 만두요리, 파스타와 닭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물론, 음료도 하나씩 주문했다. 


 한국어 공부를 하는 종업원이 있어서 한국어 몇 가지를 알려주고 팁도 주었다.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는 옆에서 계속 서툴지만 한국어로 말을 거는 장면이 유쾌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비싼 만큼 맛있었다. 음료는 꽃과 과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파스타나 스테이크 모두 정갈하게 플레이팅 된 것이 고급져 보였다. 아침식사가 저렴하고 그에 맞는 식사였다면, 저녁은 비싸고 그에 맞는 식사였다.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돈을 써야 역시 좋은 품질이 나온다. 비단 음식뿐만 아니다. 우리가 누리는 서비스나 시설 모두 약간씩의 바가지나 할인이 있어도, 모두 가격대만큼의 양과 질이 보장된다. 



 그만한 값을 치르고 좋은 음식을 먹으니 다소 안 좋았던 컨디션이 회복되는 느낌이다. 역시 여행 와서는 잘 먹어야 한다. 아끼려고 적게 먹고, 대충 먹었다가 몸에 탈이 나는 것은 여행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은 평소에도 최고의 보약이다. 하물며 여행지에서의 맛읬는 음식은 더 특별하다. 이렇게나 사람을 힐링시켜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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