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남자 4명의 남미 배낭 여행기
마추픽추엔 CG같은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B와 D 사이의 C라고 했던가. 어떤 Choice를 하든 그건 결정하는 사람의 책임이다. 우리의 루트 역시 그랬다. 일방향 뿐인 마추픽추 관광에서 한 루트를 선택하면, 다른 루트는 볼 수 없다. 선택하고나면, 뒤돌아보지 말고 즐기라는 고산도시의 가르침일까? 암튼 포장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우리들이 선택한 루트인 사제 거주 장소, 태양의 돌이 있는 곳과 학생들의 기숙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콘도르 신전으로 떠나보자.
사제들이 거주하던 장소는 터만 남았다. 단단한 돌들이 질서있게 벽을 이루어 남아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창문으로 추정되는 벽의 구멍이다. 건너편으로 웅장한 산맥이 보이는 적당한 위치에 단단한 돌벽을 뚫고 사다리꼴 모양의 구멍이 나 있었다. 전망이 좋은 자리에 사다리꼴 창문. 위치가 좋아 한눈에 마추픽추의 산세들을 볼 수 있었는데, 사다리꼴 모양의 구멍을 통해 옛날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이곳에서 태양신의 기운을 더 가까이 느꼈을까.
다음 목적지는 태양의 돌. 이름만 들었을 때는 무언가 판타지 소설 속에서 등장할 법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스스로 빛이나 열을 낸다던가, 아니면 만지면 신의 저주나 가호를 얻는다던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이었다. 안타깝게도. 태양의 돌은 특별한 느낌이 없는 반듯한 모양의 돌이었다. 무언가 제사 때 사용한 것 같았는데, 덩그라니 유적만 남아있는 모습이 다소 외로워보였다. 그러나 직접 만져봤을 때는 세월이 지나도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은 단단함이 손의 감촉을 따라 흘러 들어왔다.
학생들의 기숙사는 마추픽추 내부로 들어와서 가까이 본 유적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잉카 건축양식 특유의 짜맞추어진 벽들과 주변의 풍경들이 교과서처럼 있었다. 사실, 유적만 남은 곳이다보니 설명이 없다면 어느 곳이 뭐하던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우리도 무슨 무슨 절 터 이런데 가도 뭐하던 곳인지 설명이 없으면 알 길이 없다. 옛 모습을 바라보며, 그 시절 학생들도 활기있게 뛰어다녔을지 상상해보았다. 고산지대에서 뛰어다녔다니, 체력하나만큼은 무지막지하게 강했으리라. 선생님들이 진정시키느라 힘들었겠네.
마지막 코스의 종착지. 콘도르 신전. 근데 말이 신전이지 그냥 제단에 가까웠다. 돌로 된 제단. 돌은 얼핏보면 콘도르의 모습처럼 부리와 날개를 가진 듯 했다. 옛날에는 무언가 치장을 하거나 색을 그렸을까. 그래서 더 콘도르에 가까운 모습이었을까. 인류 건축문명의 손을 거친 신전보다는 자연 친화적이고 샤머니즘에 가까운 신전이었다. 인위적으로 깎은 것이었을까, 자연으로 생성된 돌이었을까.
그냥 머무르고 싶은, 여기
관광은 끝났다. 그 말은 좀 있으면 이곳에서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돌아갈 수는 없기에,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맑은 날씨를 만끽하고, 멀리 보이는 와이나 픽추도 눈에 담았다. 와이나 픽추는 더 높은 산인데, 마추픽추에서도 올려다 봐야할 정도였다. 시선을 돌려 다시 마추픽추 내부를 향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역시나 벽. 잉카 특유의 석기 기술의 정수. 완벽하게 서로 맞물려있는 벽들이 정말 경이롭다. 딱 맞춰진 퍼즐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듯, 맞물려 있는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단단한 벽들과 푸른 잔디 그리고 맑은 하늘의 햇살까지 완벽한 순간이다. 그리고 우린 전통의상 기념품인 판초를 입고 이 곳에 서있다. 역시 한국인.
마추픽추에서의 자유 관람은 그렇게 마냥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진을 남기고, 다시 뒤돌아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푸른 잔디, 맑은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조금은 따사로운 햇살. 낮이 되니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공기를 느끼며 높다란 산세들과 유적의 한 가운데. 그냥 계속 하염없이 머물러도 좋은 순간이다. 모든 관광이 그렇듯,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버스 대신에 걸어 내려 가보기로 했다. 마추픽추의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것은 젊은 패기가 가져다 준 웅장한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