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는 나의 첫 조카다.
오빠와 올케의 우월한 유전자만 빼닮아서인지
태어나자마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사내아이에게 예뻤다, 고 말하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예뻤다.
한 살 터울로 우리 큰아이가 태어났고
둘은 사촌이었지만 형제처럼 잘 놀았다.
오빠네와 한 동안은 같은 동네에 산적도 있었다.
때로 시기를 하기도 했지만
K1이 형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각각 세 살, 두 살 터울로 동생을 봤다.
가족이 모일 때면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이 방 저 방 몰려다녔는데
G의 탁월한 리더십이 빛을 발했던 것 같다.
동생들 각각에게 역할을 나눠주고
때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소한 응징을 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생들도 그랬는지는 물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토요일 오후
출산 선물 잘 받았다는 인사와 함께
아기 사진이 톡으로 왔다.
단지 사진 두 컷인데도, 탄성이 나올 만큼 예뻤다.
사내아이에게 예뻤다, 고 말하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지만
또 한 번,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예쁘다.
고모~ 전해주신 애기선물 잘 받았어요^^
아고~~ 예뻐라..ㅎ, 산모는 건강하고?
네, 잘 회복하는 중이에요.ㅎㅎ
내가 고모 함무이 됐네 ㅋㅋ
사실, 함무이는 벌써 오래 전에 됐다.
제일 큰 할아버지의 양자이자 6남매의 막내인 아버지 덕분으로
나는 집 안에서 항렬이 꽤 높다고 했다.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엄마보다 더 할머니 같은 분들이 나한테 애기씨라거나 아주메라고 불렀다.
그 분들의 자녀들에게 굳이 관계를 정리해서 인사를 시킬 때면
가끔 할머니가 될 때도 있었다.
사실 그 때는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약간의 자극이 되었던 것은
십여 년 전 쯤, 시댁 사촌 조카 즉 촌수로 따지자면 당질이라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남편 사촌형의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
명절에 만났을 때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굳이 나를 소개하며
“00야, 작은 할머니야 작은 할머니.”
“어? 아....으응.”
어색했다. 할머니라니...
아이가 아직 말을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난 아직 할머니 될 준비가 안 됐다고!)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모습도 생각이 나면서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것이
이것이 핏줄인가 싶어 마음이 찡했다.
코로나 때문에 친할머니 할아버지도 3주나 지나서 손주를 보러 갔으니
고모 할매 차례가 언제나 올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 같아서는 냉큼 달려가서 안아보고 싶었다.
아기 사진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궁금하지도 않은데 자꾸 손주사진을 내 보여주던 친구가 이제서 이해가 된다.
내가
고모할머니가 됐다.
어쩐지 진짜 으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걸음걸이도 달라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