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는 지금
주문했던 강아지 패딩이 도착했다.
앞 뒷다리까지 끼울 수 있고
겉은 폴리라 바람을 막아줄 것 같고
안에는 포근한 면 소재라 따뜻할 것 같았다.
단추에게 입혔다.
앞발을 먼저 끼울지 뒷발을 먼저 입힐지 혼란 끝에 똑딱이 단추까지 채웠다.
웬만한 추위쯤 끄떡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단추가 그 자리에 소금기둥처럼 굳어 움직이지를 않는다.
간식을 놓고 오라고 해도 소용없다.
산책을 가자고 하네스를 보여줘도 반응이 없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루돌프 니트만해도 몸을 조이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으니
지금은 낯선 괴물에게 사지를 결박당한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첫 날은 벗겨서 단추가 자는 쿠션 위에 펼쳐놓고 소매에 간식을 숨겨 놓았다.
다음 날에는 거실 한 가운데로 끌고 와서는 깔고 앉는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나 싶어 산책을 가기 위해 옷을 다시 입혔다.
보통은 내가 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고 마스크를 쓰는 과정을 산책의 의미로 알아차려
제가 먼저 출입구 중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앉아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제는
첫 날처럼 거실 한 중간에서 망부석이 되었다.
하루 사이, 포근한 방석으로 친해졌을 뿐
여전히 옷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한 걸음 만큼씩 간식을 놓아보기도 하고
단추를 모두 풀어 줘 보기도 했다.
여전히 그대로다.
일단 후퇴, 모자와 외투를 벗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조금 후에 뒷걸음으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밑으로 와서 낑낑거린다.
다시 천천히 모자를 쓰고 나갈 채비를 하니
갑자기 행동이 빨라지며 먼저 중문 앞으로 간다.
마음의 준비가 끝난 줄 알았다.
단지를 벗어날 때까지는 주춤거렸지만 가던 길을 따라 갔다.
산책로에 들어서면서는 차츰 예전의 경쾌한 걸음걸이를 되찾아갔다.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보온 패딩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4번교까지 갔다.
4교 앞에는 넓은 잔디가 쉼터처럼 조성이 되어있어
단추는 그 곳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마침 요크셔와 푸들이 리드줄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둘은 같이 지내서인지 사회성이 좋은 것 같았다.
단추에게도 호기심을 보이며 잠시 어울렸는데
둘 중 장난기가 많은 것 같은 푸들이 이리저리 뛰며 단추에게 장난을 걸었다.
녀석은 자유로운 상태였지만 단추는 줄에 매어있었기 때문에 예민해졌는지 단추가 경계를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녀석이 뒤를 돌아보느라 갈 체를 하지 않는다.
더 놀고 싶어서인가 싶어 안아들고 한참을 걸어와 내려놓았다.
여전히 뒤를 돌아보기는 하면서도 앞으로 걷기는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서서는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줄을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고작 4.5킬로그램이었지만 스스로 버틸 때는
안아 올리지 않는 한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본의 아니게 물멍을 했다.
여전히 단추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간식을 저만치 던져 놓았더니 호르르 달려가 먹는다.
그렇게 세 번 가더니 다시 얼음!
안아 들고 걷기
간식 투척
같이 버티기를 번갈아 시도하며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이냐, 싶었다.
집 방향으로 올라가는 경사로를 코앞에 두고 다시 멈춰 섰다.
금방이라도 머리 뚜껑이 열려버릴 것 같았다.
리드줄을 던져 놓고 혼자서 걸어갔다.
50미터쯤 멀어졌을까 싶을 때 경사로 난간으로 몸을 숨겼다.
1, 2, 3,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니
오마이갓! 좀 전의 그 자세 그대로 시선은 정면에 고정된 채였다.
당황하거나 주인을 찾는 느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졌다.
다시 다가 갈 때까지 녀석의 자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결국 럭비공처럼 옆구리에 껴안고 집으로 오는 동안
온갖 공치사가 마음속으로 물결쳤다.
내가 말야, 내 셔츠도 안 사고 제 패딩을 사줬는데
햇볕 제일 좋을 시간에 글을 쓰는 대신 저 때문에 산책을 나갔는데 말야
도대체 왜, 뭣 땜에, 나를 힘들게 하는 거냐.
내가 다시는 너랑 산책을 가나봐라.
뒤끝 긴 트리플 소문자 a형이다보니
아침까지 삐쳐있었는데
정작 단추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해맑게 매달린다.
하긴, 단추가 옷 사달라고 한 적 없고
산책은 그나마 하루 중 내가 하는 유일한 운동시간이니
공치사 할 것도 없겠다 싶어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나저나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