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실 거예요

by 문과체질 내과의사

나와 1년에 12번 얼굴 보는 사람들이 있다.
친한 친구, 부모 보다 더 자주 만나는 이들이다.

동네 병원은 그런 곳이다.
혈압, 당뇨 같이 의사를 자주 봐야 하는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곳.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나와 만나는 환자도 있지만,
병원 자주 오기 싫은 환자, 그리고 일하기 싫은 나의 적당한 타협으로 두세 달에 한번 만나는 환자도 있다.

진료 초반엔 환자에게 잘 맞는 약도 찾아야 하고,
약에 부작용이 없나 확인도 해야 하고,
운동, 식단 관리에 대해 환자에게 잔소리도 좀 해본다.

그렇게 몇 달 지나면 환자의 혈압도 안정이 되고,
매일 아침 약을 잘 먹는 것도 환자의 일상이 된다.
그렇게 관리가 잘 되면, 이후에 병원에서 하는 일은 서로 얼굴 보고 인사하고 혈압재고 뭐 그 정도다.

서로 익숙해지며 점점 가벼워지는 내 진료의 무게감에, 환자에게 청진기를 대며 짐짓 심각한 표정도 한번 지어본다. 그래도 환자는 슬슬 꾀를 내며 여지없이 진료 끝에 한마디 던진다.
" 선생님, 이제 혈압약 두 달 치 주시면 안돼요~?"

음.. 그래요.. 두 달이 세 달이 되고, 세 달이 네 달이 되겠지..

환자들 중에 그렇게 꾀를 내지 않고, 우직하게 일 년 12번을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노인 환자분들이다.
아직 창창한 내가 노인의 입장을 알겠냐마는,
아마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 건강에 대한 더 큰 관심,
그리고 적적한 생활 속에 한 달에 한번 가는 마실 같은 느낌으로 나를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굽은 허리로 진료실에 들어오는, 그 할머니 환자도 그랬었다. 힘들게 걷는 할머니 환자를 보며 내가 말했다.
"어르신, 거동도 힘든데 혈압약을 두 달 치 처방해드릴까요?"

"에이, 집도 코 앞인데 한 달에 한번 혈압도 재보고 해야지.. 두 달 치면 약값도 많이 나오고~"

그렇게 1년에 12번 만나다 보면,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해도 친밀함이란 감정이 서서히 스며든다.
그 익숙함에 환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얘기를 나에게 하기도 한다.

오늘따라 그 할머니는 기운도 없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입맛도 없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어르신~ 오늘따라 힘드신 게 많네요. 요새 무슨 일 있으세요~?"

"... 내가 막내딸이랑 둘이 사는데, 내가 하도 아프다고 해 싸니까 지도 듣기가 힘든지... 나한테 언니나 오빠네 좀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방에 들어오니까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내가 요즘 그래요~"

짠한 할머니의 푸념이었지만, 막내딸의 심정도 이해가 됐다. 하루 종일 남들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사는 나도, 가끔 대기실의 환자들을 놔두고,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런 노인 환자들을 자주 대하며, 나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이들의 인생을 바라본다.
해가 바뀌며 허리는 좀 더 구부러지고, 당연하게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점점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걱정스레 바라보게 되는 것.
그렇게 삶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오늘 온 할머니도 그런 현실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식들한테 짐만 되고.. 빨리 죽어야 되는데..."

음... 그런 말에 마음 약해질 내가 아니었다.
'빨리 죽어야 되는데..'
내가 자주 듣는 이 한마디는, 노인 전문인 나에게 푸념의 클리셰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프지 않게 편안하게 죽는 게 할머니의 소망이겠지만, 그 말은 어떻게든 수명을 연장시키는 혈압약을 처방받으러 와서 하는 말이었다.
얼마 전에 한 할머니의 피검사에서 별 이상도 없길래, 내가 능글맞게 한마디 했다.

"어르신~ 지난달에 피검사하신 거 보니, 건강하셔서 10년은 더 사실 거 같아요~"

할머니의 주름 사이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말했다.
"의사 선상이 처방을 잘해줘서 그렇지~ 약 안 먹었으면 벌써 죽었어~"

나도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 말 역시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 달에 한 번인 나의 기계적인 3분 진료를 거창한 애정이나 노력으로 포장할 건 없으니까.
그래도 내가 처방한 약은 할머니의 약해진 혈관에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긴 했을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 할머니의 한마디는 그저 나에게 고맙다는 표현의 하나였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사실거란 말, 그저 할머니 힘 좀 내시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은, 노인의 내일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에게 숨은 병이 있나 찾아보고, 별 게 없다면 안심시켜주고, 한 달 후에 무탈하게 또 보자고 안부 인사를 하는 것뿐이었다.

서로 기분 좋은 거짓말을 적당히 버무린 대화를 마친 후 할머니는 진료실을 나갔다.
할머니에게 한 달 전과 같은 약을 처방하기 전, 진료기록을 한번 훑어봤다. 진료 기록을 다 보려니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했다.
그렇게 긴 차트의 기록만으로도 그것은 의미 없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환자에 대한 기록이자, 내가 매일 출근해서 병원에서 지낸 나의 기록이기도 했다.

사실 진료의 의미가 가벼워지는 건, 나를 매달 찾는 환자 만의 일이 아니었다.
개원하고 여러 해가 지나며 매일 같은 진료의 일상에 내 삶에도 그 의미가 희석되어 갔다.
같은 일을 반복할수록 손에 익숙한 굳은살도 자라지만, 그에 비례하여 마음의 권태도 자랐다.
권태는 때론 나의 취미 생활에 조차 찾아왔다.

' 넋두리 같은 글쓰기,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애써 고민하면서 쓰고 있나...?'

그렇게 같은 일상의 쳇바퀴에 무뎌지고 있는 나였다.
그런 시간들의 자취가 여느 환자의 차트에 담겨있는 걸 보니, 우연히 찾은 예전 다이어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기억 속에 뭉뚱 그려진 날들은, 알고 보면 저마다의 고민과 고통과 기쁨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처방전을 주고, 예약된 내시경 검사를 위해 검사실에 들어갔다. 이제는 손에 낀 장갑처럼 너무나 익숙해진 내시경을 두 손에 쥐었다. 나의 내시경은 환자의 위장을 가볍게 돌아다니며 빠르게 검사를 마쳤다. 잠이 든 환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복실로 옮겨졌다.
그렇게 무난히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에 돌아와 판독지를 써 내려갔다. 매일 반복해서 하는 이 일이 헛짓은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나도 많이 변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뻣뻣했던 나의 어깨는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무뚝뚝하게 환자를 대했던 나는 이제 넉살이 꽤 늘어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진료실의 오랜 시간 속에 그렇게 변해있었다.

할머니에게 10년은 더 살 거라고 한 나의 능글맞음도 그 오래된 시간에서 나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담긴 한마디엔, 그녀가 정말 오래 살길 바라는 진심이 나도 모르게 담겨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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