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못 살 거예요

내과 병원이라고 다 같은 내과가 아니다.
시골 읍내에 있는 내과, 신도시에 있는 내과,
화려한 번화가에 있는 내과, 시장 앞에 있는 내과,
젊은 사람이 많이 찾는 내과, 나이 든 사람이 많이 찾는 내과.. 다 다르다.

그런 면에서 나의 병원은 가감 없이 노인정이라 할 만하다. 60대는 노인의 명함도 못 내민다.

85세는 넘어야 아.. 연세 좀 드셨구나.. 할 수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는 내과의 분과 중에 노인내과를 전공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생은 예외 없이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처음 개원할 때, 세련된 병원 인테리어도 상상해 보고,
혹시나 할 일이 있을까, 보톡스 같은 미용학회도 기웃거려 봤다. 하지만 지금 나의 환자들에겐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자칭 노인 전문의가 된 나는 해가 갈수록 목소리가 커졌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노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내 성대는 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난청 환자를 상대하는 건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개원 초기,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하던 내 열정은 오히려 말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태세전환을 하였다.
잘 낫게만 해주면 되지, 아무렴 어떠랴..

그 80대 할아버지 환자 역시 난청이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남루했고, 치아는 두서너 개가 빠져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그는 내 병원을 열심히 다니는 고혈압, 당뇨환자였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한참 병원에 오지 않았었다. 그러다 기억에서 잊혀질 때쯤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그는 혈압, 당뇨약을 먹지 않았었고, 혈압과 혈당은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내가 말했다.

"어르신~ 지금 당장 아픈 데는 없어도 약을 안 드시면 중풍 오고 큰일 나요~ 병원을 계속 잘 다니셔야 돼요~"

"그른가~~? 나는 약을 먹는다고 먹었는데.. 내가 온 지 한참 지났는가~?"

그가 약을 잘 먹었다면, 몇 달 전에 나를 찾아왔어야 했다. 그는 이전보다 말도 잘 못 알아듣고, 인지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걸로 봐서 초기 치매가 생긴 거 같았다.

그렇게 그는 진료실을 나갔고, 그다음에도 약이 떨어진 지 한참 뒤에야 나를 찾았다. 그날은 감기가 걸렀다며 병원에 왔었다.
그의 팔을 감은 혈압계는,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혈압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르신, 감기는 약 먹으면 잘 낫기야 할 텐데, 그동안 혈압 당뇨약은 안 드시고 계셨어요?"

"... 머라고..? 밥? 밥이야 잘 먹지~ 하도 잘 먹어서 배가 나와서 문제지~"

그가 말을 못 알아듣는 게 난청 때문인지, 치매가 심해져서인지 알 수 없었다.
뭐가 됐던, 내 목청을 높여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내심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나름 애를 써서 어르신이 혼자 사는지, 보호자는 없는지,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오랜만에 목에 핏대를 세우고 설명했다. 그가 말했다.

" 그냥 감기약이랑 주사나 한대 줘~"

허탈감에 잠깐 동안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개원하고 여러 해가 지나며 종종 마주하는 상황이었다.
나름 환자에게 애를 쓴 나의 노력은 공허했고,
의사가 볼 때 심각한 상황은 환자에겐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경험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염세적이게 됐다.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될 대로 되라고 한마디 내뱉었다.
체념한 나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 어르신.. 어르신은 아마 얼마 못 사실 거예요.. "

그렇게 그에게 날 선 경고를 내뱉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 나 얼마나 살 수 있어? 3개월..?"

" 지금같이 약 잘 안 드시면 아마 그럴 거예요.."

"허허.."

그는 듬성듬성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주 같은 나의 한마디를 그는 알아듣긴 한 건지,
본인이 고혈압이 있는 걸 알긴 아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복용할 거란 확신 없는 혈압약을 몇일치만 처방했다.

그가 진료실을 나간 후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그에게 오래 못 살 거라고 한 건, 그저 그가 건강해지길 바래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 답답한 고막은 이렇게 독한 말도 진짜 못 듣는 게 맞냐고 외친 나의 고함이었다.
그리고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
가짜 광고와 유튜브보다 낮은 신뢰를 나에게 보내는 이들을 대하며 쌓였던 자조 섞인 외침이었다.

그렇게 여러 해 쌓여간 진료실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헤매었다.
내 진료실을 드나드는 환자들의 발자국에 온정만 남아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휴머니즘이 넘치는 명의를 기대하기엔, 난 이해관계를 따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환자에게 연민을 갖지만, 그 연민이 지칠 때는 냉소가 됐고,
아픈 이를 낫게 할 땐, 자존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타인을 지옥으로 여기기도 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고, 때론 시한부로 규정하며,
그에 따라 내 인생도 만족과 권태와 고통을 반복했다.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살 날이 좀 더 적은 이들을 주로 만나며 그렇게
타인의 죽음에 둔감해졌다.

한 노인을 냉정하게 대하고 맘이 불편해진 나는
화를 내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자위하며 오전 진료를 마쳤다.

그날 오후는 요양원 방문 진료를 가는 날이었다.
정기적으로 보는 입소자들 중, 90세 할머니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았다. 오늘은 힘이 없어 눈도 잘 못 뜨는 상태였다. 노인 진료의 경험이 늘어날수록, 나는 환자의 안 좋은 상태에 대한 직감만 늘었다.
요양원 간호사에게 얘기했다.


" 어르신, 얼마 못 사실 것 같네요. 보호자들에게 연락하셔야겠어요.."

이틀 후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본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사망진단서를 써달라고 했다. 가실 때가 되셨구나 생각하며 무심하게 사망진단서 서식을 열었다. 여러 칸의 사망원인 란에 노쇠 외에는 딱히 쓸 병명이 없었다. 주기적으로 보던 그 어르신의 얼굴이 떠올라 잠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희미해졌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여튼간에 내 직업은, 아직 창창한 나와는 너무 괴리된 세상 속의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에이, 뭐든 어때.. 먹고살 돈만 잘 벌면 되지...
이번 주말엔 젊은 사람들 많은 성수동의 핫한 카페에서 기분전환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하여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염색한 지 3주밖에 안 됐는데 벌써 옆머리 속 새치가 수북이 자라 있었다. 요새 부쩍 염색하는 간격이 짧아지고 있었다.
'이건 그저 멜라닌 세포의 부족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염색약을 꺼냈다. 그리고 흰머리 한가닥이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구석구석 염색약을 머리에 발랐다.


마치 자신에겐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 착각하는 듯한 사람이 거울 앞에 서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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