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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ug 04. 2022

드라마 속 면접 장면에 대한 단상(斷想)

면접관이 풀어놓는 '면접의 속살'-30

 요즘 드라마 <오늘의 웹툰>을 재밌게 보고 있다. 유도 선수 출신 주인공 온마음이 웹툰 편집자라는 새로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 드라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15년 동안 오직 유도에만 매달렸던 주인공 ‘온마음’이 우연한 계기로 국내 굴지의 IT기업 네온의 웹툰 편집부에 입사하게 된다. 극 중에서 네온은 명문대 출신의 쟁쟁한 스펙 보유자들도 줄줄이 떨어질 만큼 누구나 선망하는 기업이다.



 그러니 변변한 스펙 하나 없는 온마음이 치열한 경쟁을 헤치고 입사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드라마 속 허구’라고 치부하는 청춘들이 많을 것 같다. 현실이라는 거울에 비추면 ‘저스펙자’ 온마음이 쟁쟁한 스펙 부자들을 제치고 취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야말로 진짜 기적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답을 찾기 위해 햇수로 20여 년 가까이 이어온 면접관의 경험을 바탕으로 면접관의 시각에서 온마음의 입사가 허구와 실화 중 어디에 더 가까울지 살펴보려고 한다.


 온마음에게 취업이라는 기적을 선물한 주인공은 네온의 웹툰 편집부장 만철이다. 만철은 최종 면접에서 만난 온마음에게 마음이 끌려 만점을 준다. 그러고도 면접에서 탈락한 온마음을 껄끄러운 상사에게 읍소까지 해가며 계약직으로 입사시킨다. 이유가 무얼까? 그녀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찾을 수 없는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만철도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온마음이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 순간 폭포수처럼 샘솟는 열정에 비하면 사람들이 염려하는 경험과 스킬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족한 경험은 시간이 채워주고 모자란 스킬은 가르치면 되지만 열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술자리에서 내뱉는 만철의 명대사에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열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은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일 테다. 열정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가치와 자부심을 가질 때에 비로소 발휘되기 때문이다.


 “유도 연습을 할 때 늘 네온으로 노래를 들었고, 쉬는 시간에도 다른 콘텐츠를 이용했습니다. 부상을 입었을 때 네온 웹툰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네온 웹툰 캐릭터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건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보는 내내 힘이 됐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지원하게 됐습니다” 면접에서 지원동기를 묻는 만철에게 온마음이 담담하게 들려준 사연이다. 만철은 지원동기를 듣는 내내 만면에 아빠 미소를 띄우고 온마음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녀의 삶 자체가 네온 웹툰에 대한 열정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정의 바탕은 웹툰에 대한 ‘찐 애정’이다. 온마음에게 웹툰이란 평생 해온 유도를 포기하고 주저앉을 뻔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두 번째 꿈이니까.   


  하지만 부편집장인 지형은 만철과는 너무  생각이  다르다. 지형이 보기엔 애당초 신입사원이 아니라 경력사원을 뽑아야 하는 자리였다. 게다가 온마음은 퇴사한 PD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온마음에게 유도를 빼고 나면 배달과 보안요원 아르바이트 경력이 전부인 탓이다. 온마음이 탐탁지 않은 지형은 기어이 직격탄을 날린다. “편집장님은 온마음씨한테서 무언가를 봤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네. 앞으로 보여줘요. 내가 틀렸다는 거


  이렇게 똑같은 사람을 놓고 극단적으로 엇갈린 평가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답은 편집장 만철은 소프트 스킬, 부편집장 지형은 하드 스킬이라는 관점에서 온마음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면접은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적합한 인재’인가를 검증하는 자리다.


 직무(Job), 즉 ‘회사에서 맡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역량(Skill)은 크게 하드 스킬(Hard Skill)과 소프트 스킬(Soft Skill)로 나눌 수 있다. 하드 스킬은 학위·자격증·외국어 능력 등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요건(technical requirement), 소위 ‘스펙’으로 이해하면 쉽다. 하드 스킬은 정량화나 평가가 용이하다. 역량의 보유 여부나 (역량) 수준을 손쉽게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하드 스킬은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


 그럼 소프트 스킬(Soft Skill)은 무얼까?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소통과 협업 등 (인간) 관계적인 측면에서 요구되는 역량이다.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회사 안팎의 사람들과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소프트 스킬을 ‘피플(혹은 휴먼) 스킬(people Ski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기업이 지원자에게 바라는 소프트 스킬의 영역은 소통과 협업을 포함해서 리더십·문제 해결 능력·팀웍 등 일((job)과 사람(people)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소프트 스킬은 하드 스킬과 달리 학습을 통해 취득하기 어렵다. 학습이 아니라 경험이 쌓이면서 습득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드 스킬(Hard Skill), 즉 ‘스펙’이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tangible) 영역이라면 소프트 스킬은 그 사람의 인격·감성지능·공감능력 등 무형(無形·intangible)의 혹은 정서적·문화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정량화나 평가가 힘들다. 어떻게 보면 하드 스킬은 ‘공부머리’, 소프트 스킬은 ‘일머리’로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드라마 속 이야기로 돌아가면 지형처럼 하드 스킬, 즉 ‘스펙의 눈’으로 보면 온마음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철저하게 ‘웹툰 PD’라는 직무의 관점에서 온마음을 바라본 만철은 스펙 뒤에 가려진 그녀의 소프트 스킬을 알아챘다. 온마음이 입사 후 맡게 될 신입 PD 자리는 다른 무엇보다 멘털 및 라이프 케어, 일정 관리 등 작가와의 끊임없는 소통과 협업 능력이 관건이다.


 만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와 열정을 놓지 않고, 이름처럼 매사에 온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온마음에게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웹툰 PD의 떡잎’을 찾아낸 것이다. 실제 그는 지형에게 온마음이 편집부에서 일하면 ‘물건’이 될 것이라며 속내를 내비친다. 20여년을 편집자로 일한 내공의 소유자답게 만철의 안목은 정확했다. 온마음은 입사 후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그리고 부편집장인 지형도 함께 일해보고는 곧 편견에서 벗어나 만철이 온마음에게서 무엇을 본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온마음이 진정한 웹툰 편집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돕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이쯤에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변변한 스펙 하나 없는 온마음의 취업 성공기는 과연 허구와 실화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 십 수년 면접관을 해본 깜냥으로 보자면 필자는 만철의 선택에 한 표를 던지겠다. 드라마 속 만철처럼 스펙에 매몰되지 않고 철저히 지원자의 역량을 기준으로 인재를 뽑는 것이 바로 요즘 취업시장의 대세인 ‘블라인드 채용'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하드 스킬, 즉 스펙이 우수한 사람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소프트 스킬의 시대’라 할 만큼 채용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드 스킬보다는 소프트 스킬이 조직 적응과 성과창출에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기업들이 경험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블라인드 채용이 대세로 자리 잡은 현은 기업이 ‘소프트 스킬'의 가치에 눈을 뜬 결과다. 즉 지원자가 가진 소프트 스킬을 제대로 파악해서 그 사람이 지원한 직무, 그리고 우리회사의 분위기 또는 문화적 맥락에 잘 맞을지를 살펴서 채용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드라마 속 만철처럼 현실세계의 면접관들도 스펙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얼까? 지원자들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면접관은 당장의 역량보다는 미래에 무게중심을 두고 지원자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현재가치가 아니라 미래가치에 초점을 맞춘다는 애기다. “신입사원은 어차피 입사하면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면접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어쩔 수 없이 신입사원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신입사원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앞으로 성장해나갈 사람들이다. 기업이 당장의 역량을 중시했다면 처음부터 신입사원이 아니라 경력사원을 뽑았을 테다. 그러니 신입사원은 현재의 모습보다는 미래의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뽑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판단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은 ‘하고자 하는 열정’이다. 그리고 열정은 우리회사 입사를 진심으로 원하고, 지원하는 직무를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진실된 마음에서 나온다. 제아무리 화려한 스펙도 거기에는 못 당한다. 필자도 면접에서 수없이 많은 지원자를 만났지만, 역시나 가장 마음이 가는 사람은 열정 가득한 지원자였다. 그리고 열정을 보고 뽑은 지원자가 입사 후에 기대를 저버린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온마음의 열정에 이끌려 그를 선택한 만철에게 백퍼 공감하는 이유다.


 물론 면접관은 열정만으로 인재를 뽑지는 않는다. 지원자 입장에서 표현하면 열정만으로 취업의 문이 열리지는 않는다. 아무리 우리회사와 지원하는 직무를 절실하게 원해도 그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뽑을 수는 없다. 자연스레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역량은 무얼 보고 판단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경험'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지금까지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얼마나 했고, 그를 통해 어떤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고, 또 그러한 배움과 깨달음을 입사 후 회사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보고 지원자를 평가한다는 애기다.



  자기소개서에는 ‘경험 기반 (질문) 항목’, 면접에는 ‘경험 기반 면접’이라는 말이 일상화될 정도로 요즘 기업들이 지원자의 이런저런 경험들을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끊임없이 캐묻는 이유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경험’이 취업을 희망하는 기업에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진짜 찐 스펙’인 셈이다.


 드라마 속 면접 장면이라면 필자가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드라마가 <쌈 마이웨이>다. <쌈 마이웨이>는 2017년 5월부터 7월까지 방영된 드라마다. 세상의 잣대로 재단하면 부족한 스펙이지만 남들이 뭐라 하든 꿋꿋이 꿈을 향해 ‘마이웨이’를 외치며 달려가는 흙수저 청춘들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주된 스토리다. 드라마 방영 당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몰이를 했었다. 특히 필자에게는 그 시절 스펙 중심의 채용으로 인한 취업준비생들의 애환을 그려낸 면접 장면이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우리는 항상 시간이 없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남보다 늦게 자는데도 시간이 없었다. 누구보다 빡세게 살았는데. 개뿔도 모르는 이력서 나부랭이가 꼭 내 모든 시간을 아는 척하는 것 같아서 분해서 짜증 나서” 면접관이 아나운서를 꿈꾸는 주인공을 힐난하는 상황에서다. “저 친구들이 유학 가고 대학원 가고 해외봉사 가고 그럴 때 뭐 했어요?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하는 겁니다” 그 말에 주인공이 대답한다. “유학 가고 대학원 가고 그러실 때 저는 돈 벌었습니다” 앞의 대사는 면접을 망친 뒤에 내뱉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한다"라는 드라마 속 면접관의 대사에 당시 기업들이 인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지원자를 평가할 때 얼마나 스펙을 중시했는 지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일류대 출신이 일도 잘할 거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다. 예전에는 그랬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의 ‘본질’보다 먼저 ‘외형’에 시선이 끌리곤 한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본질은 놓치고 보이는 단면으로만 판단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펙’이라는 객관적 잣대로만 지원자들의 우열을 가려온 기업들도 그랬다.  


 하지만 요즘 취업시장의 대세는 ‘블라인드 채용’(차별 없는 채용)이다. 화려한 스펙에 가려져서 놓칠 수 있는 인재, 입사 후에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서다. 스펙이 뛰어나다고 해서 회사에 더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기업은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취업은 스펙이 떨어진다고 해서 무조건 지는 게임도 아니고, 스펙이 좋다고 해서 절대 이기는 게임도 아니다. 스펙을 앞세워 취업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취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스펙이 아니라 경험, 하드 스킬이 아니라 소프트 스킬이기 때문이다. 채용 트렌드의 변화에 발맞춰 취업을 준비하는 청춘들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앞에서 살펴본 드라마 < 마이웨이> 만약 리바이벌 제작된다면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한다"라는 면접관의 대사도 분명 바뀔 것이다. 최근의 역량 중심 채용이라는 트렌드를 감안하면 아마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열정은 ‘스펙 아니라 ‘경험으로 증명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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