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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달 Jan 08. 2022

똑게 보고

우리 편인 공격하는 이상한 경기

보고(reporting)가 일상인 김수달, 아무리 꼼꼼히 준비해도 어렵다. 보고는 상관이 공격하고 실무자는 방어하는 일종의 경기다. 일반적인 경기와 다른 점이라면 둘 모두 같은 팀이란 것이다. 방어에 성공하면 모두 승리하고, 방어에 실패하면 둘 모두 패배한다. 방어자는 다음 방어전을 위해 야근을 해야 하고, 공격자는 '저거 제대로 되겠나' 걱정이 늘어가니까... 쨉 한 두방에 털려버린 방어자를 지켜보는 공격수 맘도 편치 않다.


사람의 일이라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까진 대면 업무에서 심리적 요소는 큰 변수다. 심술, 자존심, 열정, 의지, 라테, 배 째든가, 의심, 신뢰, 호소가 난무하는 티키타카의 종합 경기다. 같은 보고서를 누가 들고 가느냐에 따라서 무사통과되기도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얻어맞고 나올 수도 있는 정도니 말이다. 


심술 게이지

가장 먼저 심술 게이지를 체크해야 한다. 국장한테 깨지고 한껏 울그락불그락 한 과장님께 지난번 거나하게 깨지고 수정한 보고서를 들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 화난 사자의 코털을 왜 또 건드리죠? 과장님이 출근해 외투를 벗자마자 달려가지 말 것이며, 점심식사를 앞두거나 막 끝난 시점엔 보고를 참자. 보고를 기다리고 있다가 앞 보고자가 박살 나면 살며시 대기석에서 일어나 자리로 돌아오는 센스도 필요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

소개팅에 나가며 슬리퍼를 신지 않는 건 '당신과의 만남을 위해 최선의 준비' 했다는 첫인상을 위해서다. 보고라고 다를 게 없다. 보고드릴 한 장 페이퍼와 함께 형형색색의 인덱스가 즐비한 보조자료 한 움큼 함께 들고 보고에 들어간다. '이건 왜 그런 거죠'라고 불신 가득한 질문이 떨어지면 '아 그거요'라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적어도 10분 이상은 설명해야할 수십 장 분량의 보조자료를 꺼낼꺼란 신호를 강력하게 발송하는 것이다. '응.. 그래 보조자료는 놔두고 가.. 궁금하면 내가 찾아볼게...'


우스개 소리로 풀어냈지만 핵심은 담당자가 일을 꼼꼼하고 적극적으로 챙긴다는 걸 상사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알아서 잘했겠지', '그래서 내가 뭐 하면 되는 거지?'라고 담당자를 신뢰할 때만 나오는 멘트들을 듣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카운터 파트너에게 매번 잡아먹히고 수습은 상사가 해야만 담당자의 보고를 따뜻하게 대해주기 어렵다. 


가끔은 수문장이 되기도 하고, 악역도 자처해야 한다. 협조부서의 볼멘소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착한 사람이 돼봐야 누군가(상사)는 그 뒤치닥 거리를 해야 한다. 보고(reporting)는 보고서(report)와 다르다. 보고는 보고서가 작성되는 과정에 대한 신뢰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상사 자리까지 들릴정도로 고성까지 오가며 우여곡절 끝에 작성한 보고서를 '이거 밖에 없어?'라고 타박할 상사는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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