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달 Feb 26. 2022

보고의 계단

귀소본능 자극하는 보고 대기시간

보고를 앞둔 수달은 항상 다시 한번 자료를 찬찬히 살펴본다. 침착하게 읽고 나면 꼭 집에 가고 싶더라... 귀소본능 꾹 참고 과장님께 가본다. 힘들단 소릴 달고 살지만 사실 입직 후 지금까지 상사복이 많은 수달이다. 일 잘한다 소문난 분들을 모실 기회가 많았다. 보고서 작성부터 업무 접근방식, 공직자로서 태도까지 다양하게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었다. 정글 같은 조직에서 지금까지 그나마 잘 '생존' 하는데 그분들 가르침이 큰 힘이 됐다.


위아래 위위아래

김수달이 좋아했던 과장님이 물었다. '수달이는 보고를 어떻게 하는거라고 알고 있어?'

내가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답변은 정답이 아닐것임을 직감한 수달은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며 '잘 모르겠습니다'고 답했다. 많은 후배들이 보고하는 법을 잘 모르는것 같아라고 운을 띄우신 뒤 과장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가장 윗사람에게 보고를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다시 아래로 차례대로 내려오면서 윗분들의 피드백을 바로 아랫사람(수달에겐 상관)에게 알려드려야 비로소 끝난다는 것이다. 많은 조직이 직급으로 구분된 보고체계를 갖는다. 공공기관이 대표적이다. 보통 담당자-팀장-과장-국장-실장-차관(장관) 순으로 보고가 이뤄진다. 보고 한다고 할 때 대부분은 담당자 자신을 기준으로 직급을 차례대로 높여가며 내용을 알려드리는 행위라 생각하기 쉽다. 과장님은 위로 올라가는 보고 보다 '아래로 내려오는' 보고가 더 중요한 거라셨다.


너만 알지 말고 나도 알려 달란 말야

가령 국장님 보고 후에는 과장님께 국장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알려드려야 한다. 실장님께 보고를 드렸다면 국장님과 과장님께 실장님이 보고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음을 알려드려야 한단 것이다. 왜 그런지는 사람 간 거리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국과장과 실장 간 거리가 담당자와 실장 거리보다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업무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도 가깝다. (실, 국, 과장 간에는 티타임, 간부회의 등 의사소통할 계기가 많다.) 실장정도가 되면 실무자보다는 국과장을 만나 업무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은 것이다. 만날 기회가 많을수록 실장은 과장이나 국장에게 업무에 대해 물어볼 가능성이 높다. 실장이 해당 사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장이 파악하고 있어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담당자가 업무 보고를 하며 실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국장이 알고 있으면 맥락에 맞는 답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보고 = 알려주는 행위

'보고(報告)'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자. 보고란 '일에 관한 내용이나 결과를 말이나 글로 알림'을 의미한다. 보고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위로든 아래로든 일의 내용과 결과를 알리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보고를 윗사람에게 하는 행위로만 알고 있다. 수달 역시 마찬가지다. 과장님께선 특히 아래로 향한 보고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과장이면 나보다 높은 사람들이 사안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할 것도 같다. 담당자는 차례차례 이뤄지는 보고에 지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된다. 과장은 담당자를 통해서만 실국장 생각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아래로 내려오는 보고가 꽤나 궁금할 법하다.


남은 건 끝없는 수정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들단 말이 있다. '과장님 실장님께서 이러저러하다고 하셨습니다'만 전달하고 보고가 끝나면 좋겠지만 과장님이 첨언을 하실 때가 많다. '아 그럼, 이 부분은 이걸 더 찾아보고,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수정을 해보자'라고 좋은 말씀을 주신다. 위아래로 보고하며 털린 멘탈(탈탈 털려서 멘탈인가)을 잘 추스르면서 심호흡과 함께 수정사항들을 정리하는 김수달의 눈가는 오늘도 유난히 빛난다.


이전 17화 눈물 젖은 보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