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의 서막
'보고(report)' 하나가 완료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까? 벌써 김수달 눈가가 촉촉해진다. 먼저 초안을 과장님께 보고한다. 흔들리는 눈빛과 함께 '수고했네 수달이'라 하시면 수달은 펜을 쥐고 과장님 말씀을 받아 적을 준비를 한다. 꽤나 익숙한 풍경이다.
이 보고서 뷰 맛집이네
상사 피드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가 방향 수정, 둘째가 표현(워딩) 수정이다. 이 둘은 구분되기보단 선후의 의미를 지닌다. 보통 방향 수정 후 표현 수정을 한다.
먼저 방향. 담당자와 관리자는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관리자는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미시적 관점이 묻어나는 자료의 잔가지를 치고 큰 줄기를 뽑아낸다. 가끔은 방향 전체를 새로 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지도에 비유하자면 실무자는 자잘한 간선도로까지 표현하려 하고, 관리자는 목적지까지 이어진 굵직한 고속도로 표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담당자는 담당자라는 이름답게 해당 사안을 가장 자세하게 알고 있는(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으면 너무 자잘한 내용까지 자료에 담겨버린다. 정확하게 쓰려다 보니 내용은 늘어나고 문장은 복잡해진다. 그래서 첫 보고때 대세에 지장 없는 자잘한 내용은 대거 덜어내도록 피드백 받는 경우가 많다. 잔가지는 쳐내는 것. 특히 과장 이상 정책결정자에게 보고하거나, 대외적으로 홍보할 자료는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정확성보다는 간결함이 주는 명료성을 갖추는 게 더 낫다.
눈물 젖은 보도자료
경진대회 개최 보도자료를 예로 들어보자. 대회 정보를 활용하려는 사람(대회 참석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대회 주제와 대상, 일정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담당자 입장에서는 이 대회가 어떤 계기로 개최되고, 기존 성과는 어떠했고, 어떤 기관들이 협찬하고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행사 계획 자료를 펼쳐놓고 참고하면서 보도자료를 쓰다보니 그런 내용들이 곳곳에 담긴다. 내자식같은 워딩들을 팽개칠 수 없는 것이다. 내부용 자료를 참고하면서 홍보자료를 만들다 보니 외부자인 정보 활용자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을 내용들이 담기고 글은 무거워진다. 분량은 늘어나고, 자세해야 할 부분과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 구분 없이 죄다 구체적으로 기술되면서 읽는 사람은 피로감을 느낀다. (지금 수달 이야기도 그런 건 아니겠지? ㅇ_ㅇ;;;)
빨간펜 선생님
방향 수정이 끝나면 표현(워딩) 수정이 들어간다. 작게는 오타, 비문부터 크게는 뉘앙스까지 꼼꼼하게 검토된다. 빨간펜 선생님처럼 하나하나 수정해 주시는 과장님들이 많다.
펜을 들고 수정해주시는 상사의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김수달이 모셨던 분들 중 'ㅇ'을 시계방향으로 쓰시는 분이 계셨는데 신기했다. (보통 반시계 방향으로 쓰지 않나?) 또 다른 분은 글씨를 정말 반듯하게 잘 쓰셔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 다른 분은 빼도 될 부분과 줄여도 되는 부분을 알려주시고, 추가해야 될 단어와 문장을 직접 수기로 적어주시기도 하셨다. 그대로 문서편집을 해보니 기가 막히게 분량이 맞아 떨어졌다. 얼마나 보고서를 쓰고, 수정했는지 그 내공이 느껴졌다.
최악은 '이거 이상한데, 이 부분 이상한데' 라며 보고서에 낙서만 하는 분이다.(보통 동그라미 겹쳐그리기)뭐가 이상한지 구체적으로 지적받진 못하고 '이상하다'는 피드백만 받고 자리로 돌아오면 기분이 '이상하다'. 어디서부터 뭘 손 대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팩트가 중요
특히 법이나 제도와 관련된 자료는 더욱 꼼꼼한 검토가 이뤄진다. 의도하지 않은 의미로 해석될 표현을 최소화하고, 범위나 대상 등에 대해서는 아주 명확하게 써야 된다. 예컨대 정책 대상 범위를 '19~34세'라는 식으로 써 놓으면 안 된다. 19세가 만 나이인지, 34세 미만인지 이하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 19세 이상만 34세 미만'이란 표현으로 정확하게 서술되어야 한다. 특히 보도자료는 주관적인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 보도자료 헤드라인에 "000 도입으로 주민 만족도 크게 향상" 같은 표현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언론에서 헤드라인을 이렇게 뽑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보도자료 제목을 쓰는 경우인데 지양하는 게 좋다. 언론사가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헤드라인을 뽑는 건 그들의 고유 권한이지 공공기관이 주관적으로 정책 효능을 판단해서 표현하는 건 좋지 않다. "000 도입으로 주민만족도 전년대비 70% 증가"로 고쳐 쓰는 게 좋다. 건조하게 팩트를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 사실과 주관적인 평가가 애매한 표현들은 항상 잘 살펴보고 오해를 살 수 있는 단어는 정확하게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장님이 이런 부분을 잘 짚어내셨는데, 아마도 언론대응을 과장님이 하셔야 되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다
맥락과 워딩에 대한 수정(적어도 두세 번)이 오가고 나면 파일명은 '수정 3'과 같은 꼬리표가 붙어있다. 괄호로 '과장님 검토본'이라 쓰기도 한다. '최종'이란 태그는 파일명에 함부로 붙일 수 없다ㅠ 이제 이 자료를 가지고 국장-실장께 차례대로 보고한다. 국장급 이상부터는 자잘한 워딩이나 맥락을 지적하지 않는다(거의) 담당자-과장 선에서 어느 정도 다듬어졌다고 믿어주시기 때문.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보고를 들어가면 가장 먼저 무엇 무엇에 대한 보고라고 말씀드린 후 출력본을 드리고 읽으실 시간 동안 잠시 대기하는데, 펜을 들고 읽으시는 국장님도 많다. 직접 워딩을 수정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국장님이나 실장님이 수정의견을 주시면 다시 해당 내용을 수정해 과장님께 보고(이 경우 과장님은 별말씀 안 하심) 국장님 보고를 다시 가야 한다.
이런 경우 외에 대개 실,국장급 부터는 정무적 판단, 피드백을 주신다. 이 시점에 이런 보도자료를 내도 되는 건지부터, 해당 워딩이(법적, 실무적으로 아무런 문제없는 워딩) 나갔을 때 파장은 없을 것인지 판단한다. 예전에 청년이 참여하는 일자리 사업 결과로 관련 분야 취업이 많이 된 적이 있었다. 보도자료에 해당 내용이 실었는데, 국장님께서 오랫동안 고민하셨다. 취업률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임에도 당시 취업불황이 이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실적을 적극적으로 홍보해도 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신 것. 시대적 상황과 보도자료의 갭이 너무 클 경우에 올 파급효과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홍보 타이밍부터 시작해 해당 사업의 향후 방향 등 거시적인 피드백을 주시는 경우가 많다. 가끔 작성된 내용을 더 크게 강조해도 된다는 식으로 격려도 해주신다. 국장급 이상부터는 관점이 위아래 좌우로 굉장히 넓음을 느낄 수 있다.
실장님까지 보고가 끝나면 대변인실로 자료를 송부하면서 하나의 보고가 마무리된다. 상기한 보고 과정과 병행해서 대변인실과는 보도자료 작성 이전부터 보도시점 협의를 하고, 초안이나 과장님 검토본 정도를 들고 내용에 대한 홍보 협의도 거쳐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