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보고해 달란 말 없을 땐 언제 보고하면 좋을까
수달 경험에 빗대 보면 기한 정한 바 없는 보고서 작성 지시는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기한 둘 여유도 없이 급할 때 혹은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지만 필요는 하므로(더 정확히는 필요할 것 같아서) 담당자에게 지시해 놓을 때다. 후자는 특히 상관 본인도 까먹을까 봐 일단 담당자에게 말해놓는 식이 많다. 말 그대로 까먹어도 (당장은) 무방한 사안이란 것. '언제까지 할까요'라고 물으면 되는데 그러질 못했거나 '일단 작성', '되는대로' 등으로 애매한 답이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시급한 사안은 사무실 공기부터 다르다. 긴가민가 할 가능성이 낮다. 그 사안이 상관의 최우선 관심사라서 타이밍이랄 것도 없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 말인즉슨 만약 내가 당사자가 아니면 그날은 최대한 보고를 피하는 것도 센스다. 다른 보고 받을 여유도 의지도 없을 테니. 이 경우엔 완성도를 높인답시고 오래 들고 있으면 안 된다. 타이밍이 완성도보다 우월한 사례다.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사안은 애매하다. 순진하게 만사 제쳐놓고 작성해 가져 가면 할 일 없단 신호만 주는 꼴이 되거나 본인이 지시했다는 걸 까먹고 '이게 뭐냐'는 눈으로 멀뚱멀뚱 당신을 쳐다보는 상사와 마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곧 마무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준비하자니 다른 할 일도 많고, 안 하자니 찝찝한 지시를 처리하는 요령의 핵심은 '그거 어떻게 되가?'라고 묻는 상사의 돌발질문에 '마무리 중입니다.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를 말할 수 있도록 해 놓는 것. '곧'이라는 건 2~3일 내 보고를 드릴 수 있다는 암묵적 표현이다. '곧'을 말하기 위한 매뉴얼을 정리해본다.
1. 제삼자 협조 필요한지 확인
보고서가 제삼자 협조나 검토가 필요한 부분인지 파악한다. 만약 타 부서, 외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지체 없이 해당 지시사항을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해 놔야 한다. (책임과 부담의 아웃소싱, 또는 헷징)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그거 준비됐나?'라는 물음에 '네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라고 할 수 없다. 제삼자 협조가 불필요하고, 내가 가진 자료나 업무 선에서 마무리가 가능하다면? 운이 좋군요. 야근만 하면 됩니다 ^. <
2. 지시사항 텍스트화
구두로 떨어지는 지시사항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각각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지시를 듣고 즉시 자료를 만들지 않고, 지시와 작성 간에 텀이 길어질수록 보고서는 산으로 갈 때가 많다. 수달은 완전히 동일한 워딩으로 상관의 지시사항을 텍스트로 정리해 놓는다. 특히 윤문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리해 놓는 게 좋다. 들은 표현을 잘 정리해 놓는답시고 다듬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 가령 'a자료를 b자료 뒤에다 붙여놔'라고 했을 때 'a자료를 b자료에' '붙임''첨부''추가'등 다양한 표현으로 윤문 할 수 있는데 각각의 뉘앙스가 분명 다르다. 가급적이면 지시할 때 표현과 워딩의 순서(순서는 보고서 작성의 논리에 크게 활용된다)까지 고치지 않고 그대로 속기한다는 느낌으로 옮겨놓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도 당시 상관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3. 관련 자료 한 폴더에 집합(짜깁기용)
지시를 받을 때 '아 A 자료에서 그 부분 가져오고, B자료에서 그거 쓴 다음 채워 넣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곧장 들 때가 있다. 관련 자료라 쓰고, 짜깁기용으로 읽는 그 자료들을 한 폴더에 담아 놓는다. 보고서를 바로 작성하지 않아도 상관의 지시사항을 속기한 파일과 관련 자료들이 한 폴더에 담겨 있으면 시작이 수월하다.
4. 금요일 오후 보고 지양
이제 작성을 완료하고 보고할 타이밍을 재야 한다. 금요일은 피하자. 금요일에 보고받은 상관은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나서 주말 내내 걱정이 한가득일 테다. 엉망인 보고서가 내심 신경 쓰일 테니 말이다. 수, 목 정도에 보고를 하면 목요일 오후 부터 금요일 내내 수정 할 수 있다. 동시에 상관은 목, 금요일 동안 담당자가 피드백받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겠거니 하며 안심한다. 나름의 정보 대칭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목, 금은 좀 더 여유롭게 보내고 월요일 추가 보고를 하면 된다. 그때 다시 받은 피드백은 월, 화 동안 반영해 수, 목에 수정보고를 하는 식의 리듬을 추천한다.
5. 완벽주의 nono
보고서 써본 사람은 공감하는 것 중 하나, 내 시간을 갈아 넣은... 아니 혼까지 갈아 넣은 것만 같은 그 보고서가 보고가 끝나고 나면 존재감이 온데간데 없어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물론 중요한 보고서는 정책이나 사업의 씨앗이 되어 끝까지 영향력을 발휘한다. 보고서에 들어간 한 줄이 화두가 되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보고서를 매일 쓰는 건 아니니 논외로 하고. 너무 완벽하게 작성해 보고하려고 하면 적시성을 잃을 수 있다. 사실 완벽성이란 것도 기준이 작성자에 있어서 다분히 주관적이라 과한 몰입을 하지 않는 것도 요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