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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Apr 30. 2021

홈리스 아냐, 하우스리스일 뿐야

노매드랜드영화 감상평

----- 줄거리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읽기에 따라선 영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인 감독 Chloe Zhao가 메가폰을 잡은 노매드랜드 (Nomadland). 우리의 시선이 온통 윤여정 씨의 여우조연상 수상에 쏠려 있을 때, 이 촌스런 두갈래 댕기 머리를 한 중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가 작년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제를 접수하고 다녔듯, 토론토 국제 영화제 작품상, 베니스 영화제 황금종려상 등 100개가 넘는 상들을 휩쓸고 다니더니 그 여세를 몰아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그리고 주연 Francis McDormand는 여우주연상까지 3관왕을 차지해 사실상 올해 최고의 영화로 떠올랐다.


방랑자, 유목민을 뜻하는 "Nomad"는 영화에서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칸 가질 수 없는 현대판 유목민들(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였다. 한국도 110%가 넘는 주택 공급률에 비해 무주택자가 40%에 달한다지만 미국 또한 전국 평균 약 30만 달러, 대도시를 기준으로 하면 그 두 배가 넘는 집을 소유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비싼 돈을 내고 월세를 산다. 그러나 그 월세조차 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이 Nomad들이다. 노매드는 홈리스 바로 윗 계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노매드들이 선택하는 거주지가 바로 트레일러 (Camper)이다. 영화에서는 트레일러를 주거지로 생활하며 삶과 싸우는 노매드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치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집 없이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에는 약 15,000개가 넘는 사설 RV Park들이 있고, 국립공원이나 주에서 운영하는 State RV Park를 제외한 개인이 소유한 RV Park들에는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까지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 곳에 몇 년씩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우편물이 배달될 정도다. 거기에 한 달에 평균 3백 달러에서 5백 달러 하는 RV Park의 렌트비를 내기조차 버거워 Pull-over (이동하면서 밤에는 길에 차를 세우거나 사막 등에 거주하는)를 하는 트레일러족까지 합하면 미국의 트레일러족은 줄잡아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집 대신 거주지로 삼고 있는 RV(Recreational Vehicle)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고급진 레저용 RV가 아니다. 크기가 작을 뿐 먹고, 자고, 씻고, 쉬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집이다. 이동이 가능한 바퀴 위에 올라가 있을 뿐 엄연한 주택이다. 이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며 아이들도 낳고, 학교도 보낸다. 꽃도 심고 정원도 가꾼다. 아예 바퀴를 떼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마음 자체를 잠가 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필자는 캐나다로 여행을 갔을 때 트레일러를 고치러 차 밑에 들어갔다가 깔려서 크게 다친 영감님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 전부 독립시키고 노부부가 트레일러 공원에서 줄잡아 20년 이상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주위의 노인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한 곳에서 3-6개월씩 머무르다 또 챙겨서 다른 장소로 옮긴다고 했다. 그 공원은 차에 깔려 쇄골이 으스러져버린 노인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었던 셈이다.


미국에는 트레일러를 집 삼아 생활하는 사람들이 백만명이 넘는다


RV 얘기가 길어졌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운여정씨의 여우조연상처럼, Francis McDormand의 여우주연상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내가 Francis McDormand를 처음 만난 건 영화 Fargo (1996)였다. 영화에서 살인범을 쫒는 North Dakota의 임신한 여경찰로 연기했던 그녀는 그 영화로 첫 번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이번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2017년 Three Billbords Outside Ebbing, Missouri 이후 세 번째이다. 화장이라고는 생전 안 할 것 같은 그녀의 굵은 캐릭터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런 그녀가 벌써 예순셋이라니! 이번 영화에서, 맥도먼드는 같이 촬영하던 출연자들(출연자들은 맥도먼드와 David Strathairn 두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제로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고 이름까지 실명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이 영화배우인지 몰랐을 정도로 트레일러족 역할에 빠져들었다. 영화의 Fern은 주위의 트레일러족들과 완벽하게 embedded 되어 보인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듯, 그녀의 분신같은 낡은 캠퍼밴과 닮았다. 그녀의 섬세하면서도 깊은 표정연기는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이 집 없는 유랑자들에 대해 불쌍해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기쁘고, 아름답고, 슬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굳이 그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덤덤히 이야기들을 나누며 살아간다. 친구 스완키가 젊었을 때 여행을 다니며 만났던 아름다운 장면들을 회상하면서 자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처럼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복잡하지 않다. 그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도전해 오는 삶이라는 무거운 명제 앞에서 버거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덤덤하게 맞서면 된다는 단순한 공식을 다시 깨닫게 해 줄 뿐이다. 인생의 찰렌지때문에 세웠던 계획들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답답해하지 않고 또 다른 계획들을 - 무계획을 포함한 - 세우면 된다는 그런 메시지를 덤덤하게 던진다.


영화가 보여주는 트레일러 생활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상상했던 멋진 RV 캠핑과는 사뭇 다르다. 허름하고 불편해 보이는 그 트레일러들은 그들의 생활 터전이다. 영화에서는 Fern의 캠퍼 유랑생활과 대조적인 친구들, 가족들의 안정된 생활들을 계속 교차하며 보여 준다. 친구 David의 집에 초대받은 Fern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마당에 세워 둔 자신의 밴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 장면은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박혀 있는 안정적인 생활, 즉 집, 가족, 따뜻한 음식들, 푹신한 침대 등등이 행복을 개런티로 가져다주진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각자의 삶에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이 있듯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각각 다른 모양이 있음을, 그 어떤 것도 더 존중받아야 할 이유도, 멸시받아야 할 이유도 없음을 말하고 있다.


로토 잭팟에 당첨되면 70%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대 저택을 사는 일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에는 '좋은 집=안정되고 행복한 삶'이라는 공식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는 허름한 트레일러에 사는 노매드들의 모습이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 오히려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던 것은 왜였을까. 과연 영상미에 속은 것이었을까? 영화는 끝났지만, Fern과 노매드들의 진한 표정들이 다시 생각난다. 그 여운과 힐링이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물질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순간일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삶의 의미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 의미를 찾아낸 사람은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누린 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편과, 평생 일했던 직장과, 삶의 터전, 모든 것을 잃었던 Fern은 과연 낡은 밴 안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달았을까? 그랬을 것 같다.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름날의 기억들이 있는 한, 삶을 대하는 진지함을 잃지 않는 한, Fern은 그녀 자신이 살아 오고, 살아 갈 인생의 의미를 하나씩 깨달아 나가는 듯 하다. 마치 Fern이 소년에게 잔잔히 들려주던 셰익-스피어의 Sonnet 18 처럼.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re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당신은 마치 여름날 같아요

그보다 더 사랑스럽고 따뜻하지요

거친 바람에 오월의 새싹이 흔들리고

여름은 당신을 사랑하기에 너무 짧죠.

어떤 날은 태양이 너무나 뜨겁고

어떤 날은 구름에 가릴 때도 있지만

아름다움은 다른 아름다움으로 가려지죠.

우연이든 태초부터 계획된 것이든

당신의 영원한 여름은 잊혀지지도 않고

당신이 소유한 아름다움은 뺏기지 않으며

죽음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가져갈 수도 없어요.

만약 당신이 나의 영원한 노래 속에 살아 있다면

내가 숨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나는 생명을 얻고 당신도 영원히 살아 있을 거예요.


(번역은 제 맘대로 한 겁니다. 원작의 아름다움을 한글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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