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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꾼의 목장 Apr 29. 2022

미국 젊은이들도 영끌족 신세

30년 전, 대뜸 내 일본인 사수가 집을 보러 같이 가자고 했다. 시내에서 80킬로미터쯤 떨어진 헌팅톤 비치 (Huntington Beach)에 있는 방 세 개짜리 단층집인데 15만 달러면 살 수 있다고, 집 값의 20%만 있으면 나머지는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스시 사준다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는데 그가 사겠다는 집은 생각보다 썩 괜찮았다. 방이 세 개에 건평이 약 60평, 야트막한 앞 집 지붕들 너머로 태평양 바다가 보이고 마당에는 집주인이 심어 놓은 꽃들이 바닷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멋진 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한 달에 원금, 이자, 재산세, 보험료 등을 합해 약 1,200달러쯤 나왔다. 그때 막 결혼한 나는 Los Angeles 근교의 월세 57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집 값을 두 배 이상 내야 한다는 것이 당시로선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는 그는 오래전에 융자금을 다 갚았고, 시세는 약 2백만 달러가 되었다. 반면 나는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7-8년 후에 집을 샀고, 그 후에도 팔고 사기를 반복하다가 아직도 월부금 상환 날짜가 되면 노오랗게 한숨이 나오는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융자금을 다 상환하려면 아직도 까마득하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에 대해 ‘만일 그랬었다면’은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므로. 그때 사수 따라 집을 샀으면 나도 융자금 다 갚은 멋진 집 뒷마당 의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폼나게 커피 한 잔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집 값 오를 때마다 그 돈 가지고 딴짓하다가 쪽박을 찼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3년 전에 공대를 졸업한 큰 아이는 그동안 직장을 몇 번 옮기더니 벌써 번듯한 회사의 프로젝트 엔지니어가 되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제법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등하는 미국의 부동산은 우리 큰 아이가 제 힘으로 집을 사기에는 너무 멀어만 보인다. 특히 지난 2년간 COVID-19 펜데믹을 거치는 동안 사상 최저인 모기지 금리와, 트럼프-바이든 정부의 민심 다스리기(돈 풀기) 정책 때문에 주택 가격은 체감상 두 배 가까이 올랐다.


2022년 1월 기준, 미국의 평균 주택 가격은 약 32만 5천 달러(한화로 약 4억 원). 이것이 캘리포니아나 뉴욕주, 워싱턴주 같은 곳으로 들어오면 2배 이상 비싸지고, 대도시로 들어오면 그야말로 ‘안드로메다’가 된다. 현재 캘리포니아의 평균 주택 가격은 80만 달러, 교통, 상권 밀집지역인 소위 ‘역세권’은 120만, 학군이 좋은 선호지역들은 15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아마 한 두 달 뒤면 이것조차 지나간 자료가 될 것이다. 글 쓰다 궁금해서 찾아본 미국 제1의 부촌 베벌리 힐스의 중간 주택 가격은 930만 달러(116억 원).


젊은 층들의 거주에 대한 불안감은 기성세대가 느끼는 그것보다 심각하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더불어 렌트비 인상률도 그 못지않게 가파르기 때문이다. 우리 큰 아이가 집값의 25%를 모아 나머지는 대출을 끼고 집을 산다고 하면, 어떤 계산이 나올까. 단독주택은 아예 꿈도 꿀 수 없고, 큰 아이가 좋아하는 West LA의 방 두 개짜리 타운 홈(약 25평) 가격은 대략 80만 달러. 원금과 이자($3,220), 재산세($833), 보험료($100), 관리비($500), 등등을 합하니 한 달에 거의 5천 달러, 수입의 반을 집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도 집을 사겠다고 덤빈다 해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과거 서브프라임 사태로 혼쭐이 났었던 미국의 은행들은 DTI (Debt to Income)라고 하여, 집, 자동차, 카드 상환금 등 빚 갚는데 들어가는 돈이 수입의 1/3이 넘으면 융자를 거부한다. 결국 우리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집은 30만 달러 미만이라야 하는데, Los Angeles에 그 돈 주고 살만한 방 두 개짜리 집은 아예 없다.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 달에 3천 달러씩 월세를 내고 살아야 한다. 능력이 안 되는 친구들은 둘씩, 셋씩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고배를 마신 이유가 몇 년 동안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 헛발질에 젊은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하지만, 미국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민주당의 바이든도 재선이 불투명해 보인다. 한국처럼 ‘영혼을 끌어 모아도’ 집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 미국의 영끌족들도 다음 선거에선 냉혹한 복수를 벼르고 있을지 모른다.



부동산은 아직까지도 매력 있는 재테크의 수단이다. 미국의 부동산은 철저히 시장의 흐름에 맡겨진다. 까다로운 규제가 많지 않다. 정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를 조절하는 일 이외에 정말 무관심하다 싶을 정도로 개입하지 않는다. 상가나 빌딩, 다세대 주택 같은 임대용 부동산의 경우, 외려 SBA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중소기업진흥청)에서 저금리 대출을 권장한다. 자율성을 보장받은 부동산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충실히 지켜 나간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들의 격차는 갈수록 커져만 간다.


필자가 미국에 거주한 지난 30여 년 동안 부동산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지난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가 유일하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종이 몇 장으로 융자를 받을 수가 없다. 서류 심사는 까탈스럽기 그지없고,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는 융자를 해 주지 않을뿐더러, 현금으로 30%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고, 2년 동안의 충분한 소득세 신고 자료를 증거로 보여 주어야 한다. 


임대용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COVID-19 핑계로 렌트를 내지 않고 버티는 골칫덩어리 세입자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들도 내놓기가 무섭게 팔린다. 임대용 부동산의 CAP (Capitalization) rate, 즉 연 수익률은 매매가의 5%를 넘기가 어렵다. 천만 달러짜리 건물을 구입해도 1년 임대수입이 50만 달러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50만 달러를 가지고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니 실제 수익률은 2-3% 선인 셈인데도 Starbucks 같은 메이저 세입자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은 바이어들이 줄을 선다. 


아무리 규제가 없다고 해도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출을 끼고 임대용 주택이나 상가 등을 구입하면 임대료만으론 대출상환금과 재산세, 건물 유지 보수 등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물을 소유하고도 돈이 모자라 거꾸로 돈을 틀어막아야 하는 경우를 가리켜 upside-down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4년간, 특히 지난 2년간의 부동산 열기는 가히 기록적이다. FED는 지난 12개월 동안 모기지 금리를 2% 이상 올렸는데도 부동산은 도무지 잡힐 기미가 없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마다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고 있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커머셜 전문 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나름 자타공인 실물경제통인 나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선 한 두 마디로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당장은 수익성이 없어도 어차피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미국의 부동산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로스앤젤레스의 최저임금은 지난 2020년을 기준으로 15달러로 인상되었다. 그 때문일까, 사람들은 시골에서 대도시로 꾸역꾸역 올라온다. 수요에 비해 주택 공급량이 현저히 모자란다. 지난 30년 간 렌트비는 평균 4-5배가 올랐고, 집값은 지역에 따라 5배에서 10배까지 올랐다. 땅은 제한적이고 공급량은 모자라니 이제 산을 밀어내고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의 주택은 시내에서 두 시간 이상을 나가야 하니, 출퇴근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치솟는 가솔린 가격 때문에 부담은 점점 늘어난다. 얄밉도록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정부이다 보니 집 없는 서민들은 어디 화풀이할 데도 없다. 그놈의 집 한 채 때문에 삶의 질은 점점 떨어져만 가고 있다.




큰 아이가 보고 싶어 퇴근길에 운전대를 돌린다. 집하고 일밖에 모르는 녀석이라 오늘도 퇴근하고 집에 있다. 맥주 몇 캔 놓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밤이 깊어간다.

“어른들이 망쳐 놓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너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아빠는.”

“아빠, 괜찮아, 다 사는 방법이 있어. 집을 못 산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젊은 애들은 나름대로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낼 거야.”

그럴까. 젊은 애들은 집이 꼭 소유나 투자의 개념이어야 하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을까? 그나마 씩씩한 아들 둔 덕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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