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반추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한 것은 중학교 3학년에서부터 고1까지였던 거 같다. 그때 학생증 사진을 찍어놓은 게 있는데 세상 우울하고 세상 불만 다 가진 무서운 아이로 보인다. 그 이후 생각지 못하게 20대 말 3년간 보낸 회사에서 팀원들이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팀장으로 평가되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인사과에 불려 다니면서 타의 반 자의 반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한창 방영 중이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보게 되고 거울 치료처럼 나를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그때 떠올려봤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해줄 때 나는 사랑받는다고 느꼈나... 였다. 부모님은 경상도 분들이시고 두 분 다 동생들이 많은 집에 장남 장녀이시다. 그러다 보니 사랑을 받기보다 주는 입장이시고 동생들과 가족들을 책임지는 자리에 더 있으셨다.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시며 정년퇴직까지 끝까지 성실하게 살아내시고 아파트 가지는 게 꿈이셨던 소박한 인생을 사셨다. 대단한 중견기업 사장님이나 부동산 벼락부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부모 도움 없이 격동의 7,80년대를 살아내고 IMF까지 직격타로 맞으면서도 잘 버티고 살아낸 나름 자수성가한 부모님이시다.
부모님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장황한 이유는 이런 시대 이런 환경에서 자라셨기에 사랑을 풍성히 표현하거나 하는 게 어색하셨던 거 같다. 스킨십에 대한 기억은 어릴 때 엄마 등에 엎였던 거. 유난힌 엎였던 거만 생각이 난다. 그 외 특별히 스킨십이 없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떠올랐는데 아빠랑 어디를 가면 아빠가 언니나 우리 손을 잡아주셨다기보다 아빠 새끼손가락을 잡고 다녔다. 그게 꼭 그만큼 허락된 아빠와의 스킨십이었나?
사실 말 한마디, 다정한 포옹 한 번이면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채워지지 않으니까 나는 엄마 아빠한테 뭔가 물건으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던 거 같다. 그게 옷일 때도 있었고 구두일 때도 있었고... 언니랑 2년 터울이라 거의 언니 물건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뭔가 새것을 사주시면 기분이 최고였다. 진짜 내 것이 생긴 거라 생각한 거 같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 하나가 있는데 바로 시계이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지금은 호텔로 바뀌었는데 그때당시 해운대 바닷가 가는 길 해운대 시작 길목에 백화점이 있었다. 거길 친구들하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신기한 시계를 봤다. 시계 전면 링을 바꿔 끼울 수 있는 메탈 시계였다. 그때 가격이 3만 원인가 7만 원인가 그 사이였나? 더 비쌌나? 기억이 안 난다. 시계를 패션아이템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였는데 나는 그 시계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멋져 보였다. 그러고 보면 참 유니크한 걸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고.
그 시계가 가지고 싶어서 엄마를 조르고 아빠를 조르고 언니 성격이면 그걸 사고 싶어 하지도 않지만 아마 사야겠다 했으면 용돈을 열심히 모으거나 해서 스스로 해결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그 시계로 아빠 엄마를. 특히 엄마를 괴롭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괴롭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결국 엄마는 내 생일이었나? 그 시계를 사주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언니가 한 마디 했었다. "엄마는 결국에는 향이 한 테 다 사주시더라"하고.
30대 말 다시 독립을 하고 나서 그래도 인천 본가에 자주 갔었다. 한 달 한 번은 예배를 핑계 삼아 부모님과 같이 예배드리며 얼굴이라도 보고 왔었다. 그런데 사무실을 임대하고 차를 정리하면서 그 핑계로 본가 집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언니네가 간다 하면 끼어 타고 가는 정도. 그러다 보니 부모님과 소원해지는 것도 같고. 또 오랜만에 만나면 아직도 포기가 안되시는지 결혼과 다이어트 이야기로 좋은 이야기로 끝이 안 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는 이야기들이 나를 지치게도 했고 말이다.
그러면서 한 편 마음에 찔림은 있고 이러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하면서 반성모드가 되면 슬쩍 용돈을 보내드리거나 사달라고도 하지 않으시는데 운동화를 사서 보내드리거나 뭔가 물건으로, 물질로 마음을 표현하게 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아빠 엄마에게 뭔가 사달라고 요구했던 내가 그렇게 무언가 사주면서 당신들의 애정을 표현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게 부모님에 대한 애정 표현에만 한정되어 있는 거 아닌가 하다가 소름 끼치는 발견을 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일을 하거나 하면 성과는 남지만 사람들이 안 남았다. 일중심적이고 목표지향적인 ENTJ라 사람과의 관계를 잘하지 못했다. 또 그걸 나름 살짝 인지는 하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카톡에 있는 선물하기를 남발했다. 남발했다는 표현이 정확한 거 같다. 그때 나는 그렇게라도 내가 표현 못하는 어떤 것을 선물하기로 대신하려고, 채워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전달되는 마음이 얼마였나 의문이 든다. 카톡 선물하기로 뭔가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독이 되는 것을 알게 된 어떤 날 이후 선물하기는 이제 자주 쓰지 않는다.
사랑을 받은 방법이 나아가 익숙한 방법이 나의 사랑 표현 방법이 되어버렸다. 당연한 거고 모두 아는 이야기일 수 있다. 사랑 많이 받은 사람이 사랑을 많이 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랑받은 방법 대로 사랑을 한다고는 못 들어본 거 같다. 사랑을 잘 표현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사람을 늘 바라고 나도 그런 사람 되고 싶다 했지만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이 이렇게 나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