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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Dec 14. 2022

르 코르뷔지에와 롱샹 성당 - 1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으로 본 ‘예술의 종합’과 건축사적 의의

ⅰ. 프롤로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랴쇼드퐁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는 효율적이면서 미적인 건축물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 보고서에서는 여러 건축물 중에서도 롱샹 성당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 롱샹언덕에 위치한 롱샹 성당은 기존에 선형적이고 합리적인 건축모델에서 벗어나 조형적이고 자연의 특정 형상을 모방한 듯한 독특한 외관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후기 구조주의 건축양식에서 본격적으로 이성과 합리주의를 중요시했던 근대정신을 벗어나고자하는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탈근대 정신은 건축양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롱샹성당의 건축양식은 기계와 자연, 인간이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서로 대치되기보다 조화를 이루고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서는 르 코르뷔지에가 롱샹성당에 담았던 정신을 살펴보며 예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고찰해본다. 인간의 필요에 의한 수동적인 건축에서 벗어나 예술과 소통하며 능동적인 건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롱샹 성당은 커다란 예술사적 의의를 가진다. 현대건축에서는 이러한 능동적인 건축모델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다. 여러 현대건축물 중에서 이러한 능동적인 건축모델들을 찾고 롱샹성당의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ⅱ. 르 코르뷔지에의 탈(脫)근대 정신과 후기 구조주의 건축


 현대 사회에서 근대 건축의 4대 거장을 꼽으라면 대부분 공통된 대답을 한다. 미국의 건축가이고, 유기체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했던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 콘크리트를 활용하여 우리가 지금 많이 사는 주상복합과 아파트의 원형을 발전시킨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철골 구조를 잘 활용했던 독일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판 데 로에(Ludwing Mies van der Rohe, 1886~1969).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유럽 특유의 디자인 풍을 보여줬던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1976)까지. 그 중에서도 이 보고서에서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그의 건축의 정갈함과 규칙성, 절제된 미(美)를 주로 언급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제한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실용적인 건축방식이다. 프랑스 푸아시 지역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는 그의 이러한 건축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분명 르 코르뷔지에가 이성과 합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근대 건축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건축을 단순히 기계성과 물질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논의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 뿐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성과 수학성을 기초로 한 담론 현장의 한계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탈 근대화된 사고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건축계 또한 이러한 새로운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와 같은 시대의 새로운 요구를 과감히 수용한다.


 그는 앞으로의 건축은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 정형적이고 기계적인 성격을 띠지만 그 이면에 비선형적이고 조형적인 특징이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자연’(nature)은 이러한 기계와 예술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성과 비이성, 기계성과 조형성, 물질과 비(非)물질을 대립·충돌하는 관계로만 규정지었던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연속적인 계(界) 안에서 수학적 원리와 자연 법칙이 두 개의 평행한 철로처럼 한 ‘큐’(cue)에 엮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모든 개체를 하나의 독립체로 보았던 기존의 주류사상에 반하는 사고였다. 이후에 대표적인 후기 구조주의자들인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론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탈근대정신이 퍼지는데 불을 붙인다. 그 중에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존재론은 계의 ‘개별 요소’를 더 이상 독립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계의 ‘운동과정’의 일부로 여기기 시작했다.


사물, 동물, 사람은 이제 움직임과 정지, 빠름과 느림, 변용태, 강도에 의해서만 정의됩니다. 이제 형식들은 없고, 형식화되지 않은 요소들 간에 이루어지는 운동학적 관계들이 있습니다. 이제 주체들은 없고, 집합적 배치들을 구성하는, 주체 없는 역학적 개체화들이 있습니다.

                                                                    (질 들뢰즈, 클레르 파르네 「디알로그」, 1977, 동문선)



즉, 들뢰즈와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를 중심으로 한 후기 구조주의 공간 담론에서는 각각의 개체들은 어떤 선형적인 원리에 따른 절대적인 고정 값이 아니라 계 전체의 어느 특정 평면의 단면을 대표하는 값으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개체는 유동적이며 가변적이고 비선형적인 동시에 불확정적인 성격을 띤다. 또한 개체와 개체 사이에는 어떤 위계구조도 없으며, 수평적이고 복합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현대 건축공간은 새로운 과도기를 맞이했고, 그 의미와 정의 또한 새로운 재정립이 요구됐다. 


 들뢰즈의 저서 「천 개의 고원」에서 그의 공간 담론은 두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홈페인 공간으로 수치적 공간, 정주의 공간, 닫힌 공간, 수목형 공간이었다. 이는 근대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결정론이 모든 개체를 지배하는 공간이다. 두 번째는 매끈한 공간으로 벡터적 공간, 위상적 공간, 유목적이며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전자와는 반대로 개체가 불확정적이고 우연한 요소로 인해 아직 어떤 방식으로도 결정되지도 규정되지도 않는 공간을 의미한다. 들뢰즈의 공간 특성으로 이 두 모델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상호충돌하고 복잡한 방향성을 띄면서 상호 공존한다. 이는 기존에 이분법적이고 합리주의에 따른 결정론을 선호했던 근대적 공간 담론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대 건축공간은 이와 같은 탈(脫)근대적이고 탈(脫)중심적인 공간 담론에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중심으로 한 후기 구조주의의 건축이론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을지는 확실치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르 코르뷔지에는 미리부터 근대 합리주의 모델의 한계를 깨닫고, 기계와 예술이 공존하는 건축 공간을 구상한 선각자였다. 이렇듯 이성과 합의주의로 대표되는 근대정신은 서서히 황혼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후기 구조주의자들을 비롯한 유기적인 건축양식을 표방하는 예술사조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다. 



ⅲ. 롱샹성당으로 본 ‘예술의 종합’


 롱샹 성당(Rochamp Chapel)은 기계와 예술이 하나의 연속선 위에 합일을 이룰 수 있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 정신은 인간과 건축 공간이 서로 교감하며 ‘우리’라는 존재가 세계의 어느 특정한 림보 위에 머무는 예술을 향한 감상자인 동시에 자연의 모델을 가져와 존재를 재현하고 실현시키는, 매크로 스케일의 예술세계에 당당히 개입하는 능동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1946년에 롱아일랜드 비치를 방문한 르 코르뷔지에는 해변에서 게딱지 하나를 발견한다. 


1946년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 주워 온 게딱지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성당 지붕이 되었다. 두 겹의 콘크리트 외피는 6센티미터의 두께로, 2.26미터의 간격을 두고 제작되었다. 이 슬래브는 붕괴되어 나온 옛 파편들로 만들어진 벽 위에 놓이게 된다.

                                                                                                     Le Corbusier (1957), pp 89-90


 그는 방주나 비행기를 닮은 이 게딱지를 롱샹성당의 지붕 모델로 삼는다.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온 하중을 견뎌내고도 깨지지 않는 게딱지를 보면서 이를 현대건축의 주요한 소재인 철근 콘크리트의 모티브로 삼는다. 그는 이렇게 자연의 대상을 모티브로 삼아 설계한 롱샹 성당의 디자인이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그것은 차가운 기술, 비인간적인 건축에서 벗어나 예술성과 미학성을 추구하는 양식이었다. 하지만 그가 근대의 이성과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선형적인 건축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해변에서 주워 온 ‘게딱지’는 어느 순간 그의 눈에 들어왔고, 그 자연 모델을 확장하여 롱샹 성당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현하고, 실현시킨 것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여 이를 새로운 건축으로 구현한 것에 그치지 않고, 기계와 예술이 조화를 이루고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해변의 게딱지를 오랫동안 관찰하는 동안 그 형태의 예술적인 측면을 발견한다. 그는 게딱지가 마치 인간인 마냥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다고 느꼈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것의 아름다운 곡선과 예술적 가치를 하나의 작품으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강한 내적욕구를 느꼈다. 이런 내적인 욕망은 그에게 가시적인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예술세계 사이에 은밀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신념을 갖도록 했다. 


 즉, ‘게딱지’는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스럽게 탄생한 모델이지만, 파도와 지형의 변화 등 억겁의 시간을 견뎌오며 생성된 하나의 복잡한 창조물이기도 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우연히 ‘발견한 대상’인 게딱지가 메크로 스케일의 건축이라는 매체를 통해 확장되고 재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해변에 무수히 깔려 있는 ‘게딱지’는 그 형태와 외관에서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고 그동안 어떤 외부작용이 있었는지 상상하게끔 한다. 외부의 다양한 힘에 의해 탄생된 ‘게딱지’ 모델은 결국 그 형태가 늘어지기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러한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이 결국 우주의 불변한 수학 법칙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게딱지’는 곧 수학적 추상화의 상징이며, 기계적이지만 동시에 조형적이고 아름다움을 쫓는 하나의 예술적인 대상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와 같은 다층적이고 동시대적인 특성을 ‘예술의 종합’(Synthesis of the Arts)이라고 표현했다. 근대 기술문명이 인간의 본질을 갉아먹고 있다는 시대적인 비판이 만연한 가운데 그는 차갑고도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조형성을 강조하는 ‘예술의 종합’이 합리성과 이성적 원리라는 근대의 이념에 결코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르 코르뷔지에는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한 게딱지를 통해 자연 안에 조형성을 발견하고, 이를 건축양식에 대입하고자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자연’이라는 조형물 또한 수학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는 ‘우연한’ 대상이었던 게딱지 또한 우주라는 거대한 질서체계에 귀속되어 있으며, 주변 지질학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가 일정한 규칙을 갖고 변형될 수 있음을 말했다. 어린이가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신체 골격이 일정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건축 또한 숨을 쉬는 유기체처럼 조금씩 성장하는 ‘그것’ 자신의 형태를 보며, 구수한 살갗 냄새와 완성체로서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게 된다. 르 코르뷔지에는 유기적인 모더니즘을 꿈 꿨고, 그것을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탄생시켰다. 해변의 ‘게딱지’는 자연이라는 거친 환경을 겪으며 계속해서 퇴적·침식·풍화라는 운동과정을 반복하는데 이를 통해 매끄럽고 아름다운 곡선 형태로 빚어진다. 인위적인 환경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이러한 곡선·면은 그 대상이 ‘아무도 손대지 못한 고유한 것’(an intact thing)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존재의 가장 아래에 깔려있는 얇은 ‘수면’, ‘무의식’ 같이 도통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적이며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근대정신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칠흑 같은 암흑을 해치고 나 자신이 자연, 세계와 진정한 합일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하지만 ‘게딱지’는 완성체로서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주라는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다. 개체가 변하더라도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게딱지는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더 커질 수도 있고, 더 작아질 수도 있다. 우주라는 수학적인 구조 안에서 메크로적인 세계와 마이크로적인 세계가 계속해서 병행하고, 세상은 ‘게딱지’와 같은 부산물들을 계속 낳는다.


 르 코르뷔지에는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기계적인 내구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근대의 합리주의 정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 그것을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르 코르뷔지에와 동료 건축가들은 건축에도 인간성이 배양되어야 생각했다. 개인과 사회, 세계 사이에서 자연의 우연한 대상을 목격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행위가 그것이었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의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거주하기 위한 수동적인 건축이 아닌, 세계를 직접 들여다보고 세계의 흐름에 개입하여 그 정세를 바꾸어내는 능동적인 건축을 선호했다. 그러므로 다수의 여론에서 르 코브뷔지에를 평가하면서 효율적인 건축을 했다는 편견은 아주 편파적인 것에 불과하다. 


 예술은 그 자체로 시대적인 의미를 갖곤 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그날 해변에서 우연히 ‘게딱지’를 발견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예술세계가 눈앞에 보이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선 발 벗고 뛰는 예술가들이 있어야만 한다. 그들은 타인이 보고 느끼지 못한 감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예술가들의 그러한 기여로 관객들은 현실이라는 벽을 넘어 비로소 예술세계의 문턱에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예술가는 현실세계와 예술세계를 잇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 롱샹 성당은 예술을 대하는 예술가의 태도를 보여주고, 개인이 어떻게 예술세계와 소통하는지에 관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지금부터 우리는 현대건축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이 남긴 흔적들을 하나씩 찾아보고자 한다. 그의 유기적이고 생태학적인 건축 양식과 자연과 세계가 하나가 되는 예술의 종합, 또 조형성과 기계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시대정신은 이후의 예술사조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예술을 현실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인간성과 조형성을 더한 건축물은 외부세계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하나의 자연스러운 유기체로 변모해간다. 건축물의 모든 요소들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내외부적으로 완벽한 균형에 다다른다. 건축물은 스스로 호흡을 하고, 자가 회복하며, 시간을 견뎌낸다. 현대건축에도 이러한 르 코르뷔지에의 유기적인 정신이 계속해서 계승되고 있다. 물론 모든 현대 거장들이 르 코르뷔지에를 자신의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제관계와 같이 직접적인 관계가 아닐지라도 거장의 정신은 그 영역의 시스템과 인프라를 통째로 바꿀 정도로 강력하다. 첫 번째는 안도 다다오(Ando Tadao, 1941~)의 빛의 교회와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보면서 롱샹 성당과의 유사한 점을 찾는다. 두 번째는 물질생태학을 연구하며 최근 건축계에서 혜성처럼 떠오르는 유대계 미국인, 네리 옥스만(Neri Oxman, 1976~)의 작품들에 관해 살펴본다. 실크 파빌리온(Silk Pavillion)은 누에고치가 직접 건축을 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건축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자연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롱샹 성당 외부 전경>
<프랑스 푸아시 지역의 빌라 사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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