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thony Hopkins ; 한니발 렉터. 강렬함. 빙의 >
늙은 할아버지. 솔직히 내가 「한니발 렉터」 시리즈를 봤는지 안 봤는지 게슴츠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세편 중에 한편은 보았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워낙 명작이라서 주위에서 너무 많은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보지 않아도 이미 본 것 같은 익숙함이 있다. 안소니 홉킨스가 젊었을 때에 작품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가장 오래됐다고 느껴지는 게 「섀도우랜드」(1993) 정도이다. 나는 나니아 연대기를 썼던 작가 C.S. 루이스의 책들을 좋아한다. 「섀도우랜드」에서 홉킨스는 루이스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 즈음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C.S. 루이스의 인생을 이미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인생의 굴곡을 표현하는데 안소니 홉킨스만 한 배우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한니발 렉터 박사로 단 15분을 출연해놓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가져간다는 게 참 어이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그의 영화적 페르소나는 강렬하다. 첫인상이 너무나 강렬하다. 무섭기도 하면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대는 얼굴.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 어떤 엑소시스트를 치르는 사제의 이미지가 생각난다. 예전에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같은 영화를 봐서 그런 것일지도. 최근에 개봉한 「두 교황」에서 그는 뻣뻣하고 보수적인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했다. 겉은 까칠까칠하고 거칠지만 속은 상처와 따뜻함으로 메워져 있는 교황을 보면서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했다. 앤서니 홉킨스는 알 파치노, 크리스찬 베일, 이병헌 같은 배우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어떤 강렬함 같은 게 아닐까.
정말 악마가 깃들어 보이는 주름 굴곡. 약간 쉰 것 같은 목소리에서는 오묘함과 오싹함이 동시에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