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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교시 Jan 02. 2023

수학시간의 댄스파티(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수상작)

일학년 교사의 시간, 일교시

몇 해 전 우리 반에는 조금 특별한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의 어머니께서는 내게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상담을 신청하셨고, 나는 그 상담 시간을 통해 아이의 특징에 대해 '병명'으로 들을 수 있었다.


“민혜는 조현병이에요. 어렸을 적에는 인사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였는데, 최근에…….” 어머니는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고개를 떨군 채 말끝을 흐렸다. 조현병. 명명하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 아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아이는 춤추는 것을 아주 좋아했는데, 물어보면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때로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도리질을 하기도 했다. 신규교사였던 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뒤져보며 이 아이에게 어떠한 특징이 있을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 당시 뉴스에서도 ‘조현병’과 관련한 사건사고를 접하기도 해서 나는 아이의 모든 행동을 기록하며 ‘조현병’의 특징이라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관련 자료와 서적을 뒤져본 것이 무색하게 나는 교단일기에 행동특성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3월이 채 지나기 전 수학 시간이었다. 이제 막 입학한 8살 꼬꼬마들에게 아침부터 오후까지 수업을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치원(혹은 어린이집)에서 바닥 생활을 하다가 불편한 책상과 의자 위에서 5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과 간식도 없이 낮잠 시간이 따로 없는 교실에서의 생활은 꽤 고역이다. 점심시간 후 햇살에 몸을 녹이는 고양이들처럼 아이들은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수업을 하는 나도 꿈뻑꿈뻑 눈이 감기는 그런 시간이었다.


‘벌떡’


갑자기 민혜가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는 꼭 발레를 하는 것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위로 모은 채 친구들 사이사이를 지나 칠판 쪽으로 나와 빙그르르 돌았다. 아마도 민혜의 귓가에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민혜를 쳐다봤고, 그중 한 아이가 나에게 얘기했다.


"선생님, 민혜 수업 시간에 춤춰요!"


아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혜는 양손을 팔랑거리며 춤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응, 민혜는 상상하면 그게 이뤄진대. 그래서 상상하는 대로 노랫소리가 들리거나 볼 수 있대.”


나의 걱정도 잠시, 아이들은 너도 나도 쫑알댔다.


“멋지다!”

“선생님, 저도 상상 잘해요.”

“선생님, 저도 춤춰도 돼요?”


아이들은 어느새 나와 민혜 주변을 둘러싸고 리듬 탈 준비를 했다. 나의 ‘레디~ 액션!’만 남은 상태. 

아차, 지금 이 교실에서 진짜 바보는 나 하나였구나. 이렇게 나른한 오후 시간, 수학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정상인가? 흥겹게 춤을 추는 게 정상인가? 나는  ‘조현병’이라는 틀 안에 민혜의 행동을 단정짓고 욱여넣으려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얘들아, 우리 다 같이 춤출까?”

"좋아요!"


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수업이 뭐 대수랴. 신나는 노래를 틀고 아이들이랑 춤을 췄다. 무아지경의 댄스 삼매경. 따분한 수학 시간, 민혜 덕에 생긴 선물 같은 15분이었다.


어른들은 이름 정하기를 좋아한다. 한정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일 학년 교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조현병’이라는 세 글자에는 민혜의 날갯짓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민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즐거운 행복을 선사했는지는 담겨있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춤 좀 추면 어떠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걸.



*모든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작년부터 용기를 내서 공모전에 도전했다. '좋은 생각'은 나의 유년 시절을 함께 해준 고마운 출판사이다. 엄마는 근 수십년 동안 좋은 생각 정기구독을 하셨다. 매해 말일이 되면 그 다음달 좋은 생각을 침뭍혀 넘겨가며 깔깔대던게 나의 일과.

그 덕분인지 2022년 일년에 두번 있는 큰 대회인 생활문예대상과, 청년이야기대상에서 운좋게 두 번 다 수상을 하게 됐다. 생활문예대상은 6000편이 넘게 응모되었는데 은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내 직업과 관련해서 받게 된 상이라 더 감사하다.작년 1월에 받은 상인데 이제서야 올리다니 조금 민망하지만..  2023년 올해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 투고하기 위해 나 스스로 용기를 다지며. 2023년에는 꼭 출간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원하시는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와 출판의 길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추신. 이번 1월에도 18회 생활문예대상이 있으니 응모해보세요. 

좋은 생각 응모 사이트 => http://www.positive.co.kr/entry/them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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