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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Mar 24. 2023

붉은 게 인형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인형을 하나 샀다. 붉은 게 인형이다. 가방에 달고 다니면 귀여울 것 같아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매달았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나의 별자리가 게자리이기 때문에,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게라고 믿기로 했다. 사람들은 초콜릿 막대 과자나 구멍 뚫린 호박 같은 것에 웅장한 의미를 두기도 하니까, 눈 달린 솜 덩어리를 사랑하는 것 정도야 그저 예삿일일지도 모르겠다.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 한때는 토끼풀 군집을 마주칠 때마다 자동으로 무릎을 굽혀 기형 토끼풀을 찾곤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잎이 세 개 뿐인 토끼풀 밖에 없어 번번이 실망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정상적인 토끼풀은 외면되고 비정상적인 토끼풀이 각광을 받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정상적인 존재는 인정 받고, 비정상적인 존재는 배척당하는 인간 사회의 기조와는 달리, 토끼풀 세계에서는 비정상적인 존재가 곧 신묘한 행운의 상징이다.


과연 네잎클로버를 지니고 다니면 행운이 찾아올까? 당연히 잎 네 개 달린 풀 따위를 몸에 지닌다고 온 우주의 기운이 한 사람의 삶을 돕는 판타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붉은 게 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니면서부터 썩 기분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서 한동안 우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좋지 않은 기운을 몰고 온다면서 붉은 게 인형을 얼른 떼어버리겠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붉은 솜뭉치 따위가 내게 행운을 주지도, 불운을 주지도 못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울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잠깐의 행복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는 붉은 게 인형이 행운의 상징처럼 느껴지겠지.


그렇다. 모든 건 그냥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객관적이나, 그 일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결정하는 우리의 관점은 반드시 주관적이다. 때문에 같은 일을 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고, 그 일의 영향력도 달라진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파란 하늘과 분홍빛 벚꽃이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하늘과 꽃이 함께 만드는 풍경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이다. 우울할 때면 붉은 게 인형이 괜히 원망스럽고 불운의 상징처럼 느껴지겠지만, 행복할 때면 붉은 게 인형이 사랑스러워보일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의 이미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평범한 세 잎 토끼풀 하나에 사랑을 주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토끼풀은 얼마든지 행운의 부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붉은 게 인형은 아무 힘이 없지만, 내가 그것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면 그 솜뭉치는 행운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붉은 게 인형이 행운을 가져다 주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며, 실제로 행운을 가져다 주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의 마음이 붉은 게 인형을 행운으로 정의하는 순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객관적 일은 우리의 눈과 마음에 포착되는 순간 반드시 주관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가치관이, 신념과 성격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각각의 특징이 있고, 어떤 사람의 특징이 가끔은 내게 버겁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지,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함께 하려고 애를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특징 하나로 그 사람을 싫어하겠다며 단정지을 까닭은 없을 것 같다. 나의 시선과 마음가짐을 조금만 달리 하면, 한 사람의 모든 모습이 얼마든지 따스하고 아름다운 상징이 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면 우리가 사랑하지 못할 것은 없다. 심지어 비정상적 면모까지 사랑할 수 있다. 토끼풀 세계에서는 비정상적 모습이 곧 행운과 기적의 상징이 되었음을 기억하자.


언젠가 붉은 게 인형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지금도 이미 내게 너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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