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또집 Jun 22. 2024

나는 절약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낭비한다.

낭비가 죄인가요?

나는 소위 말하는 "짠순이"였다.



임신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나는 심한 입덧에 하던 일을 그만뒀고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남편은 일이 맞지 않는다며,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1년을 버텨내던 회사를 결국 그만뒀다.

(수입이 아주 없는 건 아니고 과외는 하고 있었다.)



책임져야 할 아이는 생겼는데 생계는 불안정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국가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생긴다.

그 지원금과 남편 과외비, 그리고 내가 짬짬이 하는 알바로 생계를 이어갔다.

(우유배달, 이유식공장, 식당 알바 등... 내가 육아해야 할 시간에 방해받지 않는 일이면 이것저것 뭐든 다 했다.)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P형 인간

하지만 이런 나임에도

이런 생활 속에서 그리는 우리의 미래는 너무나도 불안정했다.



요즘은 아기가 태어나면 장만해야 할 육아템, 국민템이 많기도 하다.

SNS에는 예쁜 아기 용품과 함께한 아기 사진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난 달랐다.



아기용품은 거의 사지 않았다.

거의 다 물려받았고 그 흔한 국민템 장난감 하나 사주지 않았다.

예쁜 감성템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별 것도 아닌, 5만 원도 안 되는 유모차 커버가 손이 떨려 사지 못했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여기저기서 아기용품이 들어와 웬만한 있어야 할 건 다 가지고 살았다)


 

"굳이?"라는 말은 언제나 입에 붙어있었다.



내가 좀 불편하기만 하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육아템

내가 좀 참으면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음식들

내가 좀 바쁘게 움직이면 "굳이" 사 먹지 않아도 되는 비싼 외식 음식들과 시판 이유식

내가 좀 반복되는 일상에만 살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여행



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누리지 않고 살았다.



그리고 현재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약 2년이 흘렀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그 사이 남편은

9개월을 쉬고

1년을 일하고

현재는 공부방을 차렸다.




공부방이 잘 되었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얼마나 올 지 확실한 것 하나 없이 무작정 차린 공부방이었기에..ㅎ

(오픈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았다.)



고로 수입은 아직도 불안정하다.

그런데 난 이제 절약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낭비를 한다.



"돈이 행복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엄마에게 누누이 들어온 말이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말을 실감했다.



그래서 얼마 되지도 않는 수입 속에 소비는 최대한 줄이고 다람쥐 도토리 숨기듯 모으고 모으기만 해

그 제대로 된 수입이 없는 와중에도 1000만 원을 모았었다.

(나도 어떻게 해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

퇴직한 엄마와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함께 제주 한달살기를 갔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절대 꿈도 못 꿀 한달살기라고 생각해

엄마와 마지막으로 긴 여행을 가보고 싶어 무리해 떠난 제주도였다.



그 한달살기는 내 삶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여행은 그저 사치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들



하지만 아니었다.



제주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하늘 아래 바라보는 엄마와 아들은 눈이 부시도록 더욱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걸 눈에 담으며 깨달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건강

그리고 시간



난 돈을 모으기 위해 내 시간을 버리고 있었다.

그 돈을 왜 모으는지 목적도 없었다. 돈이라는 단어 하나만 맹목적으로 쫓았다.



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그 목적 없는 달리기 속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난 낭비를 시작했다.



건강을 위해 비싸서 못했던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아이의 돌아오지 않을 예쁜 시절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샀다.



그리고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을 뒤돌아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허리띠를 조여매고

모든 것을 참고 통제할 적에

만족하지 못할 저렴하고 의미 없는 것에 시간과 돈을 썼다.



당연히 그런 건 내 에너지나 양분이 되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지나면 돌아오지 않을 것에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에

시간과 돈을 쓴다. 아끼지 않고 쓴다.



그렇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사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해버린 나의 낭비는



나 자신을 대접하게 했고



때로는 내 에너지가 되고

때로는 내 지식이 되고

때로는 내 경험이 되고

때로는 내 순간들이 되어



머무르는 내가 아닌

정말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그리고 행복한 나는 어디에 있는지 배워가는

성장하는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이제 기대가 된다.

 의미 있는 낭비들이 어떤 나를 만들어줄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어떤 가정을 만들어 갈지.



나는 이제 돈이 있어도 없어도 가질 수 있는 행복을 가르칠 수 있는

제법 행복한 엄마다.







작가의 이전글 육아는 상실이 아니라 경력 쌓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