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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 Aug 21. 2021

수업 끝 5분의 환대

유머라는 위대한 무기


라이언 이번 주 DT수업 때는 어떤 개그 할 거야?

아이의 학교에 선생님으로 DT(Different thingking) 수업을 가르쳐주고 계신 목사님께서, 아이와 함께한 자리에서 물으셨다.  '개그? 개그 발표를 하나?'  어리둥절해 하고있는 나와 다르게 아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생각날 것이며, 그때 되어 가장 재미있는 이슈 하겠다는 답변으로 의지를 드러냈다.


선생님께서는 매주 DT시간 수업이 끝나면 5분 정도 라이언이 개그를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어른이 보기엔 그다지 웃기지 않은데 아이들은 배꼽을 잡으며 웃음을 터트리곤 한단다.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웃긴 건지 이해는 안 가지만 라이언도 반 친구들도 그 시간을 꽤 기다린다고 하셨다.


'매주?? 우리 아이가 매주 아이들을 웃기는 역할을 하는구나' 신기하기도 했고, 유머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와 다르게 개그본능이 넘치는 유쾌한 아이의 성향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맘 한켠에 걸리는 일은 한참 아이의 자아가 뚜렷해지는 일곱 살 무렵 겪어야 했던 아픔과 슬픔의 기류가 아이에게 혹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였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한 해 앞두고 나는 갑자기 아팠고, 아이의 어린 시절 주 양육자였던 누구보다 사랑했던 할머니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셨다.


내가 입원해있는 보름 동안 아이는 여동생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냈었는데, 엄마와 그렇게 긴 시간 떨어져 있는 게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엄마 어디가 아파? 언제 오는 거야?"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뭔가 다 이해한다는 듯 어른스럽게, 그러다가 병문안을 올 때면 작고 통통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한참을 옆에 붙어있곤 했었다.


그러나 곧이어 맞닥뜨린 슬픔 속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그 한 해 동안 아이의 마음을 살 필 여력이 없었다. 아이 앞에서는 울지 않고 되도록 일상을 그대로 살아내려 했지만, 웃음이 헤펐던 내게 일상이었던 미소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었다.


그 무렵이었다.

아이는 무표정한 나와 마주할 때면 웃긴 표정 혹은 재미난 행동으로 꼭 엄마를 웃게 만들고서야 마치 임무를 완수한 표정으로 본인이 할 일을 하러 갔다. (주로 티브이 보기, 간식 먹기 등의 아이의 메인 업무를 하기 전)

웃긴 이야기가 있으면 "엄마! 엄마!”를 연신 불러대며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내가 진심으로 하하 웃을 때까지 말이다. 아이들은 웃음이 진심인지 아닌지 바로 알아낸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웃음의 에너지는 엄마가 슬픔에 잠식되는 순간마다 제대로 능력을 발휘했고, 나는 아이와 있을 때는 도무지 슬픔에 몰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로 아이가 잠든 밤 시간 그 동굴에 들어갔다 나오곤 했었다.


그래서 였을까?

걱정이 많은 엄마는 아이의 개그본능을 이렇게 연결시키고 만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아픔과 슬픔의 공기 안에서 아이의 유머가 혹 생존 도구는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가족들이 가라앉아 있는 모습 속에서 엄마가 웃음 짓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안정감을 느낀 아이가 그것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서 유머의 능력이 개발된 걸까?


마음 한켠이 아렸지만, 나는 세상 가장 어려운 것이 유머인데 아이는 이미 유머를 장착하고 살아가고 있다니 그 사실이 내심 반갑고도 감사했다.





슬픔에 빠졌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슬픔에 빠졌을 때 오히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상태로 빠진다. 그것이 슬픔이 갖는 부정적 내향성이다. 그런데 웃음은 잠깐 ‘자기’라는 존재를 불현듯 놓아버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현실, 나의 책임이 무엇이고, 내 슬픔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 이 모든 것을 그 순간 잠깐 확 놓아버리는 것이다. 웃음은 자기를 잊음으로써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웃음이 가진 긍정적 외향성이다.  
<정여울. 그림을 읽다>


정여울 작가의 글에서 나의 모습과 아이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다. 긴 시간 이어진 나의 슬픔이 자기중심적인 상태로 빠져드는 동안, 아이의 유머와 웃음이 가진 '긍정적 외향성'은 아이와 함께하는 나의 일상에서 반 강제적으로 슬픔에 거리를 둘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 옆에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라이언이 재미난 이야기나 행동을 해서 친구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

"아냐~엄마. 난 그냥 그럴 때 내 기분이 좋아져. 누굴 위해서 뭐 그런 거 아니고,그냥 내가 엄청 기분이 좋아!”


10살 아이는 유머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유머라는 무기가 얼마나 위대한지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건만, 초등학생 아이는 벌써 이 지혜를 자연스럽게 삶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는 정말로 효과적인 무기가 하나 있다.
바로 웃음이다. <마크 트웨인>


웃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활용해서 긍정적인 태도로 삶에 임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은 경험과 가치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웃음이란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며, 누구에게나 주신 신의 선물임에도 누구나 제대로 누리고 있지는 못하지 않은가.


내일 아침은 활짝 웃으며 모든 얼굴 근육을 사용하는 하루를 맞이해야겠다. 미소로 펴진 얼굴만큼 구겨진 마음도 펴지길 바라며, 아이에게 제대로 유머 한 수 배워보련다.





매주 5분 동안 모두에게 환대받는 이 시간이 아이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주는 귀한 시간이 될 거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 속 깊은 사랑이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에 진하게 느껴졌다.


귀한 시간을 만들어 주시는 선생님의 5분.

아이의 유머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친구들의 5분.


함께 만들어주시는 그 ‘5분의 환대’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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