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진 Aug 14. 2021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하루하루를 화양연화로 살아


어느 날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 휙휙 바뀌는 게 인생이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 착한 아들 그럴 때마다
너무 마음 쓰고 그러지 마. 응? 알았지?

 <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8화 정원 모 '로사' >


매주 목요일이면 아이와 함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시청한다. 이 드라마만의 따뜻함과 뭉클함이 좋아 아이와 공유하고 싶은 맘에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맨살을 꼭 맞닿은 채 함께 보곤 한다.


로사의 대사를 듣는 순간.

꼭 엄마가 하늘에서 내게 전하는 말 같아 한참 동안 체한 것 마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음을 삼키고 아이에게 대사를 그대로 따라 읊어주었다. 아직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어느 날 문득 내가 엄마처럼 그렇게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다면, 아이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비록 오랫동안 견딜 수 없는 슬픔의 동굴 속에서 헤매었지만 아이는 부디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말이다.




그랬다. 온기 가득한 어느 날 저녁, 엄마와 함께 서울 외곽에서 교육 중이었던 제부를 데리러 갔던 여동생에게로부터  다급히 걸려왔던 전화 한 통. 그 전화 한 통에 우리의 충만하게 행복했던 일상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엄마의 생신을 일주일 앞둔 그날 생신파티를 앞 당겨서 하기로 했다가, 아빠의 출장이 길어지면서 엄마가 서울에 일주일 더 머무르시기로 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은  모여서 식사만 함께하고 다음 주 제대로 된 파티를 하자 했었다. 퇴근길 뒤늦게 전달받은 남동생은 이미 엄마를 위한 선물과 꽃다발을 준비해서 왔다. 인터폰에 비친 남동생의 얼굴에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버선발로 달려 나갔고 동생은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드렸다. 우리는 넘치게 행복했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가족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여동생이 조용히 제부를 데리러 가는 걸 발견한 내가 임신한 동생이혼자 운전하고 가는 게 맘에 걸려 따라나섰었다. 그런데 제부의 교육장에는 신분증 없이 출입이 불가한 탓에 주차장까지 내려갔던 나는 다시 올라왔고, 요리 중이시던 엄마는 올라온 나를 보고 동생 혼자 보내면 안 된다며 다급하게 따라나서셨다. ( 그때 내가 신분증이 있어 엄마가 따라가지 않았다면 엄마는 지금 우리 곁에 계실까?)


두어 시간이 지나 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엄마와 동생이 오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걸려 온 전화 한 통.

전화를 받은 남동생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불안한 마음은 우리를 덮쳤다. 접촉사고가 난 건가? 수화기 밖에서 추궁하는 내게 교통사고는 아니라며 안심시키는 남동생의 말에 일단 한숨을 돌렸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제부를 픽업하고 돌아오던 길, 뒷좌석에 계시던 엄마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구급대원의 처치로 현재 호흡과 맥박은 잡혔으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로 근처 병원에 도착해 지금 막 검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엄마 깨어나실 거야. 검사 끝나고 나오면 다시 전화할게” 걱정하지 말라는 동생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떨림과 함께 흐느끼고 있었다.

남동생과 남편은 곧장 엄마가 계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도 당장 출발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있어 일단 먼저 가서 상황을 알려달라 했다.


거실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피해 깜깜한 방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엄마의 어떤 곳도 상하지 않게 지켜 달라고 어서 깨어나셔서 이전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늘 그러셨던 것처럼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울다 기도하다를 반복했다.


먼저 도착한 남편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아이들을 데리고 출발하라 했다. 엄마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 괜찮으시니 우선 병원으로 차분히 오라 했다. 양손에 아이들 손을 꼬옥 잡고 택시를 잡아 탔다.


한 시간 넘게 달리는 택시 안에서 불안한 마음에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가며 양손에 일곱 살 된 아이와 네 살 조카의 고사리 같은 손을 꼬옥 힘주어 잡은 채 또다시 기도했다.


'엄마를 지켜주세요. 이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잘할게요. 정말 잘할게요'


십 년 전 엄마가 갑상선암에 걸리셨을 때 세브란스 병원 예배실에서 엄마를 지켜달라고 몇 시간을 무릎 꿇고 기도했었다. 엄마를 지켜주시면 믿음 생활을 잘하겠노라고 서언했었는데 그리 살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타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내 가족의 행복을 자랑하던 삶을 산 교만한 내게 내리신 벌이신가? 그것도 아니면 살아오며 나도 모르게 했던 어떤 과오들 때문일까? 수많은 생각들을 하며 반복해서 기도했다.

‘제발 엄마를 지켜주세요. 제발’

그렇게 중얼거리며 엄마가 계시다는 서울 외곽의 어느 병원으로 달려갔다. 내리는 순간 느껴지는 그곳의 공기는 몹시도 낯설고 매서웠다. 그리고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차디찬 소식을 마주해야 했다.


수백 번 테잎을 감아봤지만 아직도 꿈이겠지 하는 희망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그날의 일들.


그날 걸려온 그 한 통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었고 넘칠 듯 행복했던 가족의 일상은 산산조각 깨어져버렸다.




마지막으로 나눈 수화기 너머 대화에서 엄마는 말했었다.


“같이 저녁 먹어야 하는데 차가 막혀 늦어지네. 너희들 배고플 텐데 먼저 먹고 있으렴. 엄마 빨~리 갈게!!”


엄마는 빨리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차 안에서 갑자기 온 가슴 통증을 참고 계셨을 것이다. 엄마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 ‘늦어진 가족들의 저녁 식사’는 조여드는 심장 통증도 누를 만큼 컸던 것이었다. 늘 그랬듯이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걱정하며 그렇게 엄마는 눈을 감으셨다.





정원이 병실에 찾아가 엄마 로사의 눈을 보며 나눈 마지막 대사는 또 한 번 마음을 울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Episode.8


“엄마 난 엄마가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자식들 걱정은 이제 그만하시고, 나중에 아프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하지 마. 앞으론 엄마만 생각하면서 살아. 만약 나중에 혹시 엄마가 치매여도 걱정하지 마. 엄마가 매일매일 우리 못 알아봐도 우리가 매일매일 엄마 알아보고 당신은 우리 엄마예요라고 말해줄게”

그러니까 엄마, 하루하루를 화양연화(花樣年華)로 살아. 난 엄마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8화 '정원'>


정원의 대사에 마음을 담아 하늘에 올려 보낸다.


엄마 그곳에서는 가족들도 자식들도 걱정하지 말고,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화양연화의 시간들로 가득 채워가요. 우리 다시 만날 그날까지

여름밤 도톤보리 거리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코코넛 오일과 생선가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