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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 Nov 06. 2021

엄마, 우리 오늘 저녁 산책할까?

나도 엄마가 있다.


'60대 초 중반 정도 되시려나'

조금 전 나를 스쳐 지나가신 중년 여성분의 나이를 혼자서 지레 가늠해 본다. 부러움으로 시작된 마음속 그늘은 어느새 슬픔과 억울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탁하게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나란히 걸으며 산책하고 있는 엄마와 내 또래의 모녀를 볼 때도, 어린 손주 손녀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 가시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에 눈이 따라갈 때도, 맘속에는 오직 부러움의 마음뿐이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순간은 중년 혹은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마주 걸어오는 상황을 아빠와 함께 있을 때 맞닥뜨리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 두 분의 흔한 일상 속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때로 부러움을 넘어서는, 날 선 감정이 드는 날이면 엄마 또래의 여성분을 마주하지 않고자 바닥만 보며 걸었다. 그래, 내가 보는 것까진 괜찮다 치더라도 혹 그 순간 아빠가 엄마를 떠올려 힘들어하진 않으실까 하며 전전긍긍했다. 엄마와의 이별 후 언젠가부터 '후'하고 내뱉으시는 아빠의 습관적인 한숨 소리는 늘 가슴이 아렸다. 친척들의 환갑, 칠순잔치 소식에는 언제나 축하의 마음 뒤에 얼룩진 질투가 함께 묻어있었다. 환갑을 일주일 앞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었다.




엄마를 보내고 회사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한 한 동료분이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많이 힘들었지. 나는 우리 엄마가 감기 걸렸다고 전화만 와도 마음이 그렇게 안 좋던데, 갑자기 얼마나 놀랐을까”


그 찰나의 대화 속에서 나는 ‘감기 걸리신 어머님’이 그렇게 부러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기 걸리신 어머님과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녀가 미치도록 부러웠었다. 이제 내겐 전화해서 일상을 나누고 힘들 때면 응석 부릴 수 있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그 순간 자각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 있는 사람이 부러워지기 시작한 건 그날부터였다. 아무 때고 엄마와 통화할 수 있는 사람, 엄마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어린 시절 이야기를 엄마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전해 들을 수 있는 그들이 질투 났다.




어느 날. 아이의 하교시간, 함께 나가던 아이의 친구가 오랜만에 마중 오신 할머니 얼굴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가 안겼다. 두 팔 벌려 한 아름 손주를 꼭 안아주시는 그 모습을 마주한,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품에서 자란 아이의 공허한 눈빛을 보는 순간, 차디찬 겨울 찬바람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던 내 마음의 얇은 유리창은 산산이 깨어져 버리고 말았다. 혹여나 이 질투의 마음이 들킬까 부끄러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빠른 걸음으로 지나왔다.


낯선 감정이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결핍된 마음이 억울함이나 속상함으로 이어져 버리고 마는 뿌옇고 쓴 감정. 내 가족은 언제나 그랬듯이 늘 행복해야 한다는 내 안에 있던 교만은 그 감정의 늪을 더욱더 깊게 만들었다. 심지어 행복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것조차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 뿌리 깊은 교만이었다. 채울 수 없는 상실의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며 느끼는 이 복잡한 마음의 소용돌이로, 나는 점점 감사함을 잃어갔고 부끄럽게도 때론 죄책감을 느낄 만큼 구정물 같은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그 마음에 눈이 먼 순간, 그동안 내게 허락되었던 셀 수 없는 행복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평범한 일상과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잊어버리고 그저 결핍된 마음에 허우적거리던 날 들이었음을, 수 없이 어두운 밤을 지새우고서야 알았다.

다행히도 한 해 두 해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모난 마음은 옅어 지고 그리움만 짙어져 갔다.


앞으로 나이 들어가며 엄마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도, 새 하얗게 변해가는 엄마의 백발을 볼 수도 없겠지만, 올해 초 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어느 때보다 엄마와 더 깊이 관계하고 있다. 함께했던 추억의 조각들을 회상하며 페이지를 채워 나갈수록 점점 더 엄마를 알아간다.


그 시간 동안은 꽃처럼 피어나던 어린 엄마도, 백발이 되어 저물어 가는 바랜 엄마도 모두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결핍의 마음을 걷어내고서야 비로소 내가 아닌 엄마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엄마가 좋아하던 초록 내음 가득한 산책길에서, 언젠가 우리 함께 걸으며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처럼, 엄마와 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고 이제 더 이상 함께 산책하는 모녀의 뒷모습이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여름 날 아침산책 중, 여동생의 렌즈에 담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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