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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 Jun 21. 2021

호호마미가 된 문학소녀

보라색 책 한 권이 일으킨 마음의 파동

노란색 종이봉투였다. 대문 밑 틈으로 쓱 하고 넣어진 작은 우편물. 수취인은 고.애.란 엄마였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엄마 앞으로 뭐가 왔네~”


궁금증 가득한 어조로 봉투를 건네었다. 엄마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보낸이를 확인  뜯어보셨다.     


짙은 보라색 표지의 책 한 권이었다.

작가 김경미. 출간소식을 알리는 작은 메모와 함께 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경미 이모는 엄마의 학창 시절 친구다. 학창 시절 엄마와 함께 문예활동을 했던 친한 친구로 교내 외 글짓기 상을 번갈아 수상 하곤 했었다는 무용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누른 후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보내줘서 고맙노라고, 친구가 자랑스럽다 전했던 것 같다. 엄마는 분명 기쁜 것 같은데 또 슬픈 것 같기도 했다.

어렴풋이 들리는 엄마 목소리에 묻어있는 애매함이 나를 문지방에 머물러 자꾸만 엿듣게 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엄마는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하셨다.


"우리 딸 배고프지? 뭐해줄까?"


그렇게 보라색 책과 엄마의 아쉬움 가득한 뒷모습은 나의 배고픔에 묻혔다. 그런데 왜 그날의 엄마 모습이 이토록 짙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인지 나는 오래도록 잘 몰랐다.

그 보라색 책이 엄마의 마음에 일으킨 파동을 그때의 나로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엄마의 왠지 모를 아쉬움은 공기로 전해졌던 것 같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지내오던 일상 속에서 갑자기 친구가 출간한 책을 받은 순간. 엄마가 마주해야 했던 것은 묻어뒀던 엄마의 꿈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 엄마의 별명은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엄마는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삼 남매를 키우는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도 틈틈이 책을 손에 잡으셨고, 육아일기를 비롯하여 매년 작은 다이어리를 장만해 짤막한 일상과 감정을 일기로 쓰시곤 했다.     


10살 무렵 나와 여동생은 엄마의 권유로 글짓기 교실을 다녔는데 그 무렵 글짓기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이 없었기에 엄마는 옆 동네 친구들까지 수소문해 멤버를 모으는 열정을 보이셨다. 영문도 모른 채 우리는 꽤 오랫동안 글짓기 수업을 다녔고 홀연 엄마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알게 되었다. 글짓기 수업에 그토록 열심을 내던 엄마의 모습과 우리 집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던 세계 문학을 비롯한 수많은 전집들은 엄마가 어릴 적 간절히 꿈꾸던 환경이었던 것을. 엄마의 꿈은 그렇게 엄마가 아닌 우리의 삶에 겹겹이 쌓여왔다.     



엄마가 된 엄마의 별명은 호호 마미였다. 

항상 미소 가득한 엄마에게 가족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갑작스럽게 엄마를 보내고 엄마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진 속 엄마는 하나같이 다 웃고 있었다. 이 사진에서도 저 사진에서도 엄마는 웃고 있다. 입이 웃지 않을 땐 눈이 웃고 눈이 웃지 않을 땐 입이 웃고 있었다. 심지어 배경에 살짝 나온 엄마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     


삶의 매 순간 웃을 일만 있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찌 렌즈에 담긴 대부분 사진에서 웃고 있단 말인가. 엄마로 살아가며 포기했던 많은 것 들에 미련을 접어 둔 채 호호 마미가 되기까지 엄마는 얼마나 애써왔을까? 주어진 상황에서 본인의 꿈을 이루는 것 외에 또 다른 방식으로 얼마나 가족들과 삶을 깊게 사랑했었는지... 비록 엄마는 없지만 남아있는 엄마의 반짝이는 흔적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보라색 책이 도착했던 그날의 엄마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과연 꿈을 덮어둔 채 호호 마미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의 시대라면 엄마는 좀 더 엄마의 많은 달란트를 활용할 수 있었을까?     




아이를 낳고 몸조리 차 친정에 내려가 있을 무렵. 느지막이 눈을 뜨면 엄마는 항상 작은 서재방에서 노트북을 보고 계셨다. 백일도 안된 손주의 밤중 수유를 도와주시느라 밤새 깊은 잠도 못 주무셨는데 매일 이른 아침마다 엄마는 노트북으로 블로그 에세이를 읽고 계셨다. 내게 몇 분의 글과 서사를 소개해 주시기도 할 만큼, 그 무렵 엄마는 글로 삶을 나누고 공감하며 울고 웃는 것에 푹 빠져 계셨던 것 같다.


“딸~엄마 미국 가면 그곳에서의 일상을 블로그에 써나가 볼 거야. 호호마미? 시애틀 그랜드마? 뭐가 좋을까?”


작가명을 고민하시며 나름 큰 포부를 이야기하시던 엄마 모습이 기억 속에서 스쳐갈 때면 미안함에 가슴이 시큰하다. 엄마의 생각을 담아낼 공간을 일궈 나가고픈데 시작이 어려워 딸에게 도움을 청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때 세심히 알려 드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마지막 날까지 온전히 호호마미로 살다 간 엄마.

작가를 꿈꾸었던 문학소녀는 그렇게 호호마미가 되어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엄마는 행복했을까? 엄마는 아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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