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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영 May 22. 2023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시간이 남기는 상실감이라는 발자국에 대하여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상실의 시대'로 한차례, 그리고 1Q84로 다시 서가를 가득 채웠을 때,


한두 번은 들어보았던 다른 책들과 다르게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제목이 흥미로워 집어 들어 읽었던 책이다.

하루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성적인 묘사에 집착하는 작가로 말하고는 한다.


또는 꿈결에 마주한 투명한 고치를 짓는 난쟁이 등,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작가로 이야기된다.  


그것이 전부라 아니라 생각하지만, 온전히 틀린 것도 아닌 것이

쓰쿠루 역시 성적인 묘사의 굴레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는 희뿌연 환상을 마주한다.​


그러나 이 책은 하루키가 줄곧 이야기하는 한 가지 뚜렷한 메시지를 더욱 부각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루지 못했던 인연들에 대한 아쉬움, 이루었으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연에 대한 그리움.


​하루키의 작품들의 많은 주인공들은 시간에 풍화된 기억들의 자리를 손으로 훑어올리며 형태를 기억해 보려 한다.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어쩌면 떠밀리듯이 앞으로 갈 뿐이다.


그렇게 묵묵히 살아가다 모종의 계기를 통하여 쌓여있던 고통을 느끼고 이것은 흘러가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낳은 상실감이라는 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 다른 말을 꺼내었더라면 지금까지도 곁에서 함께할 수 있었던 선택지들을 회상한다.


나고야에서 나고 자란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진로를 위하여 도쿄로 상경하고, 친구들은 나고야에서 각자의 학업을 이어나간다.


물리적 거리가 생겨났지만, 방학 때마다 볼 수 있기에 그에게 있어서 나고야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한순간에 친구들에게서 버림받기 전까지.


친구 이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던 그였기에, 차마 이유를 물어보지 못하고 그저 죽음의 구덩이 앞에서 누군가 자신을 밀어주기만을 기다리며, 결국 시간이 그 상처와 의문을 덮을 때까지 죽어가는 생애를 살아간다.

쓰쿠루는 더는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해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그 의문을 '미결'표시가 붙은 서랍 하나에 넣고 훗날 검증해 보기로 했다.
그의 내면에는 그런 서랍이 몇 개 있었고 많은 의문들이 거기에 내버려졌다.​

서른여섯, 중년이라 불리기 시작하는 나이.


처음으로 애정을 느끼게 한 그의 여자친구가 공허한 그의 내면이 과거의 사건에 의함이었음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권유에 따라 쓰쿠루는 십여 년이 지난 뒤에서야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 나선다.


자신이 버림받았던 이유를, 자신이 사람에게 마음을 내주지 못하는 텅 빈 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듣기 위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마치 항해하는 배의 갑판에서 밤바다 속으로 갑자기 혼자만 떠밀려 빠져 버린 듯한 기분이었어.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밤바다 속에서 내팽겨쳐지는 공포. 아마 그 때문에 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었을 거야


나고야와 도쿄를 오가기만 했던 그가

처음으로 순례를 떠났던 그 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

쓰쿠루는 문득 깨닫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그때의 슬픔과 우울함이, 그리고 어쩌면 일찍이 봉합할 수 있었던 가능성마저

무의미한 과거가 되어버렸음을


즐거움도, 슬픔도 지금의 나의 것이 아니며 오로지 상실만이 자신의 몫으로 남겨져있다는 것을.​


이 이후의 이야기도,


유독 쓰쿠루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어쩌면 누구에게도 몰입할 수 없던 나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에 대하여는


더 이상 적어내리지 않기로 한다.​


결국 나름의 순례의 길을 떠난 다자키 쓰쿠루가 구원을 받게 되는지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의 구원 역시 모든 시간을 살아내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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