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쟈스민 Mar 04. 2024

누구나 마음속에 데스노트 한 권쯤 있잖아요?

데스노트

나이가 들면서 이해심이 깊어진다. 그러나 이해심이 늘어나면 분노는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완 반비례관계로 경우 없고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난다. 무슨 말이냐면 나이가 들수록 생활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과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교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신기한 경험을했다. 초기에 나는 교사로서 평정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어떤 언행에도 화를 내지 않고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건 별 효과가 없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그 일은 반복된다. 아이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화를 내고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피드백이다.


그러다 보니 미숙한 친구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는 생각에 별로 화가 나지 않아도 부러 화나는 척하며 혼쭐을 내고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 적이 수도 없이 많다. 내 나름 최선을 다한셈이다.


그러나 요즘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화가 났다.


2023년부터 안정적인 교사생활보단 공부로 인하여 떠돌아다니는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니 교육청이나 읍사무소 혹은 대학원 사무실에 서류를 떼러 가거나 전화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정을 보시는 분들이나 동 교과 업종 종사자들을 만난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해왔던 대학교 교직원,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왜 은퇴하면 사기를 잘 당한다는 편견이 생긴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학교 밖은 야생이었고 나는 순진했다.


특수교육은 특수교사라는 직업만 가지는 과목이 아니다. 치료나 연구 쪽으로도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교사보단 오히려 행동인지치료,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쪽으로 센터를 차리면 좋다. 잘만되면 이 사업으로 돈을 갈고리로 모을 수 있다. 나는 센터라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 차려놓은 사업체지만 그래도 특수교육 영역인 만큼 아이들과 직원들에게 존중과 인류애가 있는 곳일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달 반정도 일하게 된 그곳에서 나는 선배이자 사장인 센터장과 갈등을 겪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처음엔 세상 좋은 사람인 것처럼 자신은 직원들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직원으로 부하직원을 양분화하고 싫어하는 직원은 쥐 잡듯이 잡았고 내가 대화를 할려치면 '귀찮게 뭐 어쩌라고, 말해봐라 다다다 널 묵사발 내줄게. 어차피 내가 사장이고 넌 여기 돈 벌로 온 노동자일 뿐이야. 그게 싫어? 그럼 그만둬.'이런 느낌이었다. 정말 내가 불편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걸 물어보면 제대로 듣고 차분히 대화하기보단 대놓고 싫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또 같은 교수님의 제자로서 질투가 났는지 자신과 나 중 누가 더 교수님과 친한지 알아보기 위해 나를 떠보고 시험까지 했다. 본인의 사업체니 자신 마음대로 하는 게 당연하지만 내가 뭔가 그 사람의 질투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인간이 이렇게 영악하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어쩔 줄 몰랐다. 원래 성격대로였으면 대판 싸웠을 텐데 같은 교수님 아래 공부한 제자가 서로 싸워 분란을 일으킨다면 교수님께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분노를 삭인 체 조용히 나가겠다 했다. 한 달 반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분노가 너무 오래갔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가슴에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손해지만 몸도 마음도 아팠다. 이렇게 분노가 오래간 건 자격지심 때문인 것 같다. 그건 그 선배가 너무 나쁘다 생각되지만 그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영어영문학과 출신의 영어교사였고 늦으막이 특수교육을 시작해 열심히 달려가는 부족한 석사 졸업생이었다. 하지만 그 선배는 학부부터 시작해서 박사까지 전부 특수교육을 전공했다. 치료도 확실한 효과를 보여주는 실력자였고 주위 사람들도 모두 인정하였다. 나는 내 입장에서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에 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또 안정적인 직장이 아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영어 및 특수 기간제 교사를 하니 갑질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까지 갑질을 하기 시작했다. 교무행정사, 동료교사가 자신은 정규직이라는 이상한 권위의식으로 내 교육활동과 업무에 훈수를 두고 이것저것 시켰다. 특수교사로 짧게 근무했을 때, 교무행정사가 "저런 애는 몽둥이가 답이지 무슨 먹을 걸 주고 잘해줘? 샘이 뭘 안다고. 내가 쟤를 더 오래 봤는데. 샘이 이제 특수교사 시작하면서 뭘 그렇게 노력을 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쟤는 그냥 샘 이용하고 지 좋은 것만 하는 거야. 샘이 잘해주니까. 살판난 거지."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에게 무작정 잘해주기만 한 게 아니었다. 강화의 법칙에 따라 소리 지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조곤조곤하게 하면 좋아하는 과자를 주고, 선생님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으면 아이가 좋아하는 요리수업을 강화로 준 것이다. 실제로 처음보다 아이는 소리 지르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행동이 줄었다. 대신 아이가 소리 지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면 무시하여 소거를 시킨 것이다. 왜냐면 그 아이의 문제행동 기능이 관심 끌기였고, 더 심각한 건 아이의 정서적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정사 선생님 눈에는 내가 마냥 애한테 맛있는 걸 줘서 입막음하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녀도 못 본 척 하니 애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돼서 조용히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정말 억울했다. 나는 얼마나 노력했는데."지 하고 싶은 대로 다해주니 조용하지. 나도 하겠다."라는 말이나 들이니.


심지어 2학기에 임신 휴가자리에 근무한 적도 있는데 연말이라 세부사항 및 특기사항을 쓸 시간이 다가오자 1학기 세부사항 및 특기사항은 휴가를 내신 선생님이 수업하셨기에 법적으로 당연히 그분이 한 줄이라도 써야 했고 2학기는 내가 수업을 한 것이기에 내가 써야 했는데 그분은 거부하셨다. 교감선생님에게 1학기 세특을 쓰지 않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뜬금없이 나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1학기 세특 써야 한다면 저는 복귀할게요." 그 말은 본인이 써야 하는 1학기 세특까지 전부다 니가 쓰지 않는다면 복귀하여 니 자리를 빼앗으려 하니 일 계속하고 싶으면 네가 교감한테 가서 전부 한다고 말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법적으로나 교사의 책무성에서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갑질과 협박을 관리자에게 알렸지만 관리자는 내게 거짓말을 했다. 처음엔 그 샘이 휴직 중인데 복직 못하니 안심하고 일이나 계속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을 그만두더라도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리고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게 된 것은 내게 갑질한 사람이 휴직이 아니라 연가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복귀한데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단 것이다. 결국 관리자는 거짓말한 것이고 내가 따져 물으니 한 관리자는 어쩌라고 식의 태도를 보였으며 또 다른 관리자는 나의 심각한 분위기에 그 샘이 휴직이 아니라 휴가라는 걸 깜빡했다고 말했다.


내가 오열하고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해도 그 선생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선생은 임신휴가 중에 블로그에 '편법으로 연가 이용해서 명절떡값 받는 법'을 알리고 온갖 협찬을 받아가며 개인적 이익을 챙겼다. 이에 교육청은 묵인했고 교장, 교감은 그저 "그 정도는 응모권 당첨된 것과 같은 것이지, 개인적 이익이 아니다."고했다. 내게 갑질하고도 오히려 자기 잘못까지 덮여지는 그 사람을 보며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내가 그만둔다는 이야기에 아이들도 난리였다. 그 선생이 다시 오면 학교에 안 다니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 그 선생이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어학 통사론 용어를 사용하며 수업하고 질문을 했는데 답을 못하면 '실력이 없음 노력이라도 하라.'며 영어학원 안 다니냐고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없는 형편에도 영어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 나는 기도 차지 않았다.


관리자들은 고교학점제라는 어려운 업무를 하고 있던 날 붙잡았지만 내가 바란 최소한의 것인 사과조차 하게 하지 않았다. 관리자들이 그 선생에게 전화해서 사과하라고는 했지만 사과하지 않겠다고 하니 어쩌겠냐고 나보고 이해하라는 것이 그들이 관리자로서 보여준 모습이다. 심지어 한 관리자는 울며 나가겠다는 내게 "그럼 그 업무 할 수 있는 사람 주위에 있어요?"라고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들어가 버렸다.


믿었던 부장교사에게도 뒤통수를 당했다. 내게 갑질한 교사가 관리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기분 나쁠 줄 몰랐다며 '고교학점제 업무라도 도와드려야 하나 봐요.'라고 했다기에 내가 그렇게 미안하면 사과하고 말한 대로 업무도 사죄의 성의로 도와달라고 했다. 그걸 협상해 보겠다고 관리자가 다시 전화하니 말을 바꾸어 그 선생은 그렇게 못해주겠단다. 나도 그럼 그만두고 나간다 한 것인데, 부장은 '내겐 일을 안 하겠다 한 샘이나 갑질한 그 샘이나 똑같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처음 이 사건이 터졌을 땐 내 손을 잡고 위로해 주더니.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나중에 연가를 교묘히 이용해 명절떡값 받는 법을 그 선생에게 알려준 것도 부장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아이들을 위해 2학기 세특을 완성하여 일일이 확인시켜 주고 나왔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도 세특을 써줘야 하나 억울하고, 짧은 시간 안에 다 쓰려니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만족하면 그만이었다.


그러고 2024년이 되었다. 교원자격증 1급 승급을 무시험검증으로 받기 위해 대구교육청으로 갔을 때 또 일이 터졌다. 젊은 남자 공무원이 민원대에 있었는데 처음부터 서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기 저거 저거 이러더니 겨우 내가 서류를 찾아 적다가 이상하다 싶어 "이거 맞나요?"하고 다시 물어봤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거 말고 저거요."


그래서 다시 또 서류를 작성하는데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어 몇 번을 불러도 한 번을 쳐다보지 않았고, 계속 불러 드디어 날 봐주었을때 웃으며 이해 안 가는 것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책상에 샘플 붙어 있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민원을 보러 온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몇 번을 불러도 응대를 안해주니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도 알겠다 하고 다시 쓰는데 샘플을 봐도 모르는 것이 있어 불렀고 그는 이번에도 한 여섯 번쯤 부르자 날 봐주었다. 겨우 날 봐주었기에 얼른 질문을 했으나 정말 성의 없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그거 아니지 않으냐고 다시 물어보니 서류에 보면 다 적혀있단다. 그래서 서류에 안 적혀 있는 것 중 구비해야 할 게 있지 않느냐 되물으니 그럼 위에 장학사님 만나보고 오라는데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그렇게 부들부들 참으며 혼자 힘들게 서류를 작성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너무 서러웠다.


그러자 다른 공무원들이 먼저 다가와 무슨 일이냐 물었고 그 젊은 남자 공무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이 상황이 웃기다는 듯이 피식거리며 "기분 나쁘셨으면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거기서 더는 말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구교육청에서 1급 신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경북교육청으로 가겠습니다. 안동까지 가기 힘들어서 여기로 왔는데 실수한 것 같네요."하고 나와버렸다. 울어서 부끄럽기도 했고 그 공무원은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듯했기 때문이다.


몇 주 뒤에 겨우 안동에 있는 경북교육청까지 갔건만 담당자는 출장 중이었다. 그래서 일단 접수하러 왔다는 걸 알려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나와 남편은 인근에서 밥을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밥을 막 한술 뜨자마자 담당자 대신 옆 자리에서 비슷한 업무를 보시는 분이 전화가 왔다. 


특수교사 무시험 1급은 다른 교과랑 좀 다른 특성이 있어 설명드렸더니 그런 건 없다며 다짜고짜 나의 1급 신청을 못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다른 데서 다 알아보고 규정도 읽어보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일단 신청을 받아달라.’ 했더니 그런 법은 없다며 어디서 알아봤냐길래 대구교육청에서 이 업무 담당하는 장학사님께도 다 물어봤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럼 대구교육청 가서 신청하라는 것이다. 민원 업무를 보러 대구에서 안동까지 왔는데 다시 대구교육청으로 가라니.


내가 자신 있냐니까 자신 있다고, 다 걸 수 있냐니까 내가 왜 걸어야 하냐고 하시는데 그럼 다시 한번만 더 알아보고 전화 주시면 안 되냐 하니 안되니까 그렇게 알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곧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아까 설명한 걸 똑같이 말하더니, 그런 조건으로 1급 신청하러 온 거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까 이야기한 게 그거 아니냐 하니 그럼 민원대에 서류제출 하고 가라 하였다. 전화를 끊고 주위에 물어보니 내 말이 맞았던 모양이다. 사과는 없었다.


이렇게 되니 더 이상 분노를 참기 힘들어졌다. 그 뒤로도 2월 말까지 서류를 떼거나 해야 할 일이 생겨 행정을 하는 분들을 마주하면 조그만 것에도 참기가 힘들어졌고 꼭 행정 하는 분들이 아니라도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난 어릴 적 일본 만화 데스노트를 재밌게 봤다. 사신이 잃어버린 데스노트에 이름과 사인, 날짜등을 적으면 그대로 그 사람이 죽는다. 어릴 땐 정말 미운 사람이 있어도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싫다고 죽여버린다니. 실제로 손에 피만 안 묻혔다 뿐이지 그건 살인이나 마찬가지니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단순히 노트에 이름를 적는 것뿐인데?'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마음이 약해빠진 나로선 절대 진짜로 노트에 이름을 적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이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면 머릿속으로 데스노트를 그려놓고 이름을 적는 것이 낫지 않을까싶다. 응큼한 속내라 할지라도 화를 내고 나쁜 말을 하면 너무 찝찝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참는 것도 한계가 있고.


부디 데스노트가 필요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