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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Mar 27. 2024

개 목줄은 좀 하세요.

악마를 보았다.

개는 귀엽다. 나도 개를 보는 건 참 좋아한다. 귀여운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개도 엄연한 맹수이다. 개를 키우고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소신발언을 하고 싶다. 개는 사람이 아니다. 개의 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난 개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것은 아주 어릴 적부터 개에게 물린 적도 있고 나의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개에게 물려 광견병주사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도사견처럼 송아지만 한 개가 미친 듯이 쫓아오고 나는 살기 위해 신발이 벗겨져도 달려야 했다. 어릴 때 동네 떠돌이 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개 산책을 하느라 개를 수없이 데리고 나온다. 그것까진 좋다. 우리 언니도 시엄마도 모두 개를 키우고 가족처럼 생각하기에 나도 개를 산책시켜 준 적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공원이나 사람이 없는 한적한 도보에서 목줄을 푼다는 것이다. 


큰 개든 작은 개든 일단 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큰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개가 사랑스럽고 안쓰러워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면 마당이 있는 주택에 키우거나 개전용 운동장 같은 곳에 데리고 가 풀어놓으면 될 텐데. 너무 이기적이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말하겠지만, '개를 좀 풀어놓을 수도 있지. 개에도 견권이 있어. 개는 사랑스럽고 착해. 이 인정머리 없는 인간아.'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평소 개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내 친구가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한 산책 중에 맞은편에서 개가 다가올 때 아기를 감싸고 내 뒤로 바짝 붙어 따라오던 걸 지켜보며 역시 본능적으로 개가 맹수임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무서웠지만 그 개는 목줄을 하고 있었고 친구와 친구의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에 용감하게 앞서 나갔던 기억이 난다. 


개 마음을 우린 알 수 없다. 절대로. 아무리 주인이라 그 개를 잘 안 다하더라도 사람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는데 개의 마음은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오늘 일이 있었다.


퇴근하고 바로 산책을 다녀오던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맞은편 인도에서 우리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검은색 진돗개의 목줄을 풀었다. 신호등이 곧 빨간색으로 바뀌려는데도 난 건너가기가 힘들었다. 마치 그 개가 주인을 지키려는 본능에 나에게 달려들 것만 같아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건너가야 했다. 차에 치이는 것보단 개에게 물리는 게 낫겠지. 그렇게 겨우 길을 건너자마자 주인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개 목줄하세요."


난 당연히 아저씨가 개목줄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를 한대 칠 것처럼 보더니 그야말로 개무시를 하고 가버렸다. 그 와중에 개는 내쪽을 계속 쳐다보며 왔다 갔다 거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 그것도 살기가 느껴졌다. 


평소 사람 좋고 순하기로 유명한 나지만 큰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분노에 약하다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내기까지 참 많이 참아서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는데 한번 화를 내면 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척 이외에 내가 화내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화가 나면 날카로운 것을 치워야 한다.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고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가 가라앉아서 이성이 돌아왔을 땐 전혀 기억이 없다. 마치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그래서 절대 집 밖에서 화내지 않는다. 화가 날 것 같으면 빨리 집으로 돌아오거나 그 자리를 피한다.


오늘 그 아저씨 때문에 나는 이성을 잃을뻔했다. 끔찍한 살기를 느끼며 개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신 제멋대로 풀어놨으니, 죽던 살던 그건 당신이 개를 방치한 대가이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부들부들 거리며 나도 개를 노려봤다. 나의 엄청난 살기를 느꼈는지 개는 눈을 피하고 산책을 즐기기로 한 듯 보였다. 나도 이만 자리를 떠야 하는데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었다.


'아 안돼. 생명은 소중한 거야. 나도 다칠 수 있어.'

'아니, 저 경우 없는 주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어. 다칠 수 있겠지만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죽여버리겠어.' 

두 가지 마음이 격돌하며 내 안의 악마가 날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다 큰일이 날 것만 같아 재빨리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날 진정시키셨고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당연히 개목줄을 해야 하지만 그런 상식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으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안 그럼 네가 힘들다고 말하셨다. 그 말은 동감하지만 내 안의 악마는 계속 '지금이라도 돌아가. 돌아가서 끝장을 내버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에게 전활 걸어 미치겠으니 어떻게 좀 해달라는데, 남편도 제발 진정하고 집에 가서 물을 좀 마셔보자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겨우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도 전화를 해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진정이 안된다니 엄마도 안 물린 걸 감사히 여기고 쉬는 게 좋겠다고만 했다.


전화를 해봤자 뾰족한 수도 없고 지금 다시 돌아간들 그 파렴치한 주인도 못 찾을 테고 분해서 뜨거워진 몸을 발가벗은 체 침대에 누워 씩씩거리고만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다가 그거 완전 범죄고 인간도 아닌 캐릭터인데 그걸 이해하다니 나도 지금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진정이 되면서 내 안의 살기가 잠잠해졌다.

분노가 끝나자 허기와 피곤함 그리고 추위가 몰려왔다. 옷을 갖춰 입고 떡볶이나 시켜 먹었다.


선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 개를 사랑한다면 사람의 생명도 개의 생명도 지켜줄 목줄을 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누군가의 눈에는 케르베로스처럼 보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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