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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Mar 25. 2024

우리가 필요했다.

'범죄와의 전쟁'과 '이번생은 처음이라'의 공통점

"어디 최 씹니까?"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오는 대사다.

처음 나는 영화를 봤을 때 굳이 같은 집안사람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같은 최 씨면 뭐가 달라지나. 그냥 성씨만 같지 친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러나 놀랍게도 같은 성씨의 같은 집안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주인공들은 친해졌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우리라고 했다.'

이번생은 처음이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심쿵한 순간의 독백이다. 이 드라마를 보며 여주인공이 우리라는 한마디에 남자에게 홀리는 것은 너무 금사빠 아닌가 싶었다. 얼마 안 가 우리라 해놓고 선을 그어버리는 남자 주인공에게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걸 보고 역시 금사빠의 최후인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었다. 왜 그렇게 주인공이 우리라는 말에 감동했을까.

이제야 모든 걸 알게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소속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중고등학생 6년 동안 왕따였고 혼자 밥을 먹지 못해 점심시간마다 교실에 앉아 배를 쫄쫄 굶었다. 그래서 서른 중반인 지금까지도 내게 중고등학교 동창은 한 명밖에 없다. 그나마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결혼식 때나 서로 한 번씩 방문하였다. 그 친구는 수려한 외모와 친근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고 혼자인 나를 한 번씩 챙겨주었던 걸로 기억난다. 서로 연락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내가 결혼한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준 것이다. 꼭 내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정말 그 친구가 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왜인지 모르지만 나는 인기가 있었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아마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과생활을 하지도 않았는데 다들 "네가 00이구나? 반가워."라며 다가와주었다. 80명이 넘는 신입생 중 나를 알아준 것은 유일하게 오티도 참석하지 않고 과에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눈에 띈 것이리라.


솔직히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화려한 대학시절을 지나치며 소속감의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외로울 때나 시끌벅적할 때나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임용고시를 공부할 때마저 스터디를 하며 이 도서관 저 독서실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다 기간제교사를 하며 그 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교사로서 또 소속감을 가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난 항상 외로웠다는 것. 그리고 지금이 최고로 겉돌고 있는 시기라는 것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아니 사실 난 제대로 소속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중고등학생땐 왕따였고 대학 때도 과생활을 하지 않았고 임용준비 때도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은 임용을 붙어서 사라지고 나만 남는 그런 삶. 그런 것에 지쳐 진정한 소속감을 찾고자 입사한 학교 안에서도 기간제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임용된 교사들과의 다른 대우. 어떻게든 소속감이라는 줄을 미친 듯이 잡고 있었던 내가 비참하게 느껴진 것은 20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다.


20대 후반에서야 나는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든 내쳐질 학교에서 무슨 소속감이란 말인가. 그래도 친구들을 만나면 소속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숨통이 트였다. 같은 기간제샘들과 모임을 하며 회포를 풀었다.


하지만 지금, 난 사회적으로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물론 내 가정이 있어서 든든하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야 하고 나아가자마자 혼자다. 박사를 하게 되면서 직장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타대학원 출신이라 현재 함께 공부하는 석사 및 박사샘들과 일면식도 없다. 그들은 그들만의 친밀감이 있어 끈끈한데.. 심지어 교수님께도 나는 생뚱맞게 나타난 제자라 학부 때부터 알고 있으시던 다른 석사 및 박사샘들은 친근해하시는 반면 나는 조금 차갑게 대하신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친근한 제자로 다가갈 수 있으려나 싶다.


결혼을 하고 박사를 결심하면서 나는 내 친구들과 너무 멀리 가버렸다.


나에겐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 그는 서울에 거주 중이고 그렇게 대구에 남겨진 나와 10년째 멀리 떨어져 있어도 탄탄한 우정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내가 결혼을 하면서 너무 바빠졌고 친구에게 이전만큼 자주 연락할 수가 없다. 우리는 둘 다 정서적으로 힘들어하여 서로를 위로해 주었는데 친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정서적 문제를 대했었고 나는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해서 정서적 문제는 뒤로 미뤄두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항상 답을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힘들 때마다 연락해 도움을 청하곤 했다. 지금은 그 역할을 남편이 해주고 있어서 더 연락이 뜸해진 것도 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친구에 대한 우정으로 가득하다. 물리적 거리만 가까웠어도 수시로 친구에게 방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도 한 마당에 계속 친구에게만 힘듦을 토로한다면 친구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것이란 걸 알기에 더 연락을 안 하는 것도 있다. 친구도 아직 많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그럴수록 난 더 외로워져만 갔다.


그래서 나에게 제일 큰 소속감을 주었던 모임에 나갔다. 그러나 그 모임에 나가면 예전과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겐 모임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대학친구들 모임이고 하나는 남편과 나의 동료샘들 모임이다. 대학친구들 모임은 내가 가장 애정하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내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결혼에 친구들은 실망했다. 왜 여자들은 친구가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갑자기 결혼하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가. 내가 그런 케이스였다. 사실 난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귄 지 2달 만에 결혼하기로 하여서 친구들에게 알릴 기회가 없었다. 나의 성급한 결혼에 친구들은 부정적인 반응이었고 배신감도 느껴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박사를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보통 직장 내에서 있었던 어이없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박사를 하면서 더 이상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들 스트레스받는 일을 이야기할 때에도 다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니 상식선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박사를 하면서 상식밖의 일들을 많이 겪었다. 공부를 하면 일 년을 연달아 일할 수가 없었다.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 년이라도 고정직이 아닌 갑작스레 휴직이 된 자리에 투입이 되었는데 갑작스레 휴직이 된 자리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사람이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일을 겪으니 갑작스럽게 휴직을 하게 되는 건데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니 당연히 나도 그런 일을 겪는 것이었다. 그것도 짧은 계약기간으로 인해 일 년에 두세 번 이직을 했으니 두세 번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 자리임을 예상하지만 먹고 사려니 어쩔 수 없었다.


친구들의 성토자리에서 나도 한 번 끼이고 싶어 내가 겪은 설움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나를 불운의 아이콘처럼 여기거나 황당해하는 눈빛이었고 분위기는 싸해졌다. 내 이야기는 친구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비상식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라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친구들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준다 했지만 그 싸한 분위기에 나는 외계인 같은 존재가 되어 괜히 말해서 내 얼굴에 침만 뱉은 꼴이 되었다. 진라면 순한 맛을 먹는 자리에 마라탕 씨게 매운맛을 들고 간 격이었다.


한 두해 그런 기분을 느끼다 보니 어느샌가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진정한 친구라면 어떤 일에도 어떤 이야기에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공감해 줄 줄 알았는데. 각자 직장 생활하고 부부생활하면서 남을 그렇게까지 포용할 정도로 박애주의는 아니었던 것이다. 비난하는 마음이 아니라 천사이거나 웬만큼 죽고 못 사는 사이가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남편과 나의 동료모임은 나와 남편이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함께 아는 동료샘들이 생겨 참석 가능하게 되었다. 사실 그 모임은 남편의 임용합격 동기 모임인데 내가 남편과 함께 근무했던 동안 같은 학교에 남편의 임용 동기들이 반정도 있었다. 이 반과 내가 모르던 임용동기샘들 반이 모였다. 처음엔 학교 얘기를 하며 이질감을 별로 못 느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나는 또 할 말이 없어졌다.


특성화 공립학교의 임용 붙은 교사들의 문화와 분위기, 터부시 되는 주제 모두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주로 인문계 사립에서 기간제를 하던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더 이상 끼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전문용어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문화는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것이라 나는 함부로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내 친구들과 남편의 동료샘들 모임은 아직도 전부 잘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내가 친하게 지내는 무리이다. 그러나 나는 철저히 그 속에서도 외롭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우리이고 싶다. 남편과 부모형제가 주는 소속감이 제일 중요하긴 해도 사회생활이 우리의 인생에서 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세상에 나아갔을 때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나와 같은 느낌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우리. 그 우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서 끊임없이 욕심이 난다.


어차피 인생 혼자 사는 것이라 해도. 나는 우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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