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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06. 2024

우린, 돈 냈씨유

백패킹(태안 중막골 해변)

백패커는 텐트를 설치하는 장소에 따라서 돈을 내기도 하고, 내지 않기도 한다. 깊은 산속 정상부근에 설치를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돈을 내지 않지만 휴양림 야영장이나 오토 캠핑장에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공짜인 줄 알았다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 해변가 근처에서 종종 발생한다.


돈을 내기도 하고,
내지 않기도 한다.


이번 백패킹의 당초 계획은 충남 태안에 있는 산꼭대기에서 하는 정상박이었다. 새로 가입한 동호회에 올라온 '백화산 공지는 여러모로 나를 유혹했다. 우선 장거리가 아닌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고도차가 100미터 정도여서 박배낭 매고 20분 정도면 올라가는 짧은 거리였다. 거기다가 하루라도 빨리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참석 버튼을 순식간에 눌러버렸다.




삼삼오오 집합장소인 태을암에 도착했으나 혼잡한 주차상황에 당황했다. 한적하고 널따란 주차장을 기대했지만 방문차량들이 예상보다 많아서 북새통을 이뤘다. 느낌이 조금 싸했다. 과연 등산객들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정상데크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일행은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일단 정상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아니라 다를까 정상에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백화산 정상은 백패커들에서 공짜 숙박장소 이기는 하지만 왠지 다른 등산객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게 분명했다. 정상을 후다닥 둘러본 후에 운영진은 바로 플랜 B를 가동해서 태안 중막골 해변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내비게이션으로 '해랑해 카페'를 쳤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한 시간가량 달리기는 했지만 한적한 바닷가 박지를 본 순간 맘에 쏙 들었다.


바닷가 박지를 본 순간
맘에 쏙 들었다.



시간이 벌써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다 보니 쉘터나 타프 없이 바로 해변가 테이블로 모여 인근 칼국수 맛집에서 공수해 온 해물 칼국수를 시작으로 만찬이 시작되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커다란 양은냄비 속 칼국수는 꽃게반, 새우반이었다. 열 명의 회원들은 프로 백패커답게 각자 식기와 도구를 들고 거침없이 달려들어 후루루 쩝쩝,  순식간에 냄비 속 칼국수를 흡입하고 국물까지 솔드아웃 시켰다.


한쪽에선 싱싱한 대하를 찌고, 일부는 또 생으로 고추냉이를 발라 간장에 찍어먹는다. 역시, 싱싱한 해산물들을 보니 '여기가 서해가 맞긴 맞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위로 잘라낸 새우 대가리는 원형 철판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바삭하게 구워낸다.  그 향과 맛이 기가 막히다.


그렇게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차에 갑자기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관리비를 내라며 요구한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바로 수긍하고 요금을 지불했다. 그 시간 이후로 '우린, 돈 냈씨유'를 되새기며 더 당당하게 각자 준비해 간 음식을 지지고, 볶고, 튀기기를  반복했다.  바닷물에 흔들이는 일몰의 윤슬도 감상하고, 일몰을 배경으로 인생샷도 남기고, 화로대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보며 불멍을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추억을 쌓아갔다.


하나씩 하나씩 추억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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