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 Mar 18. 2023

4시 40분 퇴근,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야근이 사라지면,

시간이 생기면,

일감으로 꽉 찬 내 머리가 비워지고

글감으로 꽉 찰 거라 생각했다.


야근이 사라졌다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4시 40분 퇴근시간이 되어도 설레지 않는다.


머리도, 마음도 집으로 가는 발걸음도, 모두 무겁기만 하다.


갑자기 생긴 시간..

이런 날이 오면

신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겨우 힘을 내서 청소기를 돌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서 설거지를 하고선 잠에 드는 거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까지…


이쯤에서 계산기를 두들겨 본다.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을 얻었다.


학교가 깨끗하고 안전해졌다.

학생들은 웃는다

학부모는 만족해한다.

선생님들은 좋아한다.


교장선생님은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하고,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

실장님은 야근 없는 곳에서 이제 조금 편하게 일하라고~

옆자리 주무관은 누님 덕분에 학교생활 즐겁게 했다고~


인정받았다

칭찬받았다

보람을 느꼈다.

이것들을 마음에 품고,

작고 예쁜 근무지로 옮기게 되었다.


그럼 잃은 건 무엇일까?


체력이 소진되었다

마음이 약해졌다.

이건 쉬면 다시 강해지겠지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춤추지 않는다.

오카리나 위에서 손가락이 달리지 않는다.

이것도 연습하면 다시 움직이겠지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잃은 게 더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얻은 게 더 많다.

역시 글을 써야 되는구나.

내 삶은 글로 완성되는구나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다고 생각하며

4시 40분, 터벅터벅 집으로 향할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되었으니,

나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다고 생각하며,

 4시 40분, 글감 박자에 맞춰 집으로 향할 것이다.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피어 프레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