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사라지면,
시간이 생기면,
일감으로 꽉 찬 내 머리가 비워지고
글감으로 꽉 찰 거라 생각했다.
야근이 사라졌다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4시 40분 퇴근시간이 되어도 설레지 않는다.
머리도, 마음도 집으로 가는 발걸음도, 모두 무겁기만 하다.
갑자기 생긴 시간..
이런 날이 오면
신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겨우 힘을 내서 청소기를 돌리고
마지막 힘을 짜내서 설거지를 하고선 잠에 드는 거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까지…
이쯤에서 계산기를 두들겨 본다.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을 얻었다.
학교가 깨끗하고 안전해졌다.
학생들은 웃는다
학부모는 만족해한다.
선생님들은 좋아한다.
교장선생님은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하고,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
실장님은 야근 없는 곳에서 이제 조금 편하게 일하라고~
옆자리 주무관은 누님 덕분에 학교생활 즐겁게 했다고~
인정받았다
칭찬받았다
보람을 느꼈다.
이것들을 마음에 품고,
작고 예쁜 근무지로 옮기게 되었다.
그럼 잃은 건 무엇일까?
체력이 소진되었다
마음이 약해졌다.
이건 쉬면 다시 강해지겠지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춤추지 않는다.
오카리나 위에서 손가락이 달리지 않는다.
이것도 연습하면 다시 움직이겠지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잃은 게 더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얻은 게 더 많다.
역시 글을 써야 되는구나.
내 삶은 글로 완성되는구나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다고 생각하며
4시 40분, 터벅터벅 집으로 향할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되었으니,
나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다고 생각하며,
4시 40분, 글감 박자에 맞춰 집으로 향할 것이다.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