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 Sep 10. 2022

피어 프레셔

질투는 나의 힘


한 잔의 물을 온통 붉게 하기 위해서는 한 방울의 포도주로 충분하고, 어여쁜 여자들의 모임을 온통 어떤 기분으로 물들이기 위해서는, 더구나 남자가 하나밖에 없을 때는, 더 어여쁜 여자 하나가 뜻밖에 나타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파리의 노트르담중 일부이다.


한 방울의 포도주 같은 질투로 내 일상을 온통 물들인 적이 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인 것인데, 가까이 있기에 피할 수 없다. 이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압박, 경쟁을 피어 프레셔라 한다. 과연,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최근에 나를 피어프레셔한 사람들을 소개하련다.




옆자리 세끼군

몇 년 전 병설학교에서 근무했을 때였다. 옆자리 주무관은 나이도, 직급도, 업무도 거의 비슷했다. 뭐 굳이 다른 걸 뽑으라면 성별? 그리하야, 일본 애니메이션 옆자리 세끼군을 떠올리며 속으로 별명을 붙였다. 이노무세끼군을 봤나~ 하며…


그는 뭐든 나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나보다 정확히 하루 알잘딱깔쎈이었다. 같은 업무를 하는 나와 그는 언제나 비교대상이었다. ‘나보다 학교경력이 많아서겠지’ 라며 혼자 자기기만에 빠졌더랬다.


어느 날 너무나 급한 나머지 매뉴얼을 찾지 않고 옆자리 세끼군에게 질문을 했다. 평소에 알잘딱깔센 다운 친절함과 센스가 그날 그에게 임하지 않았더랬다. 필히 그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리라. 그는 시크함에 가벼운 경멸을 담아 나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나야 모르지’


이노무옆자리세끼군 같으니라고… 알면서 이노무세끼군’





가까운 哲學徒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서양철학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강의 중간에 꼭 문답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냥 철학이라는 주제로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고 부담이었다. 그 시간에 질문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내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철학을 10년 공부했다는 그 어린노무 세끼군은 순식간에 나를 물들였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소감을 나눌 때였다.  나는 딱히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서 소크라테스가 델파이 신탁을 통해 내린 결론을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안다’ 고 했는데, 저도 얼마 전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가 상처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뮤지컬에 대한… 어쩌구 저쩌구…”


그는 갑자기 내가 말하는 중간에 나의 말을 잘랐다. “그게 아니고요. 무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소크라테스 변명의 소감을 말하라구요” 그는 나를 다그쳤다. 나는 스스로 전체적인 소감을 한 번에 이야기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환멸과 그에 대한 질투의 화신이 되었다.



의식의 세례를 받은 사회선생님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영국 신사처럼 젠틀하고 멋진 분이 계시다. 나는 그가 하는 모든 걸 따라 하고 있다. 그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회선생님이다. 사회선생님 답게 그의 머릿속에는 사회에 대한 의식이 있다. 그가 보내준 짧을 글을 읽고 그에게 내린 신의 축복을 보았다. 


나는 신의 벌을 받아 이렇게 의식이 없는 걸까. 의식이 없으니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만, 나는 나에게 없고 그에게 있는 의식을 질투했다. 그러나 어디, 그것이 질투한다고 생기는 것인가.


요즘 배우고 있는 기타도 그분의 영향이 크다. 그는 리라를 든 오르페우스 처럼 기타를 연주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며 거짓말을 늘어놓지만, 나는 사회선생님처럼 기타를 치고 싶어서 기타를 배우고 있다.




질투는 나의 힘


알고 보니 나도 그들을 피어 프레셔 하고 있다.

사회선생님은 나의 젊음을 부러워하며

옆자리 세끼군은 나의 다양한 취미를 부러워했다.

가까운 철학도는 나의 일본어 실력을 부러워했다.

그들도 나를 부러워할 때가 있다


일단 압력을 느껴라. 

그들이 작은 바늘로 내 손등을 콕콕 찌르는 고통이 온몸을 파고든다.  그 압력으로 홍조가 내 볼과 눈에 가득 찬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그것에 감사한다. 감사는 나를 겸손케 한다. 이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된다.


나에게 압력을 준 그를 통해 배워라.

옆자리 세끼군에게 성실함을 배웠다. 알고 보니 그는 항상 나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한다. 나는 비겁하게도 그가 뭔가 나보다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성실할 생각도 없으면서 뭐든지 빨리하는 그와 나를 저울질했다. 


가까운 철학도에게 철학 공부 스킬을 배웠다. 알고 보니 철학이란 건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빨리빨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면서 뼛속까지 한국인임을 느꼈다. 세상에 어떤 공부도 빨리  되는 것은 없는데 철학 공부를 속성으로 해치워버리려 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회 선생님은 시간의 세례를 받으셨다.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하고 연습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을 다했으니, 이제 내가 할 것은 질투는 여기까지만 하고 연습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버릴 건 버려라. 그들의 모든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나를 부러워함을 잊지 말자.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내가 더 성장해 있음을 상상해본다. 물론 그들과 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같이 또 따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