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의 칼 맞은 것 같은 고통
검은 신발 한 짝
검은 치모
검은 머리카락
검은 비둘기
검은 바지와 모자,
검은 티셔츠
이 검은 것들에는 피가 보이지 않는다.
하얀 셔츠
하얀 침대시트
하얀 베개
이 하얀 것들에는 피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두 마리가 입에 플래카드를 물고선 날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림의 상황은 평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액자 틀까지도 핏자국이 선명하다. 피 묻은 손가락으로 액자를 잡았던 건가. 피가 튀기는 현장에 액자가 놓여서 피가 튀긴건가. 잭슨폴락이 물감을 흘리거나 끼얹고, 튀기는 그림을 그렸다면, 이 화가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잭슨폴락처럼, 자신의 몸 전체를 그림으로 그려댄 것 같다.
이 그림의 제목은 Unos cuantos piquetitos 스페인어로 '칼로 몇 번 찔렀을 뿐'이다. 또는 '칼로 몇 번 가볍게 찌르기' 이렇게 해석된다. 이 그림은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가 1935년에 그린 그림이다. 그해 멕시코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질투에 눈이 먼 한 남성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칼로 난도질한 일이다. 재판과정에서 그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단지 몇 번 질렀을 뿐"
이 말을 듣고 멕시코의 많은 사람이 분개했다. 프리다 칼로는 이 사건에 영감을 얻어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프리다 칼로는 어떤 고통이 있었기에..선혈이 낭자한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림 감상은 그림 자체보다는 작가를 알아가는 맛에 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작고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Unos cuantos piquetitos(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을 그린 프리다 칼로이고, 코끼리처럼 발이 큰 남자가 남편 디에고 리베라이다.
디에고는 멕시코의 국민화가로 추앙받는 정치인이자, 예술가이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프리다는 남편의 작품활동을 조용히 도와주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작은 두 발로 땅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어떻게 보면 뒤뚱거리는 모습이다. 프리다의 작고 가는 발이 마치 비둘기의 발 같다.
사람들은 프리다와 디에고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코끼리와 비둘기 같다고 비유했다. 그래서인지 프리다의 그림에는 비둘기가 많이 등장한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두 번의 큰 사고를 당했는데,
첫 번째 사고는 경전철과 충돌한 것이고,
두 번째 사고는 디에고와 만난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남편을 만난 것이 사고라고 말한다. 디에고는 프리다보다 21살 연상이었고, 결혼 전 이미 두 번 이혼한 상태였다. 게다가 소문난 바람둥이였고,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도 불륜을 저질렀다. 이 정도면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고통과 배신감에 그린 그림이 바로 Unos cuantos piquetitos(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다.
디에고 입장에서는 단지 몇 번 찔렀을 뿐이리라. 디에고는 프리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을 정도니...
나는 이상하게도 한 여인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 많은 상처를 주고 싶었다.
프리다는 이런 나의 역겨운 성격으로 인한 희생양 중에 가장 대표적인 여인일 뿐이었다
디에고의 여성편력으로 프리다는 이혼하게 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재결합한다. 프리다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디에고는 하나의 우주였다. 우주가 아무리 나를 아프게 해도 우주를 떠나서 살 수는 없다"
지구를 떠나 안드로메다로 갈 수는 있지만, 우주를 떠나서는 살수 없는 노릇이다. 자신에게 상처만 준 디에고를 이렇게나 사랑했다. 아마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으리라. 죽어서도 이 부부는 멕시코 500페소 앞뒷면에 나란히 하며 함께 있다.
다시 그림을 보게 된다.
검은 신발은 자신의 불편한 다리를
검은 치모는 유산한지 얼마 안 된 슬픔을
검은 비둘기는 추락하는 듯한 불안감을
검은 바지는 프리다에게 고통을 주는 디에고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녀는 이 남자를 사랑했고, 그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림은 온통 고통의 피로 물들어 있지만 피 묻지 않은 하얀 비둘기가 있다. 그 비둘기는 날아간다. 아마도 이 모든 고통이 끝나는 그 순간, 평화를 맛보는 그곳, 그날을 향해...
https://www.youtube.com/watch?v=TGW2rJYocrw&t=163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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