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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Mar 19. 2021

저 나무가 최제우다

1860년 최제우, 동학 창시

삼국시대의 토성인 대구 달성은 마치 바다의 작은 섬처럼 도회지 속에서 외딴 원형을 지키고 있다. 1905년 공원이 된 후 여러 번 다듬어지고 일제에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참형을 당한 지 100년이 지난 196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최제우 동상이 들어섰다. 


달성공원이 사적 제62호로 지정된 지 1년 만의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곳은 공원이자 동물원이며 또 사적지로 뒤엉킨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상에 이르는 좁은 길은 키 큰 향나무들이 에워싸고 있어 그나마 걸맞지 않은 동물원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가려준다. 그 속 팔각형 바닥의 3단 기층에 궁을장을 크게 새긴 석판을 각지게 두르고 그 속에 원형 기단을 세워서 등신대 청동상을 올렸다. 상은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다. 한울의 덕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모습인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보여주려는 듯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넌지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대구 달성공원,「대신사 수운 최제우 상」

멀리 경주 용담정의 또 다른 최제우 상은 강변하듯 오른손을 치켜들었지만, 여기 달성의 최제우 상은 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미소를 머금은 듯 그러면서도 표정은 단호하다. 호응하는 사람의 무리처럼 주변 향나무가 환호하는 듯하다. 뭉텅뭉텅 가지가 넘실거린다. 


이즈음 되니 뒤편의 조류 우리의 새똥 냄새도 향나무의 일본산 시비도 잊게 된다. 여기에서는 나무와 하늘, 그리고 상이 함께 할 뿐이다.  

   

동학혁명의 사상적 틀을 세운 구도자, 최제우는 비록 민중의 시민의식을 불러일으킨 동학을 처음 주장하였으나, 나이 겨우 마흔 하나에 순교하였다. 


안내문은 주장한다, …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 사상과 시천주 신앙으로 만민의 평등, 인간의 존엄성, 보국안민의 큰 뜻을 펴 나가던 중 당시 위정자들이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사교로 지목, 포덕 5년(서기 1864년) 3월 10일 좌도 난정률로 참형을 당하였다. 그 후 동학의 후예들은 보국안민, 포덕 천하, 광제창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갑오 동학 혁명운동, 갑진 개혁 운동, 기미독립운동 및 신문화운동 등을 통하여 이 나라 이 겨레의 활로를 열어왔다.” 


우리 근대 개혁 운동의 어둑한 새벽이었던 것일까.     

대구 달성공원의 향나무

이곳 달성의 최제우 기념 풍경은 교조의 형상을 갖춘 입상 중심이다. 건립 57년. 세월의 바람을 함께 하여 자질구레한 겉치레는 다 털어내고 씻겼으니 부분 부분 청록빛이 남아있다. 예스럽다.

  

숭배와 존경을 이끄는 종교적 형식으로서는 비교적 평이하다. 아직도 여기 최제우 상을 통해 가장 동학다운 이미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동학만의 기념 형식이 아쉽다. 과연 이 기념상은 동학과 그 창시자 최제우를 기리는 데 충분한가? 자리 탓인지. 그렇다면, 저기 경주로 가보자.     

경주 용담정,「대신사 수운 최제우 상」

천도교의 본산인 경주 용담정의 최제우 상은 달성 것보다 24년 후에야 건립되었다. 4m나 되는 좌대 위 동상은 거의 2배 등신대이다. 머리를 치켜들고 올려다보는데 어둑하다. 배경 하늘 덕이다.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며 왼손은 책을 든 인내천 사상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굽어보는 인상이 꽤 교훈적이다. 숭배를 요구하는 형상이다. 


좌대 비문은 한탄한다, “ … 스스로 서지 못하고야 강산의 주인 구실 어찌하며, 스스로 믿지 못하고야 남의 신의 바랄쏜가. 급급한 세상 사람 선각자를 몰랐어라. …” 

대구 반월당,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이곳 기념 풍경은 역시 교조 상 중심이다. 천도교의 성지 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으니, 분위기야 훨씬 고즈넉하다. 그런데도 아쉽다. 높고 큰 부담감 탓인지. 혹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제스처 탓인지. 아니 조금 냉정한 표정 탓인지….     


다시 대구 도심으로 오면, 중구 현대백화점 앞 인도 가장자리에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 비가 있다. 옛 관덕정 부근으로 역사적인 순도 지라 한다. 순도비는 너비 1.8m, 깊이 0.9m 화강석 기단부에 높이 1.3m의 오석으로 만들었다. 검은 바탕에 천도교의 상징 깃발인 붉은 궁을장이 선명하다. 아무런 경계도 없다. 단정하다. 순도비 형태를 이렇게도 만들 수 있나 싶다. 


순도라 하면, 보통사람에게는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인가. 이렇듯 여기 기념 풍경은 그저 일상 속에 묻혀 더불어 있을 뿐이다.    


근처 사연이 깊은 대구의 종로초등학교, 이곳은 옛 경상감영 감옥 터이다. 「선비나무 별명을 지닌 회화나무는 주변을 압도하듯 운동장을 지키고 섰다. 수령이 400년 정도이며 나무 높이가 약 17m에 그 폭이 2.8m 정도. 수려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최제우 나무의 줄기 중간 잘려나간 가지 모양새가 마치 고개 숙인 최제우의 형상 같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땅을 내려다보는 자세인가.


괴로워 보인다. 꺾인 옆 줄기 부분에 메꾸어진 시멘트 마감은 잘린 두 팔 자리만 같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그 형상이 인상적이다. 뛰노는 어린이들은 무심하다. 안내문에 의하면, “억울하게 희생된 그의 감옥생활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생각되어 「최제우 나무」라고 이름하였다” 한다.      

대구 종로초등학교, 「최제우 나무」

최제우 나무의 실루엣이 뚜렷하다. 참형을 앞두고 번뇌하는 듯 고개 숙인 구도자 최제우의 모습인가. 우연인 줄 알면서도 믿고 싶고, 신비롭다 못해 어떤 메시지로 느끼게 된다. 과연 설명대로 160여 년 전 감옥 마당에 그늘이라도 주었을까. 그래서 형장으로 끌려나가다가 얼핏 나무 둥지에 기대어서 잠시나마 한풀이를 하였을까. 어느덧 이 회화나무는 최제우 모습을 띠게 된 것인지. 자연현상일 뿐인데, 뜻이 얽힌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기대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이런저런 기념상이나 기념비보다 저 나무가 더 감동을 주는 기념 풍경 아닌가!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대신사 수운 최제우 상: 1964년 3월 21일 건립,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 공원로 35 달성공원, 글: 백종흠, 글씨: 손제형, 조각: 윤호중

2. 대신사 수운 최제우 상: 1988년 건립,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용담정, 1971년 건립 유허비 제자: 박정희, 글: 리선근, 글씨: 최덕신, 각자: 한동식, 조각: 문정화

3. 최제우 나무: 2003년 1월 30일 보호수 지정,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 길 49 대구 종로초등학교 교정

4.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 비: 2017년 5월 26일 건립,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37-44, 제작: 대구미술, 대한 석물, 감수: 김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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