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대 Mar 18. 2021

높이 경쟁

한국에서 가장 높은 기념탑 열 곳의 풍경

지난 60여 년 동안 숱하게 세워진 기념탑 중 어느 것이 얼마나 높을까?      


높은 탑은 우러러봐야 하니,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높고 큰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상대적 스케일은 크기에 관한 설계적 개념이다. 사물의 크기를 재거나 가늠하는 손쉬운 기준은 자신의 몸이다. 나보다 크면 압도당하고, 작으면 만만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적 척도(human scale)라는 용어도 생겼다.     


따라서 거대하게 높은 경우를 기념비적 스케일(monumental scale)로 간주한다. 달리 보면, 비인간적인 스케일이다. 비인간적임에도 기념탑은 높게 세우기 마련이다.


제일 높은 기념탑 열 곳을 살펴보자. 낮은 순서대로.



10. 31m, 서울 현충탑

서울 현충탑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상징한다. 탑신이 동·서·남·북 4방향을 수호하는 의미를 네 갈래다. 아래에 위패 봉안관 입구 앞 헌사는 다짐을 기리고 있다. 좌우로 동상은 물론 부조벽이 펼쳐졌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탑신은 군더더기가 없이 단정하다. 솟아오름을 느낄만하다. 상대적으로 더 높게 느껴진다.



9. 33m, 88 올림픽 고속도로 준공기념탑

88 올림픽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

차창을 통해 멀리 보이는 자연경관 속의 예리한 칼 같은 탑이다. 그런데 다가가니 의외로 화려하다.


탑신이 장막을 치듯 휘돌아 오른다. 부조는 도로건설 역군의 활약상에 민속놀이의 흥겨움까지 새겼다. 조금 기운 탑과 청동 조각상이 역동적으로 방향성을 연출한다. 오히려 주변이 스산하다.



8. 39m, 학생 독립운동기념탑

광주 학생독립운동 기념탑

멀리서 보면 마치 큰 횃불 형상이다. 군중처럼 크고 작은 24 탑신들이 모여 하나의 큰 “선열들의 의지”를 상징하였다. 탑의 숲 속을 거닐며 섞이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참여하는 듯 함께 하고자 했다고 한다.


앞뒤 좌우 사실적 표현의 청동 군상과 부조가 더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큰 조합이 이룬 대신에 탑 높이를 실감하기 어렵다.



7. 40m, 5·18 민중항쟁 추모탑

광주 5·18 민중항쟁 추모탑

마치 합장하듯 기도하는 듯하다. 아니 소중한 그 무언가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아 올리는 모습 같다. 두 탑신의 이음 방식이 친근하다. 아래는 거칠고 위로 갈수록 다듬어졌다. 상승감과 안정감을 준다.


좌우의 무장항쟁 군상과 대동세상 군상의 청록빛 세부 형상이 강렬하다.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부조 또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6. 40m, 수출산업의 탑

구미 수출산업의 탑

기단부를 이루는 여러 갈래의 곡면이 점차 중심으로 모아 매듭을 지나 곧장 수직선을 이룬다. 탑신의 홈 덕에 더욱 높아 보인다. 아래는 크고 안정되어 상부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탑신만큼은 시가지에서 호젓할 정도다. 구미 IC에서도 가늘지만 흰 기둥으로 보인다.      



5. 43m, 대전현충탑

대전 현충탑

동향의 탑은 "오른쪽(북)은 애국, 왼쪽(남)은 애족, 뒤쪽(서)은 호국"으로 의미를 주고, 이 3갈래를 모아 세웠다. 탑신도 그대로 3갈래인데, "첨성대(전통 과거 문화)와 태양(현재 문화)과 인공위성(미래 문화)"을 상징하는 청동 조각물로 가득하다. 정면 기단부 위에 “승리의 영광 상”이 극적이다.


헌사는 서울 현충탑의 그것과 같다. 탑은 장식과 수사가 풍부하니, 화려하다.



4. 45m, 항일독립운동기념탑

항일독립운동기념탑

오벨리스크 형태의 변형이다. 탑신이 네 귀로 각져서 음영의 효과가 나고, 좁아지며 수직성이 강조된다. 위쪽에 “금강석 형태”는 강인한 독립정신을 표현하였다. 기단부도 간단명료하다. 흔한 동상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교나 장식이 없고, 단순미에 견고한 인상을 준다.



3. 46m, 순직 선원위령탑

부산 순직 선원 위령탑

오각형 갈래의 기단부는 거대한 스크루 형상을 이루고, 그 자체 조형 벽이 되어 풍랑과 선원의 여러 이야기를 새겼다. 이에 고정된 축 같이 솟은 탑신은 점차 작아지는데, 홈이 파여 더 가늘게 보인다.


헌시, “… 풍랑 멈추는 바다의 수호신이 되어/ 거칠고 아득한 먼바다/ 길을 이끄는 향도자가 되어 주소서” 저 멀리 부산 앞바다를 향하고 있다.



2. 51.3m, 겨레의 탑

독립기념관 겨레의 탑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영원불멸하게 웅비하는 한민족의 기상과 자주와 독립, 통일과 번영에의 의지를 나타내고자 했다. 두 탑신은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개 같기도 하고 또 항해하는 돛 같기도 하다.


멀리 또 다가가서 보기에 따라 모습이 여럿이 된다. 게다가 빛의 방향에 따라  변한다. 바닥과 앞뒤에 여러 전통문양과 상징이 보인다.


드넓은 이곳에서 우리 의지와 열정을 마음껏 활짝 펼친 듯하다.          



1. 70m, 부산 충혼탑

부산 충혼탑

제일 높다. 부산역에서도 보인다. 구봉산 능선 끝자락에 있으니, 다가갈수록 모습이 바뀐다.


아래에 작으나 굽이치듯 곡면의 해자가 또 하나의 경계를 이루었다. 그 물속에서 판벽 같은 9개의 열주가 높이 올라 하나의 원형 테두리에 엮였다. 이 열주 아홉은 경주 "황룡사 9층 석탑의 천지 우주 사상"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상륜부는 여러 요소를 갖추어 섬세하게 정점을 이루고 있다. 전통 형식을 느낄 수 있다. 창의적 계승인가. 다만 큰 틀을 이루니, 실재 높이를 느끼기 어렵다. 건축적이다.


중앙부에 반원형 돔의 영령실을 품고 있다. 정면의 5인 군상의 청록빛이 강렬하다.  


“장엄한 위용으로 호국영령들에게 마치 향토의 수호신이 되시어 부산의 푸른 앞바다를 굽어보고 계신 듯한 위엄이 넘치는 조형물”을 의도하였다.

부산 충혼탑 부분

50년 기간 동안 건립된 높은 기념탑 10곳은 특별한 추세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형상이 꽤 차이 난다. 열 중에서 다섯이 현충과 위령 기능이다.

다들 높게 그리고 독특하게 만들려 했다. 대부분 기념비적 스케일 기법이 적용되었다. 주최 측의 바람 때문인가.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지. 혹은 그때의 상황 탓일지도.  

 

이 시대 드높은 건축물이 수두룩하다. 높이 지향의 기념 형식을 재고할 시대가 아닌가.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서울 현충탑: 1967년 10월 1일 제막,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국립 서울현충원, 글씨: 박정희, 헌시: 이은상, 설계 조각: 최기원, 내부 조형: 이일영

2. 구미 수출산업의 탑: 1976년 9월 5일 건립, 경상북도 구미시 광평동 수출탑 로터리, 휘호: 박정희, 제작: □□□

3. 순직 선원위령탑: 1979년 4월 12일 건립,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태종로 793번 길 일원, 시: 이은상, 휘호; 박정희, 글씨: 김기승, 설계: 정환호, 조각: 이일영, 시공: 주식회사 우신

4. 부산 충혼탑: 1983년 8월 15일 건립,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산 63-6, 설계: 김중업, 글: 이주홍, 글씨: 한형석, 주관: 충혼탑건립추진위원회, 시공: 현대건설, 건립, 명각: 장상만, 5인 군상 조각: 최기원, 기증: 고려개발(주), 한보주택(주), 한신공영(주), 건립 헌납: 경남기업, 공영토건, 남광토건, 동아건설산업, 롯데건설, 삼성종합, 삼환기업, 코오롱건설, 한국건업, 한일개발, 현대건설

5. 88 올림픽 고속도로 준공기념탑: 1984년 6월 27일 건립,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 446-6, 지리산 휴게소 대구 방향, 제자: 전두환, 조각: □□□

6. 대전현충탑: 1985년 11월 13일 건립,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휘호: 전두환, 작가: 이일영

7. 겨레의 탑: 1987년 8월 15일 건립,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 관로 1, 설계: 한도룡

8. 5·18 민중항쟁 추모탑: 1997년 5월 18일 건립,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 34번지 일원, 추모탑 명 글: 송기숙, 글씨: 김승남, 헌시: 김준태, 글씨: 정광주, 5.18 묘지 준공 기념비 헌시: 문병란, 글씨: 오명섭, 제작: 나상욱 팀

9. 학생 독립운동기념탑: 2005년 11월 30일 건립, 광주광역시 서구 학생 독립로 30, 제작: □□□

10. 항일독립운동기념탑: 2006년 6월 15일 건립,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225, 제작: □□□

작가의 이전글 민족 저항의 되울림 62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