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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Jun 10. 2021

아! 안중근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기념 풍경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기리고 있는가?

그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제에 맞선 의로운 행동으로  나이 서른 하나에 목숨을 바쳤다.

 

국가보훈처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종교계, 안씨 문중, 특정 단체, 그리고 민간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체에서 동상, 추모비, 기념관을 세워 기념하고 있다.


이에 먼저 짚어볼 것은, 안중근 의사의 기념에 있어서 “의” 즉 올바른 길을 간 그의 이미지를 어떻게 재현하고 있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기림 이미지는 우리에게 심오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이 재현에 있어서 어떤 미학을 추구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과연 바람직한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두드러진 몇 기념지를 조성 순서대로 찾아보자.



1.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 가묘

효창공원 녹지 속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등 삼의사 묘역에 이어서 자리하였다.

그런데 가묘를 조성한 지 75년 만에 묘비를 세웠다.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의 안중근 의사 가묘(맨 좌측)

가묘, 즉 임시 묘지는 안타까운 미완 그 자체를 기리는 대상으로 삼는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기념지 아닌가. 모시지 못하는 가운데 그래도 실낱 같은 희망을 품은 묘소이다.

 

그런데 기존 묘소와 차별 없는 비를 세우면 형식이 완료된 듯 보인다. 마무리되었다는 것인지?

의례의 형식이나 절차의 적절함 여부를 떠나, 뭔가 아쉽다.



2. 장흥군 해동사, 안중근 의사 사당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신 국내 최초 유일한 사당이다. 1955년 10월 27일 전남 장흥군 만수사 죽산 안씨 사당 부지 내에 조성되었다가, 2000년 순국 90주년을 맞아 신축하였다.


순흥 안 씨인 안중근 의사를 위해 죽산 안 씨 문중이 나서서 봉안하였으며, 추모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비추는 곳”이라는 뜻의 “해동명월(海東明月)” 휘호를 지었다.

해동사 안중근 의사 사당 전경

장흥군 용두산 수지렁골 안에 여러 골이 만나는 막다른 곳에 자리한 사당은 조촐하다.

앞이 트인 언저리에 낮은 담을 둘러 영역성을 확보했다. 작은 경내이나 비탈지니 단을 주어 위쪽에 사당을 모셨다. 위상을 높인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주된 자리가 아니다. 별당 같다고나 할까. 부득이할 뿐.


사당 건축은 전통적인 형태로 비교적 평이하나, 문짝의 태극 문양이 유별나다. 내부에는 영정과 위패를 중심으로 벽마다 “멈춰있는 시계”, 액자, 사진 등 여러 전시물이 가득하다. 굳이 이렇게 연출해야 하는지.


사당은 기림 형식의 대표적인 장소이다. 그 중요한 조건은 성스러움의 확보라 하겠다.

먼저 속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격을 지녀서 깨끗이 정리하고 질서를 갖추면 된다. 굳이 거창할 필요도 없다.

해동사 사당, 해동명월 현판과 영정이 보인다.

텅 빈 아래 마당에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전시대가 홀로 서 있다. 그 형식은 전혀 어울리지 않으나, 그래도 내용 자체는 다시 느끼게 한다.


어머니가 안중근에게 쓴 마지막 편지:


“장한 아들아 보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옮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그 어머니에 그 아들…. 그 의연함!


그런데 바깥은 안중근 의사 추모공간 조성사업의 하나로. 진입도로와 주차장 공사가 한창이다. 더하여 추모 역사관, 메모리얼 파크 등이 계획되어있다. 그런데 “관광 개발”이라는 단서를 달아 두었다.

결국, 이곳조차도 번잡한 관광지로 바뀌는가?     



3. 장성군 육군 상무대, 의사 안중근 동상

우리나라 최초의 안중근 동상이다. 군부대 정문 주차장의 녹지대, 강감찬 장군 상과 나란히 섰다. 진입도로에서 벗어나 있으니, 중심 자리는 아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1959년 처음 서울 숭의학원 정문 앞에 건립되었다가, 1967년 4월 서울 남산공원으로 이전되었다. 그 후 2010년 광주를 거쳐 전남 장성으로 상무대가 옮겨가면서 이전 설치된 것이다.     


그런데 현지의 안내문은 1973년 3월 5일 건립하여 현충 시설로 2006년 11월 9일 등록되었다 한다. 기단 이면의 헌시도 1973년 3월 5일 이은상이 짓고, 사령관 육군 중장 송호림이 세운 것으로 새겨져 있다. 명칭도 “안중근 장군 기념비”로서 기단의 그것과 다르다.


어느 것이 맞는지? 안내문을 더 믿어야 하겠지만, 뭔가 헷갈린다. 고증이 필요하다.

육군 상무대 강감찬 장군 상과 의사 안중근 상

안의사 동상 찬, 이은상:

“조국이 기울어 갈 제

정기를 세우신 이여

역사의 파도 위에

산 같이 우뚝한 이여

해 달도 길을 멈추고

다시 굽어보도다.”        

전남 장성 상무대, 안중근 장군 기념비(의사 안중근 상)

높이 약 3.2m의 기단 위에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자세이다. 두루마기 양복에 넥타이까지. 시비가 될만하다.

그래도 생각하기에 따라, 모든 것이 끝난 뒤 안중근 의사가 정장 차림으로 어떤 경지에 드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예우라 할지. 그러나 그런 상상을 할지언정, 여전히 분위기는 우울하고 표정은 너무 어둡다.


더하여 이전 사유는, 이 동상은 작가 김경승의 친일 시비, 태극기와 국기 봉과 복식 문제, 게다가 안전진단의 노후화 판정 때문이라 한다.


만일 기록대로 부적절하여 치워 진 것이 사실이라면?

어떠하든, 일반인에게는 눈에 띄지 않고 이렇게 군부대 내에 자리하는 것은 무방하다는 것인지?

만일 “미술 역사박물관”이라도 있어 보관된다면 타당하리라.



4. 광주 중외공원, 대한 의사 안중근 숭모비

1961년 광복절에 광주공원에 최초 건립되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다. 숭모비 좌대를 새로 건립하는 안중근 동상의 좌대로 쓰려고 해체했다가 본체 비를 분실한 것이다. 이후 25년 만에 나주의 한 석재공장에서 우연히 발견, 회수하게 된다. 2019년에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새긴 구절은 그대로이다. 

광주 중외공원, 대한 의사 안중근 숭모비

“… 길이 만세에 알려 두었으니 아! 거룩하기도 하다. … 우리들이 왜놈에서 벗어난 것이 사실 의사의 덕택이니 대한 천만세에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 이 비석을 세우는 일은 전남 유림으로부터 시작되어 전국이 호응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     


다만 복원했다지만, 원래 모습인지 의아스럽다.

비신과 좌대와 조화롭지 못하다. 두 부분이 이질적이다. 담직한 사각 오석 기둥과 팔각 화강석 좌대의 차이인지.

다행히 크지 않아 친밀감을 준다.

 

전남지방에서 사당에 이어 숭모비를 먼저 세운 의의가 크다.



5. 숭의 여자대학교, 안중근 의사 상

숭의여자대학교, 안중근 의사 상

첫 동상을 치운 후 남산공원에 세워진 두 번째 동상인데, 이 또한 김경승이 참여하였다. 의아하다.


상황 설정과 자세와 표정까지도 처음과 비슷하다. 복장이나 태극기 봉 등의 소품 시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가의 집념으로 이해해야 할지?

그러나 무려 38년 후 이 동상 또한 최초 동상이 세워졌던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조형벽 형식을 제대로 갖추었다.



6. 서울 남산 안의사 광장, 유묵 비림

그야말로 비석의 숲이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말씀과 유언을 돌에 새겨 안의사 광장의 녹지에 가득 채웠다. “의거의 이유”, “최후의 유언” 등 모두 22. 크고 작은 제각각 형태를 지닌 비석이다.


산재한 비석은 그 형상이나 색채, 질감 등이 너무 여러 가지라, 전체로서 어울림은 부족하다. 배치의 질서를 찾으려 하나 쉽지 않다. 그나마 큰 나무들이 품어주어 다행이다.

서울 남산 안의사 광장의 유묵비림

바위에 새겨 “영원히” 남기려는 아날로그적 발상 아닌가. 자칫 애물이 될지?

현대에도 남아있는 우리 기념 문화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7. 광주 중외공원, 안중근 의사 상

광주 중외공원, 안중근 의사 상

서울 못지않게 전라도에서 기념사업이 활발했으니, 도민의 인식에 앞서 안씨 문중의 선도 역할이 컸다.

사당, 숭모비에 이어 이 동상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95년 중외공원 안쪽 언덕 위에 자리하였다.


거사 장면이다. 그런데 고증이 부족했던 탓인지, 권총의 오류가 아쉽다. 인물도 다소 생소하다.

문제의 기단은 2단으로 구성되고 8각과 곡선이 뒤섞였다. 너무 크기는 하다만, 장식적이면서도 상 자체를 보위하는 효과는 크다. 결국 높게 올려다 보고 숭배하는 대상이 된다. 진부한 기념동상 방식이다.





8. 전쟁기념관, 안중근 흉상

전쟁기념관 전시
전쟁기념관 안중근 흉상

전쟁기념관 전쟁 역사실에 전시된 여러 인물 흉상 중 하나이다. 눈높이에서 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위인이 함께 나열되어 있으니, 기념상으로 보기 어렵다. 인물 컬렉션이다. 그런데 수많은 전시 중 이 부분의 이런 형식은 왜 필요한지.


이 안중근 흉상은 친밀감을 준다.

여기에는 어떤 해석이나 연출도 없다. 그러기에 객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여러 전시의 동등한 관계에서 이해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기념 이미지 형성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표준 상을 정립하는 방식도 될 만하다.



9. 독립기념관, 안중근 동상

1986년 독립기념관 제5관 실내에 전시되었다가, 1999년 외부로 옮겼다. 윤봉길, 김좌진과 함께 자리하였다. 삼의사 동상인 셈이다.

독립기념관, 안중근 동상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는 모습으로, 거사 직후의 의연함을 보여 준다.

표정을 알아볼 만하다.

금빛 화사하다. 질감이 매끄럽다.

각지고 다듬어진 기단에는 무궁화 장식에 유묵 한 편이 새겨졌다. 돌의 거친 질감을 살려 테두리를 강조하였다. 장식적임을 넘어서 치장한 모양새이다.



10. 부천시 안중근 공원, 안중근 의사 상

중국 하얼빈 현지에서 제1호로 제작된 동상이다. 곡절 끝에 이곳에 자리하였다. 한중 합작품이라 할만하다.


부천시에서 중동공원을 “안중근 공원”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고,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으로 안중근 의사의 민족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부천 안중근 공원, 안중근 의사상

동상의 표현기법이 독특하다. 다만 왠지 느낌이 낯설다. 기법 탓인지 아니면 제작자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원형 기단은 이중으로 올렸다.  “단지”의 형상 여럿을 아랫 기단에 돌아가며 테두리 치듯 둘렀다. 강조하는 이유는 이해되나, 결과적으로 뭔가 복잡하다. 마치 기단이 철옹성을 두른 듯하다. 주장이 강하다.

부천 안중근 공원, 유묵비림

동상 외에도 이 공원에는 “의거의 이유”,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 15개 조”, “동포에게 고함”, “최후의 유언” 등, 22 시비석이 즐비하다. 제각각이다.

그 외 여러 시설물과 기념물이 뒤섞여 이 자체가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고유한 영역을 이루어 추구하는 상징성을 갖춘 교과서적인 기념 풍경이 아니다. 다소 복잡하고 도시적인 상황에서 혼재하는, 찾아볼 때 비로소 보이고 기념할 때 비로소 기리는 장소 같다.


도심 속 공원이 기념 주제를 갖추다 보면, 시민의 일상성과 방문객의 기념성이 상충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 이질감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설계 아이디어가 아쉽다.



11. 함평군 상해 임시정부청사 (독립기념관), 안중근 장군 동상

중국 하얼빈 현지에서 제작한 두 번째 동상이다.

동상 자체도 그 형식이나 분위기 모두 처음과 비슷하다. 내민 왼손의 단지 모양 등 표본이 되었다.

전체 높이 4.3m(동상 3m, 기단 1.3m)에 태극기 모양새, 서체 등이 판박이다.

함평군 상해 임시정부청사 앞 안중근 장군 동상

다만 명칭이 다를 뿐. 안중근 의사를 “장군”으로 호칭하고 있다. 직위를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 추인식을 가졌다고 한다.

해석에 따라, 장군 호칭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보훈처의 공식 명칭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군의 한자 표기.  

장군의 “장”자를 중국의 간체자로 쓰고 있다. 정자正字)가 아닌 속자(俗字)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장군(將軍)이 아닌 것이다. 약자로 썼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념 동상의 명칭에 속자를 쓴다는 것은 너무 편의 위주이다.

아니라면, 간체자 문제. 왜 우리나라에 세워지는 안중근 의사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표기해야 하는가?


이 시대 기념 호칭을 한자로만 표기하는 것도 아쉬운데, 이 경우는 더 심각하다고 본다.



12. 서울 남산 안의사 광장,  대한국인 안중근

몇 차례나 바뀌면서, 2010년 비로소 제대로 동상이 들어섰다.

광장 한 편, 등신대의 두 배는 됨직한 큰 동상이 꿋꿋이 섰다. 황동 빛이 강렬하다.


태극기를 펼쳐 든 모습이 거사 직후 장면 같다.

단호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표정에서 착잡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한 인간의 모습이 엿보인다.

서울 남산 안의사 광장, 대한국인 안중근

높이 2.5m의 8각 기단이 입체감이 들고, 상부 마감 선에 결을 주어 섬세한 느낌을 살렸다. 단정하다.


기단 뒤편 표지석, 안중근 의사 동상 이안기:

“민족이 해방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보다 조국광복을 위해 생명을 바친 선열들을 받는 기념사업이었다. 그중에도 안중근 의사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 1967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동상이안위원회


금석문, 장부가:

“1909년 10월 26일의 하얼빈 의거를 앞둔 안중근 의사는 비분강개한 마음을 이길 길 없어 그 심정을 시로 읊어 직접 한글과 한문으로 기록하였다. 이를 우리는〔장부가〕라 부른다.”



13.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기념관 건축으로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은 부분으로 큰 구성을 이루고, 섬세한 외관 자체가 차분하다.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관내외를 돌아보는 관람 동선도 흐름의 변화를 따라간다. 처음 낮게 진입하니 긴장감을 준다.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

처음 마주하는 중심 공간에서 안중근 의사의 좌상은 조용히 압도한다. 차분한 긴장감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중근 의사(좌상)

사형 직전 어머니가 보내주신 수의를 입은 모습이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중근 의사(좌상 측면)

가장 안중근다운 모습 아닐까? 이미지는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하다.


안중근 의사 찬(贊): 이은상


“조국이 기울어 갈 제

정기를 세우신 이여

역사의 파도 위에

산 길이 우뚝한 이여

해 달도 길을 멈추고

다시 굽어보도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외부 조각, "한 얼"

추상 조각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건물과 조화롭다.

조각 한 얼의 좌대에 새긴 글이다.


한 얼, 박유실:

“의사님의 이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

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숭모하는 마음을

이 조형에 담아드립니다.”


많은 전시품이 전체적으로 일관되어 꾸려진 듯 보인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전시 1 부조, 2 입상, 3 단지

전쟁기념관 전쟁 역사실에 전시된 여러 인물 흉상 중 하나이다. 눈높이에서 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위인이 함께 나열되어 있으니, 기념상으로 보기 어렵다. 인물 컬렉션이다. 그런데 수많은 전시 중 이 부분의 이런 형식은 왜 필요한지.

역시 흰 빛은 자유롭다.

그런데, 비록 기념관의 전시 부분이라 하지만, 이렇게 연출하는 것이 왠지 “가볍게” 느껴진다. 마치 뮤지컬을 보듯 실감 나게 연기하는 장면 같다.



14. 안성시 미리내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 안중근 동상

안중근 의사가 세례까지 받은 신자이니, 이곳 가톨릭계 노인 요양시설에도 자리할 만하다.

동상은 종교적 상징을 갖추었다. 상징은 남다른 의미를 갖추기 마련이다.

안성시 유무상통 마을, 안중근 토마스 장군 동상

제작 의도에 의하면, “왼손에는 진리와 생명을 상징하는 예수 십자가상, 오른손에는 독립과 정의를 표현하는 권총이 들려 있다. 오른쪽 어깨 위에는 조국과 한·중·일 동양 3국의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앉아있고, 허리춤에는 묵주가 걸려 있다. 동상 하단에는 ‘예비 성인’이라는 글귀를 넣어 시복ㆍ시성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현실에 뛰어들어 구현하는 모습이다.

같은 흉기일지라도, 여기 권총은 독립과 정의의 상징이다.



15. 장흥군 정남진 전망대, 안중근 동상

남해 전망대 관광지라는 입지부터 의외다. 장흥 안씨 종중이 주도했다 하니 이해할 만하다.

장흥군 정남진 전망대, 안중근 동상

이곳 득량만 일대는 광화문 기준 정 남쪽이라 한다. 가까이 소록도, 완도 등 남해 전망의 포인트이다.

그 속에 으뜸가는 랜드마크로서 정남진 전망대의 높이나 형태가 특이하다.


동상은 그 아래에 자리하였다.

시선을 저 멀리 태평양으로 향하며 인사하듯 왼손을 들었다. 조금 부자연스럽다.

헤어 스타일이 조금 과하다. 표정이 친숙하지 않다.



16. 부천시 안중근 공원, 대한국인 안중근- 불꽃같은 삶 기념조형물

공원 한 편 조형을 통한 스토리 텔링이 펼쳐졌다.

다소 산만하고 넓은 공원에 틀을 만들어 반개방의 공간을 형성하였다. 틀 자체가 기념물이다.

부천 안중근 공원 기념조형물, "대한국인 안중근- 불꽃같은 삶"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조형적 구성으로 풀이하여 한 토막씩 전개하였다. 이해하기 편하다.


이곳 안중근 공원은 전체가 안중근 기념물로 가득하다.

안중근 주제의 노천 전시장인 셈이다.



17.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안중근 장군 동상

개교 69년이 되는 해,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자리하였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육군사관학교, 안중근 장군 동상

중국 하얼빈 현지 제작 제3호 동상이다.

이전 두 작품과 꼭 같다. 이번에는 기단이 비교적 단순해졌을 뿐이다. 기단 2m에 동상은 3m나 된다.

이 동상도 여전히 그 표정을 읽기가 난해하다. 친근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색상이나 질감이 색다른 탓인지.


건립문, 건립의 뜻: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호국간성이 되기 위해 정진하는 사관생도들이 대한 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애국심과 군인정신을 본받기 위해 여기 장군의 동상을 세우다. 2015년 5월 1일 육군사관학교장 중장 양종수”


그리고, 장군 명칭에 중국의 간체자 표기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 서도인협회 회장이 제호를 썼다고 한다. 이런 판단은 한문에 대한 무식함 탓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곳은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아닌가.


그런데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 아카데미에서는 “안중근 장군 12 동상 건립 운동”의 일환으로 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18. 경기도 광주시 작은 안나의 집, 안중근 토마스 장군 동상

작은 안나의 집, 안중근 토마스 장군 동상

인근 미리내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의 동상과 유사하다.

기단만 다를 뿐, 같은 형식이다.

기념동상의 효과와 그 영향력을 새롭게 볼 수 있다.

기념물과 함께 할 때, 우리는 기념의 틀 속에 있다는 효과를 얻는 듯하다. 성소를 가까이 함과 같은 이치인지.



19.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 안중근 동상

헌정기념관 옆 차분히 섰다.

동상은 태극기를 쳐든 역동적인 모습이다. 황동색과 검은색이 대비된다.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 앞 대한국인 안중근

비록 단순한 형태이지만, 기단이 검은 색상에 비교적 높으니, 은근히 듬직한 권위 감을 준다.



20. 광주 상무시민공원, 안중근 의사 동상

조각공원이기도 한 이곳 녹음 앞 남동향 자리에 조용히 섰다.


동상은 친밀하게 다가온다. 황동 빛이 녹색 배경에서 두드러진다.

신발이 버선 같은데, 바람에 휘날리리는 태극기 깃대봉이 유별나다.

광주 상무시민공원, 안중근 의사 동상

기단이 타원형으로 비교적 낮고 안정감을 준다. 여러 글을 새겼지만, 그래도 단출하다.



21. 의정부시 평화공원, 대한국인 안중근 동상

의정부 역 앞, 광장의 연장선 상에 들어섰다.

넓게 공간의 영역을 확보하고 크고 듬직한 기단을 중심으로 조형 벽과 더불어 세워졌다.

이 동상은 중화인민공화국 시진핑 주석의 한·중 우호에 대한 큰 관심 속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기증하였다.

의정부 평화공원, 대한국인 안중근 동상

마치 바람에 맞서 품에서 권총을 빼내며 달려 나가는 모습이다. 과장된 동작이 역동적이다.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왼손 약지가 단지 아니라 후에 절단되는 문제, 장부가 글자 오류, 유묵의 뜻 해석 오류 등이 문제 지적되었던 바 있다. 더하여 너무 나이 든 모습에, 얼굴 생김새가 너무 다르다.

분노한 얼굴 모습조차 이질적이다. 매우 “중국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중국풍이나 작가풍, 혹은 해석의 차이로 인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중품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22.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 안중근 장군 추모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 안중근 장군 추모비

높이 6m에 그 형태로도 꽤 큼직하다. 이 형태는 “충혼의 혼불”이라는 주제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영혼 불멸의 나라 사랑 정신을 불꽃으로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비신에는 안 의사의 글귀 중 하나인 “天堂之福 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을 새겼다. 즉 천당의 복이 영원한 즐거움이란 뜻이다.

각진 기단에는 무궁화 문양이 부조됐으며, 좌우 작은 공간에 전시단이 확보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기념 동상으로 받아들일 만한가?

살펴본 바, 안중근 의사의 기념동상은 이미지는 그의 사진 중심의 이미지와 중국 현지 제작의 이미지로 나뉜다.

물론 이미지인 만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의정부시 평화공원의 안중근 의사 동상(근접)

우리는 이해하는 모습을 동상을 통해 보고 싶어 한다. 이미 그런 모습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안중근 의사에 공감하는 이미지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31살의 의인 안중근의 이미지는 결코 폭력적이거나 노회한 영웅 모습이 아니다. 몇 작품에서 충분히 제대로 모셔내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나머지 여러 색다른 기념 동상을 보고, 다채로우니 흥미롭다며 인정하고 말 것인지. 창작의 자유 혹은 건립 주체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다!


기념은 무한한 책임을 지니는 공공 행위이다. 순수예술과 다르다. 기념동상은 우리가 기억하는 사실적 이미지를 통해 미래로 바르게 나아가는 귀감이 되어야 한다.


“의” 즉 올바른 길을 간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는 비장하되 숭고함을 지켜야 하고, 결연하되 따뜻함에 머물러야 하는 그런 의로움의 총체이다.



관련 기념지(조성 연도순)

1. 안중근 가묘: 1946년 조성, 2019년 2월 22일 묘비(의사 안중근 지묘) 설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 177-18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

2. 해동사 안중근 사당: 1955년 건립,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 조성: 죽산 안씨 문중

3. 대한국인 안중근(최초 동상): 1959년 숭의학원(정문 앞) 건립, 1967년 4월 서울 남산공원(조선 신궁, 이승만 동상 자리)으로 이전, 2010년 광주 상무대 이안, 20□□년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대곡리 장성 상무대 이전 설치, 조각: 김경승/ 안중근 장군 기념비: 1973년 3월 5일 건립,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대곡리 장성 상무대, 헌시: 이은상, 사령관 육군 중장 송호림 세움

4. 대한 의사 안중근 숭모비: 4294(1961)년 8월 15일 광주공원 최초 건립, 2019년 10월 25일 재건립 제막,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0 중외공원, 글: 김창숙, 국역: 임형택·이동환, 글씨: 손재형

5. 대한국인 안중근(두 번째 동상): 1974년 10월 서울 남산공원에 건립, 2012년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2길 10 숭의여자대학교 이전, 제작: 김경승

6. 안의사 유묵 비림: 1975년 10월 26일 조성,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30-80 안의사 광장, 글: 안중근, 글씨: 안중근, 제작: □□□

7. 안중근 의사상: 1995년 설치,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45-2 중외공원, 글씨: 하남호, 조각: 김대길

8. 안중근 흉상: 1995년 전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 전쟁기념관, 제작: 보국 문화, 작가: 최금주

9. 안중근 동상: 1986년 실내 전시, 1999년 7월 외부 이전 설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 관로 1 독립기념관, 제작: 박병욱

10. 안중근 공원 안중근 의사상: 2006년 1월 중국 하얼빈시 번화가 광장 설치, 11일 만에 철거, 2009년 국회 헌정기념관 앞 임시 이전, 2009월 10월 26일 이전 건립, 경기도 부천시 송내대로 236 안중근 공원, 글씨: 김영기, 설계: 이인희, 조각: 양세창(중국 하얼빈 현지 제작 제1호)

11. 안중근 장군 동상: 2010년 3월 26일 제막,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 일강로 873-12 일강 김철 선생 기념관 상해 임시정부청사(독립기념관), 글씨: 김영기, 제작: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 아카데미(중국 하얼빈 현지 제작 제2호)

12. 대한국인 안중근: 2010년 10월 26일 설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30-80 안의사 광장, 제작: 이용덕

13. 안중근 의사 기념관: 2010년 10월 26일 신축 개관(1970년 10월 26일 첫 기념관 건립 개관),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91, 건축설계: 드림 건축사사무소 김선현, 시공: ㈜대우건설, 전시설계시공: (주)삼덕 공사 전현섭,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좌상) 조각: 이승택, 한얼 조각: 최만린

14. 안중근 장군 동상: 2010년 3월 26일,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 성지로 386-27 미리내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 앞마당, 조각: 이재호, 박동수

15. 안중근 동상: 2011년 7월 17일 건립,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정남진 해안로 242-58 정남진 전망대, 제작: □□□

16. 대한국인 안중근- 불꽃같은 삶(기념조형물): 2011년 10월 25일 설치, 경기도 부천시 송내대로 236 안중근 공원, 작가: 장성재, 권치규

17. 안중근 동상: 2015년 5월 1일 제막,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1-1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설계: 이인희(육사 29기, 대령), 제호: 김영기(한국 서도인협회 회장), 조각:  양세창(중국 하얼빈 공대 교수), 제작: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 아카데미(중국 하얼빈 현지 제작 제3호)

18. 안중근 토마스 장군 동상: 2015년 6월 10일 건립,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 579-1  작은 안나의 집, 조각: □□□

19. 안중근 동상: 2015년 11월 11일 건립,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 조각: 손인환

20. 안중근 의사 동상: 2017년 3월 제막,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1162 상무 시민공원, 조각: 김숙빈

21. 안중근 의사 동상: 2017년 건립,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222-36 의정부 평화공원, 기증: 중국 차하얼학회,  제작: 최우

22. 안중근 장군 추모비: 2021년 4월 30일 제막,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곡길 130 유토피아 추모관 평화광장, 제작: □□□     


참고·인용문헌

1. 김태빈, 우주완, 대한국인 안중근-대한민국 100년을 걷다, 눈빛 출판, 2019

2.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 아카데미 발행, 안중근 평화신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1-11 한서빌딩 1009

3. 숭의여자대학교 facebook

4.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

5. 내 손 안의 서울: 서울시 대표 소통포털: 뉴스: 8월엔 여기! 독립지사들 숨결 깃든 효창공원, 2020.8.13.

6. 가톨릭 평화신문, 유무상통 마을


후기

1. 위 기념지 중 일부는 아직 미답사이므로, 우선 타 자료를 인용하거나 생략하였으며, 나중에 보완하고자 한다. 아울러 내용 중 필자의 무지로 인한 오류나 문제가 있다면, 부디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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