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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브레 Feb 12. 2022

당신의 애인이 하루아침에 비건을 선언한다면?

비건 전쟁의 서막

"나 오늘부터 결심했어. 비건이 되기로."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어느 저녁. 남자 친구(도미)에게 전화로 비건이 되겠다며 선포했다. 연애한 지 1년 하고도 5개월에 접어드는 시점에.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고깃집에서 신나게 목살을 구워 먹었던 우리.

내 비건 선포는 맛집 탐방이 주 데이트였던 우리 커플에게 (아니, 도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 한마디가 앞으로 닥쳐올 '비건 전쟁'의 신호탄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비건 전쟁-1


도미의 반응은 이랬다.


1. 놀람 : "어? 뭐라고? 갑자기? 왜?"


가끔 도미는 피곤하리만큼 집요한 구석이 있다. 납득이 갈 때까지 조금이라도 켕기는 구석은 요목조목 따져 물어 갈증을 해소하는 스타일이다. 그에 반해 나는 요목조목 설명하는 걸 피곤해하고 귀찮아하는 게으름뱅이 구석이 있다.


"그냥.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랑 책 몇 권 봤는데 따라 해보고 싶어서"


내 답변이 두루뭉술하고 의심스러웠는지 도미는 꼬치꼬치 따지기 시작했다.


2. 확인 : "정말 비건 할 거야? 진짜로?"


인터넷에 비건을 검색한 도미는 분명 엊그제까지 같이 맛있다며 고기와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은 나와 지금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내가 동일 인물인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뭐는 허용하고 뭐는 안 먹을 건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3. 의심 : "지난주에 우리 고기, 아이스크림, 빵 다 잘 먹었잖아. 앞으로 맛있는 거 하나도 안 먹고 살 거야?"


고기, 생선, 우유, 계란까지 전부 다 안 먹는 다니. 도미의 지식 선상에서 '맛있는 음식'이 거의 남지 않았다.

난 비건식을 하겠다고 했지 맛있는 걸 안 먹겠다고 한 게 아닌데. 그리고 맛과 비건은 상관관계가 없는데... 이건 뭐 거의 절식 선언 수준의 반응이었다.



4. 혼란 : "그럼 우리 이제 데이트는 어떡해? 너랑 다신 고기랑 회 못 먹어?"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기는 행복. 나도 그건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완벽한 비건이기를 포기하고 관계를 택했다. 내가 논 비건 음식을 안 먹는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바람을 존중해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니. 오빠랑 가족들이랑만 가끔 먹으려고. 우리 데이트할 때 사이좋게 오빠 한번 나 한번 이렇게 메뉴 고르자. 어때?"



5. 혼란 2 : "그럼 비건이 아니지. 그리고 네가 나랑 먹어준다고 해도 내가 미안해져. 이 기분이 싫어. 마치 담배 끊은 사람한테 담배 건네주는 꼴 같아"


완벽한 비건이 될 필요도, 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범위에서 비건을 실천 것이다. 그리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비건이 아니다.

 비건보다 중요한 가치인 사랑과 관계를 위해 난 기꺼이 남자 친구와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선 가리지 않고 예전처럼 잘 먹을 거라 결심했다.


이걸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줘도 도미의 의심과 불안은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같이 논 비건 식사를 할 때 종종 도미는 내게 묻는다.


"이거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는 거 아니지?"


내가 관계를 위해 불완전한 비건을 결심하고, 또 마음먹은  '무엇이든 먹기로 결정한 음식은 항상 맛있게, 감사히 먹자.'이다. 비건식이든, 논 비건식이든 맛있는 건 감사히, 즐겁게 먹는 게 음식에 대한 리스펙이니까.



5. 실망 : "우리 데이트가 주로 맛집 가는 건데 나랑 상의도 없이 갑자기 결정하고 통보해서 서운해."


우린 주 2회 식사를 같이 한다. 그 두 끼 중에 한 끼는 비건식, 한 끼는 논 비건식으로 하면... 도미에겐 즐거움이 50% 감소하는 셈이었나 보다.


놀란 도미를 진정시키려 애쓰면서도


'아니..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1~2끼 같이 먹는데 반응이 조금 과하지 않나? 그것도 사이좋게 번갈아가면서 메뉴 선택하는 건데? 더 크게 양보하는 건 나인데 말이야.'


이런 반발심이 들었다.


"너한테 크게 매력을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맛집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것도 있었는데. 이젠 전에 알던 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머릿속과 네이버 지도가 맛집 리스트로 빼곡했던 나. 짬바가 어디 갑니까? 비건 맛집도 기가 막히게 찾아낼 건데 말이지. 


일주일이 지나도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나와 맛집 가는 시간을 사랑했던 거니...'

급기야 현자 타임(?)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6. 가능성 차단 :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난 절대 비건 할 생각 없으니 강요할 생각 마."


내가 좋아서 실천하는 거라 강요하라 안 할 건데.. 그게 얼마나 에너지 소모되는 일인데. 강요할 시간에 양배추나 삶지. 너무 섣부른 걱정이었다.





어느 평화로운 날. 갑작스러운 내 비건 선언과 함께 우린 약 2주에 걸쳐 비건 전쟁을 치르고야 말았다.


각자의 견해를 설명하고,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답답해 화를 내고, 그럼에도 다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내가 겪었던 비거니즘 라이프를 샅샅이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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