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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룸매거진 Oct 27. 2023

네덜란드 사람들도 직설화법에 상처를 받을까?

*해외 거주 이방인들의 일상 & 커리어스토리를 담는 투룸매거진 14호에 수록된 콘텐츠입니다. 


ESSAY

투룸 일상 에세이

네덜란드 사람들도

직설화법에 상처를 받을까? 

글 반딧  그림 김은지



네덜란드 사람들은 직설적이다. 그들의 솔직함이 지나쳐 가끔은 무례할 정도라는 말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익히 들어왔다. 그렇게 예방 주사를 단단히 맞고 왔건만, 네덜란드 사람들의 돌직구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네덜란드식 돌직구 경험의 역사는 네덜란드에 도착한 첫날부터 시작되었다. 석사 첫 학기를 지낼 숙소를 구하지 못해 학교 근처 호텔에 묵게 되었다. 이민 가방 한 개와 대형 캐리어, 백팩과 보조 가방 등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호텔에 도착했다. 마침 주룩주룩 오는 비에 옷이며 머리며 흠뻑 젖어 내 모습은 참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방 키를 받아 올라가서 쉬려고 하는데 아뿔싸,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2층에 있는 방까지 낑낑대며 짐을 옮기자 그 모습을 본 직원이 도와주러 다가왔다. 그런데 대뜸 한다는 말이 “이거 봐, 짐이 많으니 고생이잖아. 나는 여행 갈 때 짐을 최대한 가볍게 챙겨”란다 (물론 영어로 했으니 반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존댓말로 들리지도 않았다). 속으로는 “어쩌라고,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 여기 여행을 온 게 아니라 1년 치 짐을 챙겨 온 거야!”라고 답했다.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당시엔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시간이 흘러 네덜란드 사람들을 차츰 이해하기 시작하자 그런 말들이 악의 없이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날 이후에도 ‘내가 예민한 거야?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하는 상황은 내 일상의 다양한 순간에 예고 없이 찾아왔다. 네덜란드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이런 가차 없는 솔직함은 심지어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문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출 것 없다는 떳떳함과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투명함을 자랑스러워하고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방인의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면 이런 네덜란드 문화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덕분에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는 것만큼은 인정한다. 이런 효율성을 구실 삼아 그들은 서로 돌직구를 날린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서로의 돌직구에 기분 상할 일이 전혀 없는 건가? 내가 언짢아하면 이런 걸로 왜 속상해하냐고, 나를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저들은 그저 철면피인 걸까? 


이전 팀의 상사는 내가 아는 네덜란드 사람 중에서 가장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상하 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대했다. 나에게도 "무슨 말을 해도 난 기분 나쁠 일 없어. 비판적인 얘기도 무조건 솔직하게 편하게 해 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런 상사도 기분이 상해 씩씩거리는 일이 생겼다. 우리 팀이 주관하는 행사 날, 초대 손님이 강연 중에 했던 농담 때문이었다. 


몇 달 전, 우리 팀에서 손님에게 이메일로 급한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시간이 없어 도와줄 수 없다는 짤막한 답장을 보냈고, 우리 팀에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알아서 처리했다. 그런데 그날, 공개적인 자리, 그것도 우리 팀이 주최한 행사에서 그 손님이 “00처럼 뜬금없이 연락해 부탁하는 일만 없으면 누구든 언제나 환영이다."라는 발언을 한 것이다. 다들 그저 지나가는 말로 넘겼지만, 상사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행사가 끝난 후 상사는 “그때 기분이 상했으면 그 자리에서 직접 얘기할 것이지, 왜 이제야 그 일을 들먹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도 사람이니 당연히 기분이 상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나의 상사는 이 일에 그토록 발끈했을까.  



그러고 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나름대로 지키는 암묵적인 예의도 있는 듯하다. 먼저, 내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남들 앞에서도 하지 않는다. 그 손님의 경우 기분이 상했음에도 일대일 상황에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공적인 자리에서 그가 가진 불만을 마치 뼈 있는 농담처럼 얘기했다. 당시에 직접 얘기했으면 우리 팀이 바로 사과했을 것이며,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했을 것이다. 이 농담을 듣기 전까지 우리는 손님이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해서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신 본인에게 직접 말해 시정하도록 한다. 솔직한 자기의 의견을 말하되, 상대가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보통 ‘그렇구나, 저 사람의 생각은 나와 다르구나.’하고 넘긴다. 기분이 상할 정도로 직설적인 말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애써 좋게 포장하지 않는 걸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기도 같다. 어설프게 돌려 말하면 괜히 의뭉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상대방을 비판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무시한다는 오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네덜란드 사람들도 상처를 받긴 받는다. 다만 상처받는 포인트가 우리와 달라 내가 상처를 받더라도 잘 이해해주진 못하지만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대부분의 경우 이 사람들의 소통방식에 악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이방인인 내게도 이들의 솔직함이 궁극적으로는 편리하게 작용할 때도 많다. 언어나 문화뿐만 아니라 상황이 익숙하지 않을 때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피드백을 준다는 믿음이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마음의 상처를 입더라도 차라리 알고 고치는 게 나으니 고맙게 받아들인다. 그렇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래, (안 물어봤지만) 너의 생각은 그렇구나’ 하며 무디게 넘기는 하루하루다.



글쓴이 소개

네덜란드에 살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 반딧입니다. 

지금 하는 일과 생각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요. 

브런치 @band






출간 소식

투룸매거진에서 인터뷰이로, 에세이스트로 종종 참여해 준 

반딧님의 첫 책『아프리카로 간 디자이너』가 출판됐습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이 인간의 삶에 어떤 것들을 가져다 주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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